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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종의 미술 투자] 꽃·틀니·포르노그래피 … ‘불편한 진실’ 말하는 박정혁의 조형언어

서연종
하나은행 삼성역 지점장
‘아트(Art)’는 라틴어로 기술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르네상스 이전의 그림과 조각들은 솜씨 좋은 장인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기능의 영역이다. 르네상스 이후 도상의 반복을 벗어나 새로운 도상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영역으로 진전한다. 마르셀 뒤샹 이후에는 예술에서 개념이 중요해지며 현대적 예술가의 개념이 비로소 완성된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한 편의 그림들이 탄생하게 됐을 만큼 현대 사회에서 예술가의 힘은 세졌다. 한 사람 정도가 아니라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기도 한다.

 빌 게이츠는 평생 자기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작가로 폴 세잔을 꼽았다. 세잔은 인간이 다양한 시점으로 한 면에서 보이지 않는 다른 측면의 사물을 거의 동시적으로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그림으로 보여주었다. 정면을 보면서 배면·측면을 유추할 수 있는 세잔의 그림이 인터넷 세상을 여는 데 영감을 제공한 것이다. 현대 사회의 복잡성은 21세기 예술가에게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것을 요구한다. 복잡한 사회의 이면을 통찰해내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젊은 작가 박정혁은 작게는 우리 공동체와 크게는 인류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간섭’에 대해 그만의 조형 언어로 이야기한다. 공자는 수심이 깊은 강의 물고기는 거침없이 유영하지만 말라버린 저수지의 물고기들은 죽어가며 서로를 간섭한다고 했다. 즉, 간섭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나오는 낮은 단계의 상호통제와 구제의 방식인 것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마치 생선을 요리하듯 해야 한다”고 했다. 생선을 요리할 때 너무 자주 뒤적거리면 살이 부스러져 요리를 망치게 된다는 말이다. 불행하게도 간섭은 사람의 창조적 몰입을 방해한다. 사람에게 몰입은 최면과 같아서 매우 놀라운 성과를 낸다. 인류의 위대한 업적은 모두 몰입의 결과물이며, 스포츠에서의 위대한 명장면은 심판이 없는 듯한 무간섭의 상태에서 나온다. 구글·파타고니아 등은 간섭을 최대한 배제한 자율적 기업 문화로 세계적 기업이 된 예다.

박정혁의 ‘Parks Park 10-1’(2011), 130.3×193.9cm
 박정혁은 놀라운 집중력으로 이러한 간섭-크게는 개인에 대한 국가의 간섭, 작게는 개인과 개인의 간섭-에 대해 이야기한다. 박정혁의 화면에는 광고나 잡지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들이 중첩돼 있다. 야채, 꽃, 무기, 틀니, 위인의 조각상, 우는 아이, 종교적 상징물들, 포르노그래피의 한 장면 등이 제멋대로 난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광고는 욕망의 불꽃을 점화해 상품을 구매하게 만든다. 마치 내가 필요해 구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외부로부터 만들어져 주입된 타인의 욕망일 뿐이다. 국가의 계몽, 정치선전, 심지어 가장 자유로워야 할 예술계에서조차 이런 간섭은 행해진다. 일국을 넘어 가히 글로벌 자본주의의 간섭이라고 할 만하다. 박정혁은 여기저기에서 이렇게 개인의 욕망과 내면에 간섭하는 이미지들을 캔버스에 모아놓았다. 그러자 상품 광고의 매끈한 유혹의 껍질이 벗겨지고 역겨운 실체가 드러나고 말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포름알데히드로 꽉 채운 수족관에 난도질한 상어와 소를 넣어 들이대는 데이미언 허스트의 작품이나 소 가죽을 벗겨 붓다로 만든 장 후안의 작품과 비교해보면 박정혁의 작품은 점잖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는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의 작품이 낯설어 보일 뿐이다. 그는 간섭에 대해 우리를 전진하게 하는 것보다 제자리에 주저앉게 하므로 공동이익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미 그의 작품은 2009년 사치 갤러리에서 있었던 한국대표작가전(Korean Eye Moon Generation)에 출품된 이후로 프랑스와 베이징 등에서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흔히 미술과 관련해서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유행어가 있다. 여기서 ‘보인다’는 것은 단순히 본다는 뜻이 아니다. 보이는 것을 받아들이느냐 배척하느냐의 차이를 말한다. 창조와 변화의 메신저인 예술가를 예술가로 보느냐 기능인으로 보느냐의 차이가 국격을 결정한다.

[PS] 웬만한 중국 작가들의 작업실은 1만㎡(3000여 평)에서 4만㎡(1만2000여 평)에 이른다. 박정혁은 일산의 몇 평 안 되는 방에서 공동이익의 간섭에 대한 그의 생각을 집요하게 작업하고 있다.

서연종 하나은행 삼성역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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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