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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성들 너무 잘생겨, 다음 한국 방문땐…"

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로 꼽히는 스테파노 가바나(왼쪽)와 도메니코 돌체. [신세계 인터내셔날 제공]
1985년, 이탈리아 밀라노. 2명의 20대 청년은 종잣돈 200만 리라(당시 환율 기준 약 90만원)를 들고 패션 사업을 시작했다. 청년 도메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는 각자의 이름을 따 브랜드 이름을 ‘돌체&가바나’로 정했다. 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한 ‘돌체&가바나’는 창업 후 27년 만에 전 세계 100여 개 나라에서 ‘명품’으로 불리며 한해 1조6500억원씩 판매되는 규모로 성장했다. 남성·여성복을 아우를 뿐만 아니라 향수와 안경·선글라스·시계ㆍ화장품, 그리도 캐주얼 브랜드 ‘D&G’도 이들이 만들어 낸다. 돌체와 가바나가 처음으로 한국 언론의 인터뷰에 응했다. 이탈리아 밀라노 중심가에 있는 그들의 작업실에서다.

밀라노(이탈리아)=강승민 기자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해 고객과 함께 파티를 열었다. 한국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았나.

 스테파노 가바나(이하 가바나)
“한국 고객들이 너무나 멋져서 놀랐다. 첫 한국 방문이었고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가 현장에서 본 것은 굉장히 패션에 민감하고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모두 잘 차려 입은 것뿐만 아니라 의상에 매우 세심하게 신경 쓴 것을 알 수 있었다.”

 도메니코 돌체(이하 돌체) “이번 우리 남성복 패션쇼(2012년 가을·겨울 밀라노 컬렉션)에는 두 명의 한국인 모델이 등장했다. 총 4명의 아시아 남성 모델이 섰는데 나머지 둘은 중국인과 일본인이었다. 한국을 방문해 한국인들이 어떻게 옷을 입는지 알게 된 것은 우리에게 매우 큰 자극이 됐다. 이번 컬렉션에도 대단한 영감을 준 방문이었다.”

 가바나 “앞으론 ‘가장 섹시한 여성’ ‘가장 섹시한 남성’도 아시아 사람이 될 것이다. 이번 패션쇼에서 ‘섹스 심벌’로 내세운 모델 역시 동양 사람이다. 우리도 전엔 미국에 더 자주 가고 관심이 많았지만 요즘엔 아시아에 눈을 돌리고 있다. 아시아는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우린 그런 아시아가 점점 더 좋다. 지난해 서울을 방문할 때도 중국에 들렀다 간 것이었는데 아시아에서도 한국인, 특히 남성들이 대단히 잘 생기고 패션 감각이 훌륭하다는 걸 깨달았다. 다음에 갈 땐 더 많은 한국인들과 개인적으로 만나 어울리고 싶다. 저녁도 같이 먹고 클럽에도 함께 가고 말이다.”

표범 무늬로 장식한 돌체&가바나의 여성용 핸드백.
 -창업을 결심했을 때 현재와 같은 성공을 예상했었나.

 가바나
“전혀 꿈꾸지 못했다. 난 패션 디자이너가 되리라곤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도메니코야 양복장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패션에 익숙하기라도 했다. 한데 내 부모는 패션과 아무런 관계 없는 일을 하셨고 난 패션이 뭔지도 몰랐다. 도메니코는 원래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했다.”

 돌체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긴 했지만 그냥 꿈만 꾼 정도였다. 그냥 막연히 바랐던 거다. 시작부터 우린 휴가도 한 번 간 적 없을 만큼 열심히 일했다. 창업 후 수년 동안은 ‘돌체&가바나’를 위해 모든 걸 바쳤다. 하지만 지금 같은 성공은 꿈조차 꾸지 못했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생인 돌체는 패션 디자인을, 밀라노 태생의 가바나는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다. 80년대 초 밀라노의 한 패션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함께 일한 두 사람은 연인 관계로 시작해 ‘돌체&가바나’ 브랜드를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연인 관계는 브랜드 창립 20주년이 되던 2005년 2월 초 종료됐다. 당시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와 인터뷰를 한 돌체는 “사업상으로 여전히 우린 함께”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영국의 일간 신문 ‘가디언’은 “한 침대를 쓰던 동업자들이 서로에 대한 연인 감정이 없어지면 대개는 다투며 재산을 나누려고 난리법석일 테지만 수천억원짜리 비즈니스를 함께 하는 관계라면 얘기가 다르다. 더군다나 자신들의 이름 자체가 사업에서 중요한 부분이라면 더욱 그러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돌체&가바나’를 시작한 80년대의 패션과 지금은 무엇이 다를까.

 돌체
“패션에 진짜 창의성이 필요한 시대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진짜 패션이란 고급 코트와 재킷, 슈트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옷은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세심하게 잘 다듬어진(sophisticated) 이런 옷은 갑남을녀를 위한 것도 아니고 누구나 입을 필요도 없다. 80년대는 명품 브랜드의 가방과 구두 같은 액세서리만 보이던 때였다. 그러던 게 요즘은 제대로 된 옷, 진짜 패션을 이해하는 사람들을 위한 시대로 바뀌고 있다.”

2012 가을·겨울 패션쇼의 마지막 순서에 등장해 관객에게 인사하는 스테파노 가바나(왼쪽)와 도메니코 돌체. 돌체&가바나의 패션쇼는 항상 밀라노 시내에 있는 피아베 가(街)의 브랜드 전용 쇼장 ‘메트로폴’에서 열린다.

 -당신들의 옷은 꽤 야하고 대담한 편이다. 장식도 화려하고 때론 노출도 과감하다. 점잖은 옷을 원하는 여성들에게 ‘돌체&가바나’는 좀 부담스럽다.

 가바나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지 않나. 섹시하다는 게 부담스럽다면 우리 옷을 사지 말아야지.(웃음) 누구나 우리 옷을 좋아한다는 건 반대로 말해 우리 디자인이 어중간(mediocre)하단 얘기다. 그렇게 하고 싶진 않다. 우리 옷은 매우 여성적이면서도 한편으론 검소하고 소박한(austere) 편이다. 소탈해 보이고 싶은 여성이라면 ‘돌체&가바나’ 남성복을 골라도 되고.”

 -패션이 예술이라고 생각하나.

 가바나
“패션 디자이너는 예술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패션이 예술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이란 유일무이한 무엇이어야 하는데 옷은 그렇지 않으니까. 내 생각이 너무 진부한지도 모르지만 패션이란 시대를 반영하는 문화적인 흐름 정도가 아닐까 싶다.”

 돌체 “내게 패션이란 팔 수 있는 상품이다. 예술이란 뭔가 숭고한 것이어야 하고. 시간이 지나서 패션이 예술적인 형태를 띨 순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패션 디자인에 자주 사용하는 표범 무늬엔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

 가바나
“다들 우리 걸 따라한다.(웃음) 우린 이브생로랑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그 이후로 모두가 우리 걸 베끼고 있다.”

 돌체 “1994년에 처음 사용한 것으로 기억한다. 이것은 과감한 화려함(extravagance)이다. 대놓고 섹시하려 하기보다는 표범 무늬를 통해 이색적인 화려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지난달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돌체&가바나 패션쇼의 마지막 무대다. 이 브랜드 남성복 패션쇼의 피날레는 언제나 모든 모델들이 정장 차림으로 등장한다.

 -‘돌체&가바나’에 돌체가 없거나 가바나가 없다면.

 돌체
“완전히 다른 브랜드가 될 것이다. 가바나는 프린트를 좋아하고 꽃무늬, 행복해 보이는 옷을 사랑한다. 난 슈트, 슈트, 슈트만 찾을 것이다. 가바나는 나보다 훨씬 창의적이고 용기를 북돋는 성격이고 관능적인 디자인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둘이서 의견 충돌이 있을 법한데.

 가바나
“모든 것을 함께 결정한다. 돌체는 남성복과 스포츠 라인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난 영·유아복이나 여성 구두, 가방 같은 액세서리에 더 신경을 쓴다. 둘이라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혼자서 모든 걸 다 할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모든 일을 같이 할 시간이 없으니 서로 분담해 가며 하지만 최종 결과물은 무조건 함께 결정한다. 아주 아주 엉망인 ‘돌체&가바나’의 무엇이 있다면 그것 역시 우리 둘이 결정한 것이다. (웃음)”

 -함께 일한 지 곧 30주년이 된다.

 가바나
“그런 걸 상기시키다니! 그런 질문은 하지 말아 달라.”

 돌체 “의사를 불러줘.”

 (이 대목에서 가바나는 얼굴을 감싸며 우울한 표정을 짓고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장난을 쳤고 돌체는 이마에 손을 얹으며 아픈 척을 했다.)

 가바나 “우린 전혀 변하지 않았다. 30년이나 지났다고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우린 아직 젊고 싱그러운 사람들이다.(웃음)”

 돌체 “맞다. 그렇다. (웃음)”

레이스 장식이 화려한 돌체&가바나 드레스를 입은 영화배우 스칼릿 조핸슨. [신세계 인터내셔날 제공]
 -창업 후 지금까지 가장 힘든 순간이 있었다면.

 가바나
“힘든 일이 아주 많았는데…. 성장은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고 그 과정에서 희생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건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바다. 새로운 일이 일어나면 옛것은 버려야 한다. 힘든 일이 많이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 구체적인 에피소드까진 기억하지 못하겠다. 중요한 건 우리가 운이 좋은 편이었고 대단한 성공을 이뤄낼 수 있었단 거다. 열정 덕분에 어려운 일을 둘이 함께 이겨낼 수도 있었고.”

 돌체 “우린 대단히 긍정적인 사람들이다. 울기도 하고 고통도 겪지만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단 긍정적으로 밀고 나가는 편이다. 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진달까. 학교에서 시험을 보지 않으면 성적을 올리기 어렵듯이 인생도 변화나 어려움 없인 더 성숙하기 힘든 것 아닐까.”

 -디자이너가 되지 않았다면.

 돌체
“건축가가 됐을 것이다.”

 가바나 “배우.”

 돌체 “스테파노는 아마 코미디언이 됐을 것이다.(웃음)”


마돈나가 우리 옷 입었다고? 마음 졸이며 영화 보다 환호

2008년 마돈나가 발표한 앨범 ‘하드 캔디’의 표지. 돌체&가바나의 의상을 입었다.
‘돌체&가바나’가 유명 브랜드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팝스타 마돈나다. 도메니코 돌체는 “1980년대 후반, 우연히 마돈나의 콘서트를 보러 갔을 때만 해도 ‘언제쯤 마돈나 같은 스타에게 우리 옷을 입힐 수 있을까’ 하고 바라기만 했다. 그때 마돈나는 장 폴 고티에의 의상을 입고 공연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돌체&가바나와 마돈나의 첫 인연은 91년 마돈나가 영화 ‘진실 혹은 대담(Truth or Dare)’에 이 브랜드 옷을 입고 출연하면서 시작됐다. 스테파노 가바나는 “주변 지인에게서 ‘영화 촬영 현장에서 봤는데 마돈나가 너희들 옷을 입고 나오는 것 같다’는 얘길 들었을 때만 해도 믿지 않았다”면서 “영화에서 직접 그 의상을 확인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몇 달 동안 고민도 했다”고 털어놨다. “기대를 하고 영화를 봤는데 정작 우리 옷이 아니면 어쩌나 너무 걱정이 됐다”는 것이다. 다행히 마돈나의 의상은 돌체&가바나의 것이었고 마돈나가 이 영화 시사회에서 입을 드레스를 직접 돌체&가바나에게 의뢰하기에 이른다.
1 1993년 마돈나의 ‘걸리 쇼 투어’에 쓰인 돌체&가바나의 의상 디자인 스케치 2 (왼쪽부터) 스테파노 가바나, 마돈나, 도메니코 돌체.
돌체는 “우린 그때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꿈이 이뤄진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돌체&가바나는 마돈나의 월드투어 콘서트 의상을 디자인했고, 더불어 미국 시장에서도 큰 인기를 얻으며 명성을 구축해 나갔다. 이들의 인연은 단발로 그치지 않고 계속됐다. 이들의 표현을 빌리면 “20년 넘는 대단한 우정”이다. 돌체&가바나는 2001년 봄·여름 패션쇼의 주제를 아예 ‘마돈나-80년대’로 정하기도 했고, 2010년 3월엔 마돈나와 함께 ‘MDG’라는 선글라스를 출시하기도 했다. 마돈나 이름의 첫 글자 M과 두 디자이너 이름의 첫 글자를 합쳐 지은 이름이다. 대개의 경우 브랜드 이름에 스타 이름을 덧붙이는 정도로 작명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들의 결속력이 얼마나 끈끈한지 짐작하게 하는 사례다. 돌체는 “서로 너무 바빠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우린 여전히 친구 관계로 잘 지내고 있다”면서 “요즘도 크리스마스 파티를 함께 하거나 미국 뉴욕 같은 곳에서 만나 어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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