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노트북을 열며] 김정은의 카리스마

이영종
통일문화연구소 차장
북한 노동당과 군부의 노(老)간부들은 요즘 새 지도자의 통치스타일에 적응하느라 분주하다. 김정일의 리더십과는 확 달라진 김정은의 공개활동을 수행해야 하는 이들의 당혹스러운 분위기는 관영 조선중앙TV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설날을 맞아 지난달 24일 만경대혁명학원을 찾은 김정은에게 간부들이 준비된 공연 관람을 권하자 “아이들이 쉬지 못하니 그냥 두라”고 한다. 학습용 대형 한반도 지형판을 소개하자 “이건 안 되겠으니 인민군대에 말해 제대로 된 걸 만들어 보내주겠다”고 말한다. 책상에 앉더니 높이가 맞느니, 안 맞느니 하는 식으로 질책하듯 제스처를 내보인다. 언 손을 녹이며 28세 지도자의 말을 수첩에 적어 내려가는 70대 당·군 간부의 얼굴은 긴장된 표정이 역력하다. 무엇 하나 쉬운 게 없구나 하는 모습들이다.



 북한TV에는 이런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기록영화’란 이름으로 하루에도 몇 차례 재방송되며 봇물을 이룬다. 앵글의 중심은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옮겨졌고, 우상화의 강도는 최고치로 올라갔다. 아동 프로에 등장한 다섯 살 안팎의 유아들까지 “김정은 선생님을 따라 배우겠다”며 눈물을 글썽이고 방청객인 부모들은 이런 모습에 감격스러워한다. 프로그램 사이사이에는 ‘발걸음’을 비롯한 김정은 찬양가요가 선보인다. 모두가 김정은을 ‘준비된 지도자’로 내세우고 충성과 체제 결속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김정은의 일천한 후계수업 경력과 부족한 카리스마는 화면 곳곳에 의문의 공백을 남긴다. 생일인 1월 8일에 맞춰 방영한 첫 번째 김정은 기록영화 ‘백두의 혁명위업을 계승하시여’에서 북한은 김정은이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하루 3~4시간만 잠자며 공부했다던 재학 시절 사진은 한 장도 제시하지 못했다. 스위스 베른의 국제학교를 다닌 청소년 시절 모습도 마찬가지다. 북한군 대장에 최고사령관까지 거머쥔 ‘위대한 영도자’가 실은 해외 조기유학에 병역기피란 걸 주민들에게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할아버지 김일성의 후광을 빌리려 한 데는 이런 속사정이 있을 수 있다. 짧게 자른 헤어스타일과 검은색 코트 같은 외모뿐이 아니다. 군인·주민들과 손잡고 얼싸안고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김정은의 모습은 쌀가마니에 털썩 앉아 협동농장원들과 환담하던 김일성의 젊은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짙은 선글라스로 표정을 감춘 채 주민들의 접근을 거부하며 군부대·공장을 짜인 일정대로만 돌던 김정일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의 이런 측면을 근거로 북한의 개혁·개방 가능성을 점친다. 서방 유학 경험이 서구문물과 개방에 대한 거부감을 덜어줄 것이란 얘기다. 그렇지만 2400만 명의 주민이 자신을 ‘인민의 영도자’로 대를 이어 떠받들게 공을 들이는 모습은 “나에게서 변화를 기대하지 말라”던 김정일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수령독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김정은은 ‘주체이데올로기와 선군정치의 프레임에 갇혀버린 슬픈 운명의 지도자’로 남겨질 수밖에 없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