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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35) 은행 구조조정 <8> 조흥·충북·강원은행 합병

‘실세’로 통하던 위성복 조흥은행장. 그는 경영 개선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금융감독위원회의 압박에 1998년 말 사퇴하지만 이듬해 조흥·충북·강원 합병은행의 행장으로 돌아온다. 조흥·충북 합병은행이 강원은행과 합쳐 3자 합병을 완성한 99년 9월 13일, 춘천에서 열린 기념 리셉션. 왼쪽부터 윤태수 당시 조흥은행 노조위원장, 강원도 출신 마라톤 선수 황영조, 유종수 한나라당 의원, 김진선 강원도지사, 위성복 행장, 장을병 국민회의 의원, 고객 대표인 박봉영 ㈜대양 사장, 김태환 조흥은행 강원본부장. [중앙포토]

위성복. 1998년 여름 조흥은행장에 취임한 그는 ‘실세’로 불렸다. 전남 장흥 출생에 광주고 졸업. DJ정권 실력자들과 두루 끈이 닿아 있었다. 그런 그에게 내가 사표를 받았으니 얼마나 시끄러웠겠는가. 그것도 그가 행장에 취임한 지 석 달 만에 말이다.

 98년 11월 27일 서울 여의도 사옥에서 열린 금융감독위원회 전체 회의. 나는 오전 안건만 처리하고 회의장을 떠났다. 다음 안건이 문제의 ‘조흥은행에 대한 경영 개선 조치 요구의 건’. 의사봉은 윤원배 부위원장에게 넘겼다. 방에 들어와 비서에게 “전화를 받지 말라”고 지시했다. 바로 행선지를 밝히지 않고 외출했다. ‘전화해도 소용없다. 타협은 없다’는 뜻이었다.

 남상덕 제2심의관이 내 지시대로 긴급 안건을 올렸다. 경영개선 요구. 임원진 교체를 포함한 강력한 징계다. 위성복 조흥은행장을 자르라는 것이다. 위 행장의 광주고 후배인 이용근 금감위 상임위원은 물론 의사봉을 잡은 윤원배 부위원장과도 미리 의논하지 않았다. 미리 새어 나갔다면 정치권의 압력이 엄청났을 것이었다. 왜 실세를 건드렸는가. 개인적으론 위성복에게 아무 감정이 없었다. 나는 1970년대 초, 재무부 시절부터 그를 봐 왔다. 시중은행을 통틀어 손꼽히는 인재였다. 기획·전략 쪽 감각이 탁월했다.

 하지만 원칙은 원칙이다. 98년 6월 말 ‘조건부 승인’ 판정을 받은 조흥은행이다. 경영개선 계획을 제출했고, 이를 이행해야 했다. 방법은 세 가지였다. 자력 증자 또는 외자 유치, 아니면 합병. 같은 판정을 받은 상업·한일은 합병을, 외환은행은 독일 코메르츠 은행에서 자금을 유치했다. 하지만 조흥은 기한이 지나도록 아무 성과를 못 냈다.

 위성복이 부지런히 뛰어다닌 건 잘 안다. 조흥은 6월 말까지만 해도 가장 자신만만해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일이 번번이 꼬였다. 5월에 한 재미교포 사업가로부터 “투자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무산됐다. “정부가 손실 보전을 약속해줘야 투자하겠다”는 조건을 내건 것이다. 위 행장은 정부 보증을 요구해 왔지만, 애초 안 될 일이었다. 그 건은 그렇게 무산됐다.

 9월 초, 나는 다급해진 위성복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기신용은행과 합병하면 어떻겠습니까. 그쪽도 혼자 살기는 힘들 겁니다.” 위성복은 반가워했다. 동아줄을 잡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이 논의는 그러나 장은의 오세종 행장이 돌연 국민은행과 합병하기로 하면서 깨진다. 장은이 왜 국민은행을 택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기업 금융에 강한 장은이 보기엔 가계 금융 중심의 국민이 편했을지도 모른다. 바야흐로 이합집산(離合集散)의 계절이었다.

