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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사드, 이 주사기로 ‘나치 악령’ 아이히만 이스라엘로 잡아갔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Mossad)가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 원흉’으로 꼽히는 독일 나치의 아돌프 아이히만(1906~62·사진) 체포작전 자료를 공개하는 전시회를 개최한다고 AP통신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모사드는 10일부터 텔아비브 소재 바이트 하트푸트소트 유대인박물관에서 ‘피날레 작전’이라 불리는 전시를 열 예정이다.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령으로 히틀러의 ‘최종 해결(Final Solution·유럽 거주 유대인들의 대규모 학살작전)’의 실무 책임을 맡았던 인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희생된 유대인은 약 60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모사드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아르헨티나로 탈출해 숨어 살던 아이히만을 어떻게 검거했는지를 상세히 보여 준다. 독일 패전 후 아이히만은 50년 미군의 포위망을 뚫고 아르헨티나에 입국했다. 그는 수사망을 피하며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가명으로 은신해 왔다.

 아이히만의 신분이 드러난 것은 7년 뒤인 57년. 그의 장남 닉이 실비아라는 이름의 여자친구를 사귀면서다. 실비아의 아버지 로타르 헤르만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다. 닉을 수상하게 여긴 헤르만은 홀로코스트에서 함께 살아남았던 동료 프리츠 바우어에게 편지를 썼다. 독일 헤센주 검사장이었던 바우어는 이 정보를 이스라엘 정부에 알려 줬다.

 2년 뒤인 59년 모사드 요원 즈비 아로니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가리발디 거리에서 아이히만을 발견한다. 이스라엘 법의학자들은 아로니가 몰래 촬영한 아이히만의 얼굴 사진과 기존의 사진을 놓고 귀의 특징 등을 대조해 아이히만의 신분을 확인했다.

 체포작전은 60년 5월 11일 진행됐다. 메르세데스 벤츠 공장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던 아이히만을 모사드 요원 7명이 덮쳤다. 그 순간 즈비 말킨 요원은 장갑을 낀 손을 아이히만의 입속에 넣었다. 나치 전범들이 체포될 경우에 대비해 청산가리 캡슐을 치아 속에 넣어 다닌다는 첩보에 따른 자살 방지책이었다.

 “운명을 받아들인다(I accept my fate)”는 말과 함께 순순히 체포된 아이히만은 현지 안가에 9일간 갇혀 있다가 이스라엘 국적기 엘알 항공편으로 압송됐다. 이 비행기는 아르헨티나 독립 150주년 축하사절로 방문한 이스라엘 정부 대표단이 타고 온 것이다. 약물 주사를 맞은 아이히만은 승무원 복장 차림으로 이 비행기 일등석에 앉혀졌다. 아픈 승무원으로 위장된 것이다. AP통신은 “당시 사절단으로 온 아바 에반 교육문화부장관조차 몰랐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모사드는 아이히만 압송을 위해 B안, C안 작전까지 세워 둔 것으로 드러났다. B안은 냉동고기 운반 선박에 태우고 가는 것이었으며, C안은 아이히만을 이스라엘로 데려가기 전 유럽의 중간 기착지로 빼돌리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법원은 61년 아이히만에 대해 반인륜적 행위와 전쟁범죄 등 15개 혐의를 적용해 교수형을 선고했다. 아이히만은 이듬해 5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스라엘이 유일하게 집행한 사형이었다.

 이번 전시에는 히브리어로 ‘딥북(Dybbuk·악령)’이라는 암호로 불렸던 아이히만에 대한 모사드의 기밀자료, 체포 시 사용했던 위조 차량번호판, 아이히만에게 약물을 주사할 때 썼던 주삿바늘, 입에 넣었던 장갑 등이 함께 나온다. 큐레이터를 맡은 모사드 요원 ‘아브너 A’는 AP와의 인터뷰에서 “아이히만 검거작전은 모사드의 첫 해외작전이자 사상 최대 규모”라며 “이 작전이 오늘날의 모사드를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모사드는 어떤 인물이던 지구 끝까지 쫓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이 작전으로 증명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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