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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혼자가 아니야 … 우리 함께 이겨내자”

사진=최명헌 기자
#‘마지막 유언을 남길 테니 전해주세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요.’

 지난해 10월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하 청예단)이 운영하는 ‘학교폭력SOS지원단’ 사이버상담 게시판에 절박한 사연이 올라왔다. 글을 쓴 사람은 청각장애 3급의 김지현(가명·14)양. 학교에서 같은 반 아이들에게 자신의 장애를 비하하는 언어폭력을 당해온 김양이 자살을 예고하는 글을 남긴 것이다. 글을 본 상담사 A씨는 곧바로 경찰 사이버수사대에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은 IP를 추적해 김양의 주소를 확인하고 즉각 출동했다. 갑작스런 경찰의 출동에 당황해 하던 어린 여중생은 이내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고마웠어요. 너무 너무….” 이날 흘린 눈물의 의미에 대한 김양의 설명. “‘세상이 나에게 반응해 주는 구나’라고 처음으로 느낀 날이었거든요. 나도 내 자신을 미워했는데 사람들이 나를 살리겠다고 온 걸 보고 나도 중요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마터면 비극으로 끝날 수 있었던 순간이 오히려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된 것이다.

 상담사의 지속적인 관심이 결정적이었다. 학교폭력SOS지원단은 청예단이 2007년부터 교육과학기술부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학교폭력 전문기관이다. 상담·법률자문·긴급출동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청예단은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고 예방과 치료를 위해 1995년부터 활동 중인 NGO다. 학교폭력의 피해로 16살의 나이에 죽음을 선택한 외아들을 위해 아버지 김종기(64·현 청예단 명예이사장)씨가 직접 나서 만든 단체다.

 김양이 처음 사이버상담 게시판에 글을 올린 건 지난해 9월이다.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다니는 김양은 정확한 의사 전달이 어려워 금세 따돌림의 표적이 됐다. 김양의 부모 역시 청각장애를 갖고 있어 고민을 쉽게 털어 놓기 어려웠다.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또박또박 마음껏 할 수 있는 사이버상담 게시판만이 유일한 대화상대였다.

 상담사 A씨는 김양이 쓴 글에 즉각적인 댓글을 남겨 대처방법을 알려주고 위로와 지지의 메시지를 보냈다.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상처받은 자존감 회복이었어요.” ‘내가 싫다,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다’는 식의 글을 자주 올리는 김양에게 ‘너는 소중한 사람이다’라고 끊임없이 강조했다. A씨는 “학교폭력을 당하는 아이들은 자신을 비하하거나 자해를 하는 등 자신의 가치에 대해 혼란을 많이 느낀다. 지현이도 주변 아이들이 자꾸 괴롭히고 함부로 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심하게 깎아내리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긴급구조를 받은 그날 이후, 김양은 면접상담과 심리치료에 참여해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가족과 교사에게 적절한 위로를 받지 못한 김양에게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공감해 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되었다. A씨는 “지현이가 요즘은 ‘예쁜 옷을 샀다’ ‘머리 모양을 바꿨다’는 등 사춘기 여중생다운 고민을 털어 놓고 있다”며 “사람들과 세상이 보여준 반응에 마음가짐이 크게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학교폭력SOS지원단 위기상담센터에서 학부모 상담을 주로 맡고 있는 B씨도 극적인 경험들을 갖고 있다. 지난달 초 한 초등생이 울먹이며 다급하게 긴급전화(학교폭력 상담전화 1588-9128)를 해왔다. “지금 집 앞에 나를 괴롭히는 애들이 와서 빨리 돈을 갖고 나오라고 해요. 집에 아무도 없는데 애들이 들어오면 어떡해요-.” B씨는 먼저 아이에게 “겁먹지 말아라. 침착하게 해결할 수 있어”라며 진정시켰다. 그리고 어머니 휴대폰 전화번호를 물어 곧바로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면서 아이를 야단치거나 흥분하지 말고 위로하면서 아이의 얘기를 차분히 들어주라는 조언을 당부했다.

 B씨의 조언은 어머니 이현숙(가명·34)씨에게 큰 가이드가 됐다. “지난달부터 지갑 속의 돈이 자꾸 없어져서 아들을 혼낸 적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반 친구들에게 돈을 빼앗기고 있었던 거예요. 무엇보다 엄마인 나에게 그 사실을 숨겼다는 것이 더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런데 상담사의 조언대로 아이 편에 서서 위로해 주니 그동안 겪은 일들을 털어놓더라고요.”

 B씨는 이렇게 말한다. “부모들이 화를 내면서 아이를 야단치거나 자녀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고 나무라면 아이에게는 더 큰 상처가 되곤 한다. 이씨의 경우도 기본적인 대처방법을 몰라 아이가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 것이다. 부모가 먼저 “위로·격려·공감·경청의 반응을 보여 주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서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일을 자기 혼자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잘 못 키웠다는 말을 들을 까봐 남의 도움을 받는데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이에게 좋은 도움을 주려면 부모부터 적극적으로 좋은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내가 먼저 변하니까 아이도 친구들과의 관계를 좀 더 솔직하게 얘기하는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박승원(가명·14)군은 지난해 학교 선배에게 일방적인 폭행을 당해 앞니 2개가 부러졌다. 학교에서는 곧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열리고 가해학생에게는 징계가 내려졌다. 그러나 가해자 측 부모와 분쟁조정에 실패해 문제가 심각해졌다. 비교적 부유한 편인 가해학생 측은 자치위에서 조정된 합의금액이 부당하다면서 “차라리 소송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피해자인 박군 가족은 형편이 어려워 수백만원이 들어가는 치과치료비는 물론이고, 복잡하고 어려운 민형사상 소송도 무리였다.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학교는 결국 학교폭력 위기지원센터에 중재개입을 요청했고, 전문상담원과 분쟁조정코디네이터가 배치됐다. 감정의 골이 깊어진 가해자-피해자-학교 간의 갈등을 풀기 위해 객관적 입장의 제3자 역할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들의 조정으로 박군 측에 무료법률자문단이 추가로 지원됐고, 이들과 법률자문단의 도움을 얻은 박군은 결국 합의에 성공하고, 병원치료도 받을 수 있었다.

 지난해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로 충격이 더해지고 있는 학교폭력. 학교와 가정의 무관심 때문이라는 반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그에 대한 다양한 대책도 제시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학교 폭력을 예방하고 줄이려는 시민들의 진심어린 관심과 노력도 늘고 있는 중이다. 피해 학생에게만 맞춰져 있던 지원 프로그램도 가해학생과 목격자, 그 가족과 교사·학교로 까지 확대되고 있다. 도움을 주겠다고 발벗고 나선 사람들도 전문NGO, 재능기부자, 일반봉사자, 대학생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시민의 힘이 학교폭력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이유미 학교폭력SOS지원단장(42·여)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누구나 도움을 청하고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우리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꼭 필요하다”며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언제든지 도울 준비가 되어있다는 믿음을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손지은 행복동행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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