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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바람의 검심

바람의 검심   - 박순원(1965~ )


술을 먹고 말을 타고 꾸벅꾸벅

졸며 집으로 돌아가는데

말이 옛 애인의 집에 다다랐다

나는 가슴이 너무 아팠으나

꾹 참고 지체없이 칼을 뽑아

말의 목을 내리쳤다

나는 말이 한 마리밖에

없었으므로 칼등으로 내리쳤다

나는 생명을 사랑했으므로

옛 애인은 반갑게 뛰어나왔다가

소리 없이 울기만 했다

나는 생명을 사랑했으므로

말이 한 마리밖에 없었으므로

너무 많이 취했으므로

가슴이 아파서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없었으므로

옛 애인은 이사를 했고

전화번호도 바꾸었다 그때

내가 칼날로 말의 목을 치지

않은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그 전에 술을 마시고 크게

취한 것도 정말 잘한 일이다


신라 귀족의 아들, 김유신의 애마가 습관적으로 애인 천관녀의 집으로 향했다가 목을 베인 사건은 다 아는 전설의 이야기. 어머니 말씀 받들어, 정든 애인을 저버리고, 애마의 목을 단칼에 치고, 그렇게 효자가 되고, 영웅이 되었던 김유신 장군. 매정하고 잔인해야 출셋길이 열리는 거지. 우리의 시인처럼 이렇게 술이나 마시고, 하나의 생명체를 사랑한다고 칼등으로 목을 치는 흉내만 내서야 되겠는가, 시인아, 하나밖에 없는 말의 목을 치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다. 애인의 대문 밖에 흥건했을 말의 피, 역사는 매정하고 잔인한 자를 편들었지만 시는 시인의 편. <최정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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