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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 여론 女論] 열차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금년도 앞으로 닷새를 남기고 턱 앞에 박두하였는데 연말의 여행객은 예년에 보지 못하는 폭주를 보여 전 조선 각 역은 안비막개(眼鼻莫開)의 분주상(奔走相)을 보이고 있다. 경부, 경의 양 국제간선은 기차마다 만원이어서 서서 가는 승객이 태반이며 부정기급행과 임시급행도 모두 초만원을 이루어 새해 귀성객들로 역원들은 눈코를 못 뜨고 있다.

특히 각 급행열차는 삼등은 말할 것도 없고 일, 이등도 만원이어서 정원보다 초과하여 서서 가는 사람이 많은 형편인데 침대권은 금년분은 벌써 매진되었다.”(‘침대권의 공황(恐慌), 금년분은 전부 매진’, 『동아일보』 1939년 12월 27일자)

 근대 이후 전통적인 대가족제도가 해체되면서 경향(京鄕) 각지로 떨어져 살던 일가친지들은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나 겨우 모이게 되었다. 그런데 명절의 ‘고향 가는 길’은 그립지만 피곤한 여정이다. 이때 고향으로 가려 하는 사람들을 수송하는 데에 가장 오랫동안, 효과적으로 기여해 온 대중교통수단이 열차일 것이다. 1899년 서울과 인천 사이에 철로(경인철도)가 놓이고 1908년 최남선이 ‘경부철도가’를 읊던 때부터 열차는 한국인의 운신의 폭을 급속도로 넓혀주었다. 설령 철도 부설의 의도가 조선인의 편의가 아니라 조선에 대한 경제적 이권침탈에 있었다 해도 말이다.

 그런 만큼 열차가 귀성객들로 초만원 사태를 이루었던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닌 모양이다. 1939년에도 귀성하려는 인파들로 모든 열차표는 매진되었을 뿐 아니라 입석 승객도 정원을 초과할 지경이었다. 오늘날에도 설과 추석열차표는 한 달 전에 판매해도 이틀이면 동이 나는 실정이다. 자동차로 고향에 가야 하는 사람들에 비해 열차를 이용한 귀성길은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며 편하다. ‘매표 전쟁’만 뚫고 나면 ‘귀성길 전쟁’은 치르지 않아도 된다.

 더구나 KTX가 생긴 뒤로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데도 영화 한 편 볼 시간이면 된다. 대전은 웬만한 서울시내처럼 가깝게 느껴질 정도다. 또 수익성 높은 KTX 노선 덕분에 적자노선을 타야 고향에 갈 수 있는 사람들도 편의를 제공받고 있다.

 이런 고마운 열차의 운영 문제를 두고 최근 안팎으로 시끄럽다. KTX 민영화 문제는 명절에 열차를 타고 모인 전국 각지의 친지들 사이에서도 한 번쯤은 오르내린 화제가 되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이 ‘민족의 교통수단’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아직 결론이 나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몇 년 내에 지금과는 다른 귀성열차 풍경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100년간 온 민족이 애용해 온 교통수단인 만큼 우리 모두가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일이다.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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