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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새털 같은 가벼움

양선희
논설위원
‘무겁고 제약 많은 동네 vs 가볍고 흥미진진한 동네’. 이 중 살고 싶은 곳을 고르라면, 단연 뒤쪽 동네에 몰릴 거다. 이런 기준에서 보니 요즘 우리 사는 이 나라야말로 가볍고도 사람을 흥분시키는 흥미진진한 일이 끊이지 않는 ‘살기 좋은’ 곳이다. 최근 뉴스만 봐도 무게감이라곤 없는 가벼운 것들이 지천이다.



 한 예로 집권여당마저도 ‘새누리당’이라는 새털처럼 가벼운 이름으로 바꾸지 않았나. 또 박원순 서울시장이 ‘전두환 전 대통령 경호동을 폐쇄할 수 있는지’ 묻는 한 시민의 트위터에 “이미 확인해보라 했습니다”라는 트윗을 곧바로 날렸다는 뉴스도 가볍고 경쾌하다. 트윗이 돈 다음에야 담당 공무원들이 지시 여부를 확인하느라 진땀을 뺐든 말든, 전직 대통령인데 경호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성가신 고민도 없이 트윗으로 ‘휘리릭~’ 날려버렸다니….



 박 시장 얘기가 나왔으니 하나만 더 하면, ‘박원순식 뉴타운 출구전략’을 보면 이렇게 쉬운 걸 그동안 왜 못했나 싶다. 난마 같은 뉴타운에서 퇴각해야 하는 건 맞다. 한데 전쟁에서도 잘못 후퇴하다간 몰살당하기 십상이라 공격보다 퇴각전략이 더 어렵고 치밀해야 하는 법. 도심 난개발을 막고 계획적인 개발을 해야 하는 필요성, 사업 중단 시 향후 주택공급 전략, 조합이나 추진위가 쓴 막대한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 등 얽히고설킨 현안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퇴각이 쉽지 않았다. 한데 박 시장의 퇴각전략은 참으로 쉽다. 개발방식은 공동체·마을이라는 이상향 만들기로, 향후 주택공급 대책은 쿨하게 ‘알게 뭐냐’다. 해결이 어려울 것 같았던 뉴타운 조합 손실은 중앙정부에 ‘협찬’을 요청해 전라도민·제주도민의 세금으로 메워주면 되니 이 또한 간단하지 않은가.



 흥분되는 뉴스도 있다. 수감 중인 정봉주 전 의원을 응원한다며 비키니 여성들의 가슴 사진이 답지했다는 소식. 인터넷 방송 ‘나는 꼼수다’에서 방송한 ‘정 전 의원이 수감생활을 하며 성욕감퇴제를 복용하고 있으니 수영복 사진을 보내달라’는 생뚱맞은 주문에 여성들은 흔쾌히 사진을 보내고, 이에 “대박, 코피 조심하라”는 멘트를 날렸다는 얘기다. 당사자들은 성희롱 비난에도 아랑곳 않고, 각종 매체들은 적나라한 가슴사진과 함께 관련 기사를 실어 국민의 ‘안구(眼球)’를 자극하는 이벤트로 ‘승화’시켰다.



 그런가 하면 요즘 사법부에서 나오는 뉴스는 가볍고 후련하기도 하다. ‘가카의 빅엿’ 등 막말판사 3인이 막말 시리즈로 후련하게 권위를 털어버리더니, 판결에 정면 도전한 영화 ‘부러진 화살’이 개봉되자 영화의 원인이 된 재판의 주심판사가 해명한답시고 법도 무시하고 합의과정을 흔쾌히 공개했다. 요즘 애들 말투로 사법부에서 먼저 ‘권위를 쌈싸드시니’ 도처에서 부담 없이 판결을 때린다. 판결이 마음에 안 든다며, 검사가 ‘화성인의 판결’이라 욕하고, 시민들은 판사집에 계란을 던진다. 개인적으론 검찰이 혐의를 입증하려 증거를 치밀하게 대는, 일명 거증책임 실력이 부족했던 건 아닌지 의심도 들지만 무겁고 재미없는 이야기니 일단 덮자. 하긴 대통령도 ‘가카새끼’라 욕먹고 국내 의전서열 2위인 국회의장 권위도 지하에 박힌 마당인데 사법부의 권위 정도 들어먹는 거야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로써 이제 우리 사회를 눌렀던 권위와 같이 무거운 것들은 거의 사라졌다.



 정말 가볍고, 쉽고,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우리나라. 이런 곳에 살면 행복해야 하는데, 어째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행복지수는 26위이며, 자살률은 1위이고, 자기 삶에 만족하는 인구는 36%로 평균(59%)을 밑돌까. 세상은 가벼워지는데 왜 이리 삶은 나날이 무거워지고, 우리네 인생살이는 점점 고단하고 팍팍해지는 건지 모르겠다. 요즘 우리가 힘을 모아 달려가는 ‘진지함과 권위로부터의 탈피’ ‘가벼운 선동에의 몰입’은 정말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지. 오히려 마음 매어둘 데 없어 부초(浮草)처럼 떠돌게 하는 건 아닌지 의심한다면 너무 불손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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