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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의 ‘위대한 식재료’] 서산 자연산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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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
언론 홍보를 통해 음식의 제철을 가늠하는 도시인들은 늘 제철보다 약간 이른 먹거리를 사먹게 마련이다. 항상 홍보란 시즌의 첫머리에 내보내기 때문이다. 연극 평도 늘 첫 공연을 관람하고 싣는 평이 많다. 앞으로 공연을 선택할 관객을 위한 배려다. 하지만 정작 공연이 제 맛을 내는 것은 충분히 무르익은 끝물 때이니 평론가는 설익은 공연을 보는 셈이다. 먹거리도 마찬가지다. 시즌이 시작될 때보다 한참 뒤에 먹어야 맛이 더 무르익은 것을 먹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굴이 김장철 즈음에 제철을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10월부터 4월까지가 굴이 나오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고의 맛을 내는 계절은 11월 말 김장철이 아니라 이보다 훨씬 뒤인 1, 2월이다. 김장철의 이른 굴은 몸통이 거무스름한 빛이 많지만, 1월에 들어서면서 굴은 추위에 탱탱하게 살이 올라 뽀얀 우윳빛을 띠게 되는데, 이때의 굴이 가장 맛있는 굴이다. 특히 느리게 자라는 자연산 굴은 더더욱 일찍 먹는 게 손해라고 할 만큼 겨울 한복판을 넘어서면서 맛과 향이 깊어진다.

 
살아있는 굴을 처음 보는 사람은 그게 굴인지 알아보지 못한다. 갯벌에 흩어져 있는 자잘한 돌멩이에 따개비 등과 함께 너저분하게 붙어 있으니, 그저 지나치기 십상이다. 너저분해 보이는 껍데기를 뾰족한 조새로 콕 찍어 까면, 그 안에 이렇게 맛있는 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일 년 중 가장 맛있는 굴을 찾아 충남 서산 지곡면 도성리 가로림만에 있는 분점도라는 작은 섬을 찾았다. 섬마을간월도어리굴젓(이하 ‘섬마을굴젓’)의 대표 유명근(49)씨의 안내로 오전 8시에 작은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갔다. 분점도는 굴 채취와 고기잡이로 사는 어촌 마을이었다.

 이곳의 굴은 ‘투석식’으로 양식하는 자연산 굴이다. ‘양식’과 ‘자연산’이란 말이 모순된다 싶긴 하지만, 흔히 자연산 굴이라 부르는 것이 투석식 양식을 한 굴이며, 양식 굴이라 부르는 것은 ‘수하식’으로 양식한 굴이다. ‘수하식’은 깊은 물속에 담가 키우는 방식으로 굴 종자를 인위적으로 넣어 키운다. 늘 물속에 잠겨 있으니 먹이가 풍부하고 편안한 환경이 마련되어 굴의 크기가 크고 생장도 빠르고 생김새가 번듯하다. 대신 맛과 향이 약한 게 흠이다. 대개 조수간만의 차가 크지 않은 남해안에서는 수하식으로 많이 키운다.

 그에 비해 ‘투석식’은 말 그대로 돌을 던져 놓는 것이다. 굴이 붙을 수 있는 가리비 껍질 같은 것을 철사로 엮어 꾸러미를 만들어 굴이 많이 있는 갯벌 여기저기에 그냥 던져 놓는다. 그러면 갯벌 돌멩이에 붙어 사는 굴이 그곳에도 붙어 새끼를 치고 성장한다. 종자도 넣지 않고 다른 인위적인 조작도 없이 그저 내버려 두었다가 겨울에 그 꾸러미를 들고 들어오는 것일 뿐이니 바윗돌에 붙어 있는 굴이나 동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연산이라 부르는 것이다.

걷는 걸음마다 종아리까지 푹푹 빠지는 갯벌에, 어떻게 중심을 잡고 서서 작업을 하는지 신기할 정도다. 탱탱 얼어붙는 날씨에 발도 시릴 터인데, 연세 드신 아주머니들은 허리를 구부린 채 참 재빨리도 손을 놀린다.

 주로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에서 이런 방식으로 키우는데, 굴이 늘 물에 담겨 있는 수하식과 달리 서해안 갯벌에서 크는 굴은 밀물 때에는 물에 잠겼다가 썰물 때에는 공기 중에 노출되기를 반복한다. 한여름 30도의 땡볕과 영하 10도가 넘는 강추위를 바위에서 견디며 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굴은 빠르게 생장하지 못해 크기가 자잘해지는데, 대신 강하고 탱탱해진다. 당연히 조건이 좋은 곳에서 자란 수하식 양식 굴에 비해 맛과 향이 월등히 강하다. 그래서 크고 번듯하게 생긴 양식 굴은 전이나 튀김 등에 적당하지만 자연산 굴은 생식할 때에 아주 맛있다.

 그저 갯벌에 내버려 두어도 되련만 구태여 투석식으로 양식을 하는 이유는 굴 채취 작업이 쉽기 때문이다. 갯벌 바위에 붙은 굴은 굴 캐는 조새(끝이 뾰족한 도구)로 직접 캐어 와야 한다. 그러니 장화 신고 푹푹 빠지는 갯벌에서 중심을 잡으며 허리를 구부린 채 일을 하느라 힘이 많이 든다. 그런데 투석식 양식은 던져 놓은 꾸러미를 들고 작업장에 들어와서 굴 껍질을 깐다. 작업 자세도 덜 힘들고, 기후조건이 나빠도 일을 할 수 있어 작업이 수월하다. 날씨가 좋으면 직접 갯벌에 나가 작업하고, 한꺼번에 많이 생산을 해야 할 땐 투석한 것을 남자들이 가지고 들어오고 그것을 아주머니들이 모여 앉아 까는 것이다.

 굴조차 탱탱 얼어붙는 추운 아침에 아주머니들이 바로 캐어온 굴을 맛보았다. 짭짤한 소금물에 헹군 굴을 대접에 수북이 담아 깨소금과 함께 먹었는데, 맛이 아주 진하고 향기로웠다. 맛이 이러니 초고추장을 찾을 필요가 없다. 그저 소금과 깨소금 정도의 간결한 양념이어야 이 진한 굴 맛이 제대로 살아나는 것이다.

 맛있어 죽겠다는 표정을 보고서도 ‘충청도 양반’들은 당연하다는 듯 빙긋이 웃기만 한다. “어딧 굴이 젤로 맛있슈?” 유명근 대표가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동네 분들에게 이런 당연한 질문을 한다. 그저 ‘당연히 우리 게 제일 맛있지!’라고 말해버려도 될 터인데, 아저씨들은 매우 심사숙고하는 목소리로 “에, 아마 근방에서 우리 분점도 굴이 젤로 맛있을 규.” 나가는 길에 유 대표는 우리에게만 살짝 말한다. “저 옆댕기에 있는 우도에 가믄 우도 굴이 젤 맛있다 그류. 근디 이 동네 가로림만 굴은 다 맛있슈. 올해 분점도 굴은 우리 회사가 몽땅 샀슈.” 이 충청도식 대화법, 정말 재미있다.

 말할 것도 없이 굴젓의 생명은 재료, 즉 굴이다. 사실 굴·소금·고춧가루가 좋으면 굴젓은 맛있게 마련이다. 그러니 굴젓 회사는 좋은 굴 확보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섬마을굴젓에서는 100% 서산 굴만 고집한단다. 그 말은 그렇지 않은 업체도 많다는 의미다. 그래도 서해안 자연산 굴을 쓰면 좋은 것이고, 심지어 양식 굴을 쓰는 곳도 많다고 했다.

  하긴 나도 양식 굴로 담근 어리굴젓을 사본 적이 있었다. 마트 행사상품으로 비교적 싸게 파는 굴젓이었다. 집에 와서 찬찬히 살펴보니 굴이 아주 크고 흐들거렸다. ‘아차, 양식 굴이구나!’ 싶었다. 굴 맛이 싱거우면 양념 맛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간이 짜고 물엿이나 설탕의 단맛도 너무 강했고, 아주 매웠다. 이러니 이런 강한 맛들을 어우러지게 하기 위해 화학조미료를 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굴에 좋은 천일염 섞어 잘 삭힌 것을 ‘백젓’이라 한다. 여기에 고춧가루를 비롯한 양념을 넣어 섞으면 어리굴젓이 완성된다. 백젓이 또랑또랑하고 맛이 있으니, 양념을 담백하게 해 진한 굴 향을 살려낼 수 있다.
 어리굴젓은 오로지 소금만 넣어 20도 정도의 온도에서 15일간 일단 익힌 후에 양념을 한다. 소금만 넣어 익힌 굴젓은 노르스름한 빛깔로 변해 있는데, 이것을 백젓이라 한다. 여기에 고춧가루 등의 양념을 버무리면 어리굴젓이 완성되는 것이다.

 양념하기 전의 백젓을 보니 그것도 굴의 알이 탱탱하고 또랑또랑했다. 이런 탱탱한 질감은 1년생 굴로는 어림도 없단다. 2~3년 이상 자란 굴을 써야만 젓을 담가도 흐물거리지 않고 탱탱하다는 것이다. 몇 년 된 굴인지 굴 크기로 판별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보면 안단다. 간월도에서 태어나 4대째 가업을 이어받은 사람인데, 그것도 모르겠느냐는 투다.

 호기심이 발동해 백젓을 맛보았다. 와, 이것도 맛있다. 아무래도 고추 양념 섞은 것보다는 간이 강하지만, 마치 양념하지 않은 조개젓이 깨끗한 바지락조개 맛을 내는 것처럼 백젓도 굴의 맛이 강하고 깔끔했다. 그래서 인터넷 택배판매에서만이라도 백젓을 판매해 보라고 권했다. 평안도식 녹두빈대떡에 얹어 먹으면 그 고소한 맛과 어우러져 기가 막힐 것 같다. 게다가 자신의 입맛에 맞게, 혹은 더 좋은 고춧가루로 양념을 쓰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게 아닌가.

 고춧가루 이야기가 나왔더니 유 대표가 또 참지 못하고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들은 생협에 물건을 납품하기 때문에 그 까다로운 기준을 다 맞추어야 한단다. 국내산 아닌 것은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중간에라도 재료 속인 것이 발각되면 당장 계약이 취소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예 생협 쪽에서 증명하는 고춧가루를 가져다가 쓴다고 했다. 그게 속이 편하단다.

  갓 지어 김이 펄펄 나는 쌀밥에 빨갛게 양념한 어리굴젓을 턱 얹어 입에 밀어 넣으니 그저 씹을 것도 없이 꿀떡 넘어간다. 확실히 양념 맛이 담백하고 굴 자체의 맛이 강하다. 아, 입만 점점 수준이 높아지니 참 큰일이다.

 글=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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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