 위성복의 마지막 승부수는 3자 합병이었다. 마찬가지로 조건부 승인 판정을 받은 강원·충북은행과 한꺼번에 합병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위성복은 양쪽 은행의 주주를 설득하느라 한 달 가까이 공을 들였다. 그리고 합병안을 들고 나를 찾아왔다. 10월 중순이었다.

 난감했다. 냉정하게 따지면 세 은행 다 퇴출 대상이었다. 6월 말 평가 이후 재무 상태가 또 악화된 것이다. 그렇다고 석 달여 만에 또 은행 퇴출 사태를 일으킬 수는 없었다. 시장은 이미 사상 초유의 은행 퇴출로 한바탕 홍역을 앓는 중이었다. 명분을 위해 조흥은행 본점 이전 아이디어를 냈다. “대전으로 본점을 옮기겠다고 하고 그걸 명분으로 합병을 추진해 보자”고 제안했다. 퇴출된 충청은행의 빈자리도 메워야 했다. 위 행장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일단 살고 보자’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위 행장이 물러났는가. 이 합병설이 소문이 나자 강원·충북은행 노조가 뒤집혔다. 정치권도 들끓었다. “호남 출신 행장을 봐주려고 다른 은행 죽인다”는 주장이었다. 두 은행의 주주들도 발을 빼려 했다. 구조조정이 정치 문제로 비화되는 것. 내가 가장 꺼리는 일이다. 시장이 진의(眞意)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구조조정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고민이 깊어갈 무렵, 위성복이 나를 찾아왔다. 11월 24일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의욕을 잃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주주들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정치 공세가 심해져서 말입니다. 단칼에 처리해야 되는데 말이죠….”

 위성복은 눈치를 챘다.

 “제가 구조조정에 걸림돌이 된다는 말입니까.”

 나는 그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위성복은 고개를 숙였다.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좋습니다. 내가 걸림돌이 되면 물러나겠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만 약속해 주십시오. 첫 번째는 조흥은행을 어떻게 처리할지 계획을 알려 주십시오. 우리 직원들에게 아무 언질 없이 그만둘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사표는 나만 쓰게 해 주십시오. 송승효·변병주 상무까지 사표를 쓰면 조흥을 이끌고 갈 사람이 없습니다.”

 둘 다 내가 할 수 없는 약속이다. 약속을 하지 않고 그의 사의(辭意)만 받아들였다.

 “고맙습니다. 경험이 많으시니 앞으로도 기회가 많으실 겁니다.”

 그리고 금감위가 열린 것이다. 내가 회의장을 비운 건 난감해서였다. 열심히 뛴 위성복이다. 원칙 때문에 자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미안했다. 예상대로 위원 중 몇몇이 격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사전 협의도 없이 어떻게 이런 안건이 올라오느냐” “조흥은행은 청와대와도 얘기가 끝난 일이다”라며 언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남상덕 심의관이 전화로 상황을 보고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 역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당장 통과시키라”고 호통을 쳤다. “금감위가 실세 행장에 밀려 안건을 통과시키지 못했다”는 소문이 나면 끝이다. 아무 일도 못한다.

 윤원배 부위원장은 “원칙은 원칙”이라며 안건을 상정했다.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격론 끝에 정회가 됐다. 윤 부위원장은 점심 시간에 정회한 틈을 타 위성복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강제 문책을 당하느니 사표를 쓰시라”고 권했다는 것이다. 회의가 재개되기 전 ‘위 행장과 두 명의 상무가 자진 사퇴했다’는 보도자료가 금감위 팩스로 들어왔다. 이들의 사퇴로 “원칙을 지켰다”는 명분을 얻은 금감위는 3자 합병을 계획대로 추진할 수 있었다.

 이듬해 4월, 이렇게 탄생한 새 은행은 위성복을 행장으로 추대한다. 쓴웃음이 났다. 역시 실세는 실세인 것이다. 만난 사람=이정재 경제부장

등장인물

▶위성복(73)


전남 장흥생. 광주고, 서울대 상학과 졸업. 1964년 조흥은행에 입사했다. 98년 정권이 바뀐 직후 전무로 승진했고 같은 해 7월 행장 직무대행, 8월에 행장으로 취임한다. 그해 말 나는 ‘원칙론’을 내세워 그를 사임시키지만 99년 4월 강원·충북은행과 합병한 조흥은행의 행장으로 복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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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