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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잠을 자?" 최고 엘리트, 휴일 없이 밤샘 근무시키며…

금융감독위원회 산하 구조개혁기획단은 구조조정 업무를 위해 한시적으로 만든 조직이었다. 1998년 4월부터 활동을 시작했지만 현판식은 5월 11일 서울 여의도 증권감독원 사무실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연원영 당시 기획단 총괄반장, 윤원배 금감위 부위원장, 이헌재 금감위원장, 한상수 상임고문. [중앙포토]


“일이 많은 때 한가한 시절의 수단을 쓰는 건 지혜로운 사람의 준비가 아니다.(處多事之時 用寡事之器 非智者備也)”

[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27) 구조개혁기획단 출범
시장엔 이미 발등의 불
‘구조조정 스왓’ 35명
새우잠 자며 무섭게 일했다



 중국 고전 『한비자』에 나오는 말이다. 1998년 3월 금융감독위원장으로 내정되며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겼던 경구다.



 금감위는 원래 불을 끄는 곳이 아니다. 금융 회사와 시장을 감독하는 곳이다. 말하자면 불이 나지 않게 예방하는 게 임무다. 하지만 이미 불이 난 뒤였다. 불난리 속에서 한가하게 소화기 점검이나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평상시 정책이 먹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거다. 4월 초 금감위 산하에 ‘구조조정기획단’이라는 불 끄는 조직을 따로 만든 건 그래서였다. 구조조정 업무가 금감위 고유의 업무가 돼서는 안 된다. 불을 끄고 나면 조직을 떼어내 없애버린다는 계산이었다. 5월 초 금감위 내규로 정식 조직화하고 이름도 ‘구조개혁기획단’으로 바꿨다. 1년짜리 태스크포스(TF)팀인 구조개혁기획단은 그렇게 출범했다. 단장은 금감위원장인 나였다.



 구조개혁기획단은 별명이 많았다. 한 신문사는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불렀다. 다음은 기사 내용. ‘10㎝ 두께의 철문은 내부 직원이 열어주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다. 30대 박사가 주류인 팀원은 에어컨도 가동되지 않는 사무실에서 저녁 식사를 배달해 먹으며 밤 12시까지 근무한다. 집에도 못 가고 의자 두 개를 놓고 새우잠을 자기도 한다.’ 사실이다. 업무 강도가 셌다. 지금 신한지주 부사장을 맡고 있는 최범수 당시 자문관은 지금도 툴툴거린다. “물리적으로 해낼 수 없는 양의 일이었습니다. 다 못했다고 하면 위원장님이 ‘그러게 잠을 자지 말랬는데 왜 잠을 잤느냐’고 호통을 치시는데….” 이런 얘기를 들으면 참, 할 말이 없다.



 또 다른 신문사는 ‘수퍼 거지’라는 굴욕적인 별명을 붙였다. ‘구조개혁기획단 직원들은 6월까지 수당은커녕 야식비조차 받지 못했다. 금감위가 예산청에 호소해 이달부터 특근 매식비가 배정돼 겨우 저녁값 정도는 나온다….’ 공식 정부 조직이 아니었다. 파견된 이들로만 채워진 임시 조직이었다. 예산이 없었다. 일은 죽도록 시키고 직원들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 98년 11월 대통령 훈령으로 구조개혁기획단은 정식 조직이 된다. 대통령 직속 조직이 된 셈이다. ‘기획단 결정은 대통령이 책임진다’는 뜻이다. 그만큼 힘이 실렸다.



 기획단원들이 스스로 붙인 별명도 있었다. ‘스왓(SWAT·특수기동대)’이다. 기획단 사무실을 ‘워룸(War Room·전쟁상황실)’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긴박하고 중대한 임무를 수행한다는 뜻이었다. 특수기동대. 나는 그 별칭이 마음에 들었다. 긴장감과 자부심이 배어났다. 이들은 SWAT이라 불릴 만했다. 35명의 정예 조직, 최고의 엘리트들이었다. 중앙부처, 국책연구원을 가리지 않고 내가 쓰고 싶은 사람들을 데려왔다. “금감위로 파견을 보내달라”는데 다른 부처가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청와대가 주시하고 있는 구조조정을 맡은 곳이다.



