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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반한 한국 (44) 미국인 로버트 쾰러의 서울 골목여행

1 아담한 상점이 오밀조밀 모인 만리시장 골목을 걷다 보면 허름한 단층건물이 눈에 띈다. 이곳이 바로 이발 장인 이남열씨가 운영하는 성우 이용원이다.




빌딩 숲속 살아 숨쉬는 서울의 흔적 … 청파동 골목길

언덕배기 미로 지나니 86년된 이발소



나는 한국에서의 첫 6년을 남부지방에서 보냈다. 경북 문경에서 영어강사로 일하다가 전남 광주대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문경에 살 때는 가까운 안동도 자주 찾았다. 고풍스러운 전통문화를 마음껏 음미하던 나날이었다.



 2003년 한 출판사에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서울로 이사를 했다. 깔끔한 상점과 명문 학교, 세련된 서양식 음식점, 무수한 채용기회까지. 확실히 서울은 편리한 도시였다. 하지만 나는 조금 두려웠다.



2 볼록거울에 비친 내 모습까지 담았다. 이렇게 나도 청파동의 일부가 됐다.
 한국의 수도로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은 다른 나라의 수도에 비해 전통적인 외양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서울은 적지 않은 문화유산을 잃었고, 이후 급격한 근대화를 거치며 빠른 속도로 변모했다. 기품 있던 옛 도읍은 어느새 못생긴 아파트와 고층빌딩이 즐비한 ‘콘크리트 숲’이 되어 버렸다. 걱정이 앞섰다. 내가 과연 여기서 행복할 수 있을까?



 하지만 서울 생활 10년차에 접어드는 지금 나는 “행복할 수 있다”고 명쾌하게 말한다. 오랜 발품 끝에 나는 빌딩 숲 틈바구니에서 살아 숨 쉬는 서울의 혼을 발견했다. 고즈넉한 고궁과 북촌 한옥마을을 거닐며 얼마나 가슴이 설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내 마음을 가장 사로잡은 곳은 따로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은 많지만 그 가치를 아는 이는 드문 곳. 바로 용산구 청파동이었다.



 어느 일요일 나는 우연히 청파동을 만났다. 서울역 뒤쪽 언덕배기에 크고 작은 집이 빽빽한 미로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오래된 골목을 헤매며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청파동은 한때 알아주는 부자동네였다. 1945년 해방 이후 내로라하는 부자들이 청파동으로 모여들었다. 한옥을 새로 짓기도 했지만, 몇몇은 일본인이 남기고 간 양옥에 보금자리를 꾸렸다. 당시의 일본식 고택은 아직도 언덕배기 곳곳에 남아 있다.



골목 누빈지 10년 … 여전히 나에겐 새로운 도시



이국적인 주택가를 탐험하다 좁은 샛길로 들어섰다. 그러자 만리시장 골목이 거짓말처럼 펼쳐졌다. 한옥과 일본가옥이 뒤섞인 골목 어귀에 허름한 단층건물이 눈에 띄었다. 마포구 공덕동의 ‘성우 이용원’. 빛 바랜 간판에 ‘성우 이용원’이란 다섯 자가 또박또박 박혀 있었다. 성우 이용원은 1927년 개업한 이래 86년간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유서 깊은 이발소다. 이발사 이남열(63)씨가 3대째 전통 이발 방식을 고수해 오고 있다. 그의 할아버지는 한국에서 두 번째로 이발사 자격증을 딴 이발 장인이라고 했다.



 이발소의 깨진 창문에는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건물이 낡아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했지만, 오랜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발소는 내내 붐볐다. 방문시간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10∼20분 정도의 기다림은 예사였다. 신문·방송이나 입소문을 통해 전국 각지에서 손님이 찾아들었다.



 이남열씨는 달변가였다. 머리를 맡기러 온 손님에게 가위질 소리를 들려주며 “라디오 전파를 세 번 넘게 탄 소리”라고 웃으면서 농을 쳤다. ‘이런 오아시스가 있어 서울이 살 만한 거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서울의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며 지난 10년을 보냈다. 덕분에 이 도시를 속속들이 알게 됐다. 답답한 일이 있을 때면 용산전자상가 뒤편 언덕 위에 서 있는 원효로성당에 가서 한강을 훤히 내려다보곤 했다. 서울에 대한 영문 월간지며 여행책자도 숱하게 펴냈다.



 하나 여전히 나에게 서울은 나날이 새로운 도시다. 두 번째 찾은 장소에서 전과 다른 감흥을 발견할 때의 희열은 정말이지 형언하기 힘들 정도다. 지금도 나는 찬찬히 되새긴다. 성우 이용원에서 이남열씨의 가위질 소리를 즐기며 커피를 마시던 어느 일요일 오후를. 바로 그런 순간에 나는 이 도시의 특별함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정리=나원정 기자

중앙일보·한국방문의해위원회 공동 기획



로버트 쾰러(Robert Koehler)



1974년 미국 출생. 97년 경북 문경에 정착해 영어를 가르쳤다. 6년 뒤 한국 문화를 해외에 소개하는 전문 출판사 ‘서울셀렉션’에서 일하기 시작하며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2009년 13년간의 한국 체험을 토대로 영문 저서 『서울 셀렉션 가이드(Seoul Selection Guide)』를 펴냈으며, 한국 관광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0 서울국제관광대상’ 최우수 외국 언론인상을 수상했다. 현재 월간 여행·문화 잡지 ‘서울(Seoul)’의 편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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