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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현 기자의 문학사이 ③ 문인수 시집 『적막 소리』

문인수
친지의 예고된 죽음을 듣는다. 머리 속에서 암이 자라고 있다고 했다. 지구상에 이 죽음을 멈출 방법은 없다. 시한부. 죽음의 초침은 다급하다. 아, 야속한 초침 소리. 죽음의 시간은 다가오고 가까운 이들은 눈물을 흘린다.



소리 내어 울지않는 ‘죽음의 시’

 문인수(67)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 『적막 소리』(창비)에서 어떤 죽음과 마주친다. 이 시집엔 참 많은 죽음이 담겨 있다. 그러나 시인은 단호하다. 죽음 앞에서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 죽음을, 담담하게, 노래한다. 친지의 예고된 죽음에 목놓아 울던 차에, 시인에게 한 수 배웠다. 시인이 진술한 몇몇 죽음을 옮긴다.



 죽음 하나. ‘이제, 다시는 그 무엇으로도 피어나지 마세요. 지금, 어머니를 심는 중……’(‘하관’ 전문)



 알겠다. 시인이 숱한 죽음을 노래하기까지 이런 사연이 있었던 게다. 시인의 어머니가 흙으로 돌아갔다. 시인은 어머니를 흙에 심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비는 것이다. 다시는 그 무엇으로도 피어나지 마소서. 어머니의 고된 생을 지켜본 까닭일까. 아들은 단호한 끝맺음을 바란다. 야속하지만 수긍이 간다. 어머니의 죽음은 어머니의 고통스런 삶이 마침내 끝났다는 증거니까.



 죽음 둘. ‘야, 딸아야, 일어나!//그 엄마는 오늘 아침에 또/스물두살 ‘아이’의 방을 바라 큰 소리를 질렀다//…//풀썩, 그 엄마의 무릎을 꺾는/저, 죽음의 팔힘/참, 너, 죽었지…’



 제목이 ‘산 증거, 혼잣말’이다. 스무두살 ‘아이’의 방은, 그 딸이 ‘살았었다’는 증거다. 그런데 그 산 증거는 곧 죽음의 증거로 판명 난다. 죽은 딸은 답이 없고, 엄마는 혼잣말을 한다. “참, 너, 죽었지.” 시인은 모질게도 시를 이렇게 끝내버렸다. 저 담담한 진술은 극한의 슬픔을 삼켜낸 것이겠기에, 삼켜버린 그 슬픔이 아른거려 그만 눈물이 고였다.



 이런 시들은 참 고맙다. 대신 아프고 대신 울어주는 것 같아서. 고마운 마음을 누르지 못하고 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지의 사연도 들려줬다. 시인은 시 한 수 읊듯 말했다. “살았기 때문에 죽는 것이죠. 죽음은 삶을 증언하는 아름다운 증거에요.” 이 대목에서 마음이 무너졌다. 죽음은, 그러니까 ‘산 증거’라는 게다. 이 세상을 다녀갔다는 증명서, 삶의 한 절차.



 그러나 산 자의 편에선 그렇게만 볼 순 없는 노릇이다. 산 자에게 죽음이란 누군가와의 영원한 결별이니까. 담담히 죽음을 노래하던 시인도 끝내 그 상실감만은 감출 수 없었다. ‘동행’이란 시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사람하고 헤어지는 일이 늙어갈수록 힘겨워진다. 자꾸, 못 헤어진다.’



 어디 노(老) 시인의 이별뿐이랴. 친지는 지금 제 머리 속에 암을 기르는 중이다. 차마 못 헤어지겠다. 자꾸, 못 헤어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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