 부단장 겸 총괄반장을 맡았던 연원영 등을 제외하면 가급적 관가 바깥에서 인재들을 끌어 쓰려 노력했다. 한국신용평가에서 함께 일했던 서근우·이성규, 한국개발연구원(KDI) 최범수 박사, 조세연구원 최흥식 박사, 대외경제연구원 권재중 박사, 금융연구원 출신 김성훈·이건호·김우진 박사 등을 발탁했다. 이들은 젊었다. 대개 30대 중후반이었다. 겁이 없었다. 관료 특유의 관성도 없었다. 과감한 정책을 냈고, 망설임 없이 실행에 옮겼다. 이들 외에도 금융 관련 공사와 민간 회사에서 수십 명을 차출해 고생시켰다. 어려운 때, 어려운 일이었다. 환경도 열악했다. 묵묵히 일해준 이들에게 늦게나마 이 지면을 통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나는 한국의 관료를 믿으면서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최고로 우수한 집단이다. 누구보다 빠르다. 웬만한 문제는 반나절 만에 원인을 분석하고 세 가지 이상의 상황별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관료는 관료다. 난생처음 보는 일을 맡기면 머뭇거린다. 관례대로 하는 버릇 때문이다. DJ 정부에서 1차 기업 구조조정과 2차 구조조정의 차이는 거기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2차 구조조정은 주로 관료들이 주도했다.



 구조개혁기획단은 무서운 속도로 구조조정 업무를 해치워나간다. 오죽 빨랐으면 정식 출범 두 달 만에 1차 은행 구조조정을 끝냈겠는가.



등장인물



▶고(故) 연원영 전 자산관리공사 사장




재무부 관료 출신이며 1998년 금융감독위원회 구조개혁기획단 총괄반장을 맡았다 . 2002년부터 2년간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을 지냈고 2009년 61세를 일기로 지병으로 별세했다.





기자가 묻고 이헌재가 답하다



구조개혁기획단은 ‘워룸’… 못 없앤 것 두고두고 아쉬워




이헌재 전 부총리는 평소 “조직은 스스로 존재 이유를 증명한다. 만들어 놓으면 일을 벌이게 된다. 그중엔 쓸데없는 일도 들어가기 마련”이라고 말해왔다. 임시 조직이었던 금감위 구조개혁기획단이 상설 조직이 된 걸 두고 한 말이다.



 -애초 입버릇처럼 말했다. 큰불 끄고 나면 구조개혁기획단을 없애겠다고. 왜 못 없앴나.



 “민간에서 데려온 이들은 다 돌려보냈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잘 안 되더라. 보낼 곳이 없었다. 내 밑에서 열심히 나라 위해 일한 사람들이다. 조직을 없애 인공위성처럼 떠돌게 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내가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있던 2000년 구조개혁기획단을 상설 조직화했다.”



 -어떤 문제가 생겼나.



 “공무원들이 계속 자기 자리를 만들어냈다. 금감위에 금융감독원과 똑같은 조직이 생겨나게 됐다. 은행감독국·비은행감독국 …. 결국 똑 같은 일을 여러 조직에서 하게 된 셈이다. 재정경제부 금융 정책 조직까지 치면 3겹짜리 조직이 됐다. 업무 처리만 복잡해지고 효율은 떨어졌다. 이 정권 들어와 기획재정부 내 금융정책 조직을 금감위로 합치면서 2겹 조직으로 줄긴 했지만.”



 -구조개혁기획단을 안 만들었으면 되지 않았나.



 “위기 상황이었다. 평소와 다르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보내야 했다. 그래야 불필요한 갈등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구조개혁기획단은 일종의 워룸 역할을 한 거다. 국제통화기금(IMF) 쪽에서 아예 대놓고 구조조정 전담 조직 신설을 요구하기도 했다.”



 -개선책은 뭔가.



 “더 큰 폭의 업무 조정이 필요하다. 금융정책과 감독, 금융위와 금감원의 역할·위상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 건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저축은행 사태 같은 게 재발하지 않도록 역할 분담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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