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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25) 대변인에게 경고하다

1998년 4월 취임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대변인직을 새로 만들고 그 자리에 김영재(그림) 당시 증권감독원 국장을 앉힌다. 이 위원장은 그에게 개혁을 위한 대국민 홍보와 조직을 사회적 비난으로부터 보호할 방패 역할을 함께 맡겼다.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이 친구 많이 긴장했나. 초봄에 웬 땀까지…. 위원장이 된 내가 어려운가. 1998년 4월 3일 서울 남대문로 은행감독원에 마련된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실. 나는 증권감독원 김영재 국장을 불렀다.

 “당신이 김영재 맞지. 이번에 어려운 일 좀 해줘야겠는데…. 금감위 대변인을 맡아줘야겠네.”

 김영재는 크게 놀란 표정, 눈이 동그래졌다.

 “아이고…. 무조건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런 그에게 몇 가지를 강하게 주문했다.

 “개혁에서 중요한 게 두 가진데, 뭔지 알겠소.”

 “….”

 “하나는 강력하고 확고한 리더십, 또 하나는 대국민 홍보요. 둘 중에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둘째요. 어차피 첫째는 DJ 몫이고…. 개혁이 성공하려면 국민이 전폭적으로 지지해야 돼. 그렇지 않으면 실패하거든. 그 일을 맡으라는 거요. 무슨 말인지 알겠소?”

 김영재는 또 고개를 깊이 숙인다.

 “무조건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나 더 명심할 게 있소. 개혁을 하면 사방이 적이오. 죽을 각오를 해야 하오. 졸면 죽거든.”

 김영재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나는 세 가지를 당부했다.

 첫째는 돈. “개혁하면 사방이 적이다. 어떤 경우에도 돈을 받지 마라. 기자들과 밥 먹을 땐 반드시 법인카드를 써라. 근거를 남겨라. 절대 외부 사람이 돈을 내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내 앞으로 나온 법인카드를 김영재에게 건네줬다.

 둘째는 집중. “절대 앞서 나가지 마라. 일절 다른 일엔 개입하지 마라. 홍보에만 전념하라.”

 셋째는 공부. “모르면 밤새워 공부하라. 그래도 모를 땐 언제든 내게 물어라. 완전히 소화하고 난 다음에 기자들과 대화하라.”

 김영재는 꼼꼼히 받아적더니 결의에 찬 표정으로 나갔다. 나중에 들으니 내가 부르기 전 그는 사표를 쓸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내가 증권감독원 증권관리위원이던 91년 그는 증감원 과장이었다. 그때 내게 보고를 소홀히 하곤 했는데 그런 내가 금감위원장이 됐으니 스스로 ‘나는 망했다’고 지레짐작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대변인. 금감위원장에 내정된 직후 언론의 협조를 어떻게 얻어낼까 고민했다. 개혁엔 언론의 도움이 필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게 대변인이다. 대변인이란 직함은 당시 청와대·정당에서나 쓰였다. 무게감이 있었다. 홍보실장이나 공보관은 어감이 다르다. 대변인이어야 했다. 홍보실장은 기업체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느낌이 강하다. 공보관은 앵무새 같은 느낌이다. 책임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김영재는 가장 먼저 떠오른 대변인 후보였다. 나는 사람을 관찰하는 버릇이 있다. 일단 특성이 잡히면 머릿속에 ‘이런 데 쓰면 잘 맞겠다’고 저장한다. 사람 쓸 곳이 생기면 그렇게 저장된 내용이 튀어나온다. 김영재는 넉살도 배짱도 있다. 부지런하고 우직하다. 기자들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의 임무는 암묵지(暗默知)를 만드는 것이다. 암묵지. 최우석 전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에게 배운 단어다.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는다. 어디 적혀 있는 것도 아니다. 조직에 은연중에 체화된 지식이다. 암묵지는 그래서 무섭다. 시비를 걸 수도 없다. 틀렸다고 바로잡을 수도 없다. 소리 없이 집단을 움직인다. 내가 원한 98년 4월의 ‘암묵지’는 이런 것이었다.

 “이제 위기관리는 금융감독위원회가 맡는다.”

 금감위 자체는 법적으로 아무 힘도 없다. 응급조치고 뭐고 할 수 없다. 금융감독법에 따라 금융시장을 감시·감독할 뿐이다. 암묵지를 통하지 않고는 시장을 움직일 수도, 구조조정을 지휘할 수도 없다. ‘위기관리를 주도하던 비상경제대책위원회, 그 비대위 기획단장이 금감위원장이 됐다. 이제 구조조정 전선의 통제권은 금감위가 쥔다’. