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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빈둥지증후군’ 몸 움직이는 즐거움으로 이겨냈죠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 직장 일도 그렇다. 모든 직장인은 언젠가 일을 놓고 은퇴를 해야 한다. 은퇴 이후 겪는 혼란, ‘은퇴증후군’도 어느 직장인이나 각오해야 할 과정이다. 사회적 지위와 인적 네트워크가 사라지면서 고립감과 상실감에 시달리기 쉽다. 그동안 은퇴증후군은 남성들의 전유물인 양 여겨졌다. 여성 직장인의 수가 그만큼 적어서다. 대신 중년 이후 여성들의 문제는 주로 품 안의 자식을 떠나보내며 겪는 ‘빈둥지증후군’의 각도에서 바라봤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활동이 점점 늘어나면서 여성들의 은퇴증후군 역시 고민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이른바 ‘신(新)빈둥지증후군’이다.

선배 직장 여성들은 어떻게 은퇴란 삶의 고비를 넘겼을까. 그 답을 얻기 위해 미국의 인테리어 잡지 ‘하우스 앤드 가든’의 전 편집장 도미니크 브라우닝(57·사진)을 e-메일로 인터뷰했다. 그는 구독자 수가 95만 명에 이르렀던 ‘하우스 앤드 가든’의 편집장으로 근무하던 중 2007년 잡지 폐간으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는 경험을 했다.

이지영 기자


-갑작스러운 실직, 직장인에게 큰 공포다. “어른이 되고 30년 동안 내게는 가야 할 사무실과 출근 시간이 있었다. 일은 내가 의지하는 대상이었으며, 삶의 기반이었다. 내 기분이 요동치지 않도록 잡아줬고, 말쑥하게 차리고 다니도록 도와줬다. 만약 내게서 일이 사라지면 무기력 상태에 빠지지 않을까, 늘 걱정스러웠다. 직장을 잃고 나니, 회의감과 우울감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내게는 일이 필요했다. 꼬박꼬박 나와달라고 요구하는 곳이 필요했고, 사람들과 계속 연락하고 지내야 할 구실이 필요했다.”

 -실직 이후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 “자존감에 큰 손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차였다는 생각에,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백수가 된다는 것은 우울증에 걸리는 것과 비슷하다. 기운이 빠져 어떤 일도 할 만한 에너지가 없었다. 나는 오래전에 이혼한 경험이 있는데, 그때 기분과 똑같았다. 아니 더 나빴다. 이혼은 내가 선택했지만, 실직은 내가 선택하지 않았으니까. 실직 직후에는 여기저기 전화해서 원고 청탁을 받아내기도 했고, 몇몇 프로젝트의 컨설팅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일들도 금세 끝나버렸고, 끝내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여러 회사의 최고경영자들과 헤드헌터들도 만나봤지만 소용없었다. 이렇게 강제로 은퇴하게 되다니…. 골동품으로 전락한 기분이 들었다.” 

 -그 상실감을 어떻게 극복했나. “시작은 쿠키였다. 오래된 주방기구의 먼지를 털어내고 쿠키를 직접 구웠다. 캄캄한 창문을 바라보며 따뜻하고 조용한 부엌에서 믹서가 윙윙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을 때,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피아노 연주도 도움이 됐다. 바흐의 곡을 연주하다 보니, 더 이상 걱정과 불안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지 않았다. 정원 가꾸기와 걷기도 효과가 있었다. 매일 몇 ㎞씩 걸으며, 몸을 움직이는 데 어떤 즐거움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여전히 사무실에 갇혀 사는 친구들에게 센트럴파크의 아네모네 꽃봉오리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의미에서 뉴욕의 집을 팔고 로드아일랜드의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평생 모아온 돈을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상환과 세금으로 축내고 싶지 않아 결정한 일이기도 했다.”

 -은퇴 후 삶에 적응하기 위해 시도한 일들이 참 다양하다. “모두 결과적으로 내 일상의 질을 높여준 일이었다. 삶의 속도가 느려지면서 나는 숨을 고를 수 있었고, 삶에서 중요한 것들을 다시 경험하고 느낄 수 있었다. 해가 떠오를 때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 색깔의 아름다움에 감탄했고, 작은 화초의 연약하고 가느다란 뿌리를 보고 생명의 신비에 놀라워했다. ‘슬로 라이프’가 ‘슬로 러브’의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2010년엔 그 경험을 담은 책 『슬로 러브』도 펴냈다. (『슬로 러브』는 지난해 출판사 ‘푸른숲’에서 한국어로 번역, 출간했다.) ‘슬로 러브’는 우리를 둘러싼 평범하고 사소한 ‘기적’에 빠져드는 사랑이다. 내가 가진 것들이 사라지기 전에 그 존재의 가치를 깨닫는 일이기도 하다.”

 -적응 과정에서 가족과 친구들은 어떤 역할을 했나. “가족들도 나의 실직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대학생인 아들은 ‘엄마가 집에만 있는 게 싫다’고 했다. 엄마의 간섭이 귀찮았던 것 같다. 또 아들 역시 내가 해고됐다는 사실에 분노와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아들에게 ‘일하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었으니, 경력이 끝나도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 말을 하는 순간, 진짜 그 말이 맞다는 확신이 내게 생겼다. 내 마음을 정리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 대화였다. 실직이란 위기 상황은 누가 진정한 친구인지 구별해줬다. 내 불행을 고소해하며 즐거워한 친구들과는 이제 더 이상 만나지 않는다. 실직이 마치 전염병이라도 되는 양 취급했던 친구들과의 우정도 이젠 끝났다. 대신 나를 이해하고 도움을 주는 새 친구들이 생겼다.”

 -근황이 궁금하다. “블로그(SlowLoveLife.com)를 운영하면서, 가끔씩 신문·잡지에 칼럼을 쓰고 있다. 지난해엔 환경보호 단체 ‘맘스클린에어포스(Moms Clean Air Force)’를 조직, 시니어 디렉터를 맡았다. 어린이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대기오염 예방·감시 활동을 하는 단체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여성 후배들에게 충고를 한다면. “강하게 살아라. 꿈을 크게 꿔라. 또 넘어졌을 때도 용기를 잃지 마라.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힘들 땐 주변에 도움을 구해라. 은퇴 후에도 배우고, 성장하고, 창의성을 연마하는 일을 중단하지 마라. 또 경이로운 세상에 늘 마음을 열고 살아라.”


도미니크 브라우닝=1955년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났다. 77년 코네티컷 웨슬리언 대학을 졸업한 뒤 여성지 ‘새비(Savvy)’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에스콰이어’ ‘뉴스위크’ ‘미라벨라(Mirabella)’ 등의 잡지 에디터로 일했으며, 95년부터 2007년까지 ‘하우스 앤드 가든’의 편집장을 맡았다. 현재 ‘뉴욕 타임스’ ‘뉴욕 매거진’ ‘오프라 매거진’ 등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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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