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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론, 오만과 편견의 합작품 <하>

#1. 구직자가 가장 입사하고 싶은 그룹은 삼성이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 조사 결과 2009~2011년 삼성그룹이 3년 연속 1위에 올랐다. 2011년 조사에서 삼성에 이어 CJ·포스코·LG·SK·한전·현대자동차그룹 입사는 구직자의 꿈이었다. 매년 56만 명의 대학·대학원 졸업자가 쏟아지지만 공기업·대기업 등에서 ‘좋은 일자리’를 쟁취하는 이는 2만~3만 명뿐이다.

임민욱 ㈜사람인HR 홍보팀장은 “구직자들이 삼성 등 대기업 입사를 원하는 건 연봉 등 처우가 좋은 데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는 측면도 있다”며 “브랜드 인지도 높은 대기업에 입사하면 자신의 경쟁력을 자연스레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 미국 앨라배마 현대차 공장 앞 도로 이름은 ‘현대로(Hyundai Blvd.)’다. 경기도 파주의 LG디스플레이 인근 도로에도 ‘LG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국내를 비롯해 전 세계 곳곳에 한국 대기업의 이름을 딴 도로·다리 등의 지명이 생겼다.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 대기업의 대형 광고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 대기업은 세계 기업과 당당히 경쟁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보좌관을 지낸 조윤제 서강대 교수는 2009년 펴낸 『한국의 권력구조와 경제정책』에서 재벌에 대한 한국인의 이중적인 인식을 언급했다. “한편으로 한국에서 재벌은 산업경쟁력의 원천이며 국민의 자랑이다. …특히 삼성전자·현대자동차·LG전자·현대중공업 같은 기업은 이미 세계적 기업으로 국가 이미지를 드높이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국민에게 재벌은 불공정과 특혜의 산물로 여겨진다.”

 왜 재벌이 애증의 대상이 됐을까. 조 교수에 따르면 재벌의 빛나는 성공 스토리는 창업자의 탁월한 기업가정신, 경영능력과 함께 정부와 국민의 명시적·묵시적 지원 덕분이다. 정부가 재벌의 투자 위험과 손실을 적극 떠안아준 덕분에 리스크를 감수한 재벌의 도전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성공의 이익은 오너 일가를 비롯한 대기업에 돌아갔지만 실패할 때의 손실은 ‘사회화’됐다. 결국 국민이 실패의 짐을 나눠 진 셈이다.

 최근 들어 반(反)재벌 쪽으로 무게 추가 확 기운 것은 체감도가 커졌기 때문이다. 동네 빵집이 대기업 체인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재래시장 상인이 단골 손님을 대형 할인점에 뺏기면서 재벌 문제는 생활의 문제가 됐다. 김선웅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장은 “과거 재벌 이슈를 남의 일로 생각했던 사람이 지금은 실생활에서 재벌의 영향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잘되면 나라가 잘된다’는 낙수 효과도 줄었다. 세계에서 9번째로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한 나라가 됐지만 비정규직은 600만 명이다. 가구당 빚이 5000만원이 넘는데 대기업은 매번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는 발표를 한다. 고려대 조대엽(사회학) 교수는 “친기업 정책을 폈던 MB정부에 대한 실망이 기업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선거철 정치는 이런 민심을 파고 들었다. 그러나 정치권 역시 이중적이다. 여야가 앞다퉈 재벌개혁론을 쏟아내고 있지만 지난해 말 옛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법사위에서 합의 통과했다.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기업이나 단체가 정치후원금을 임직원이나 회원 명의로 쪼개서 내는 것이 가능해진다. 지금은 개인이 아니면 정치후원금을 낼 수 없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베이징에서 “기업은 이류, 관료조직은 삼류, 정치는 사류”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전문가들은 ‘재벌개혁론’이 화두로 떠오른 요즘이야말로 일류 기업·정부·정치가 필요할 때라고 지적한다. 건국대 최배근(경제학) 교수는 “재벌이 신성장동력을 찾아서 고용도 늘리고 성장도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서이종(사회학) 교수는 “대기업이 잠깐잠깐 봉사활동하는 모습이 아니라 진짜 사회 발전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국민 인식도 바뀐다”고 말했다.

 재벌 규제를 쏟아내는 것보다 법치의 확립부터 챙기라는 쓴소리도 나왔다. 김성식(무소속) 의원은 7일 국회에서 “배임·횡령 등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고의적 범죄에 대해 집행유예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재벌의 폐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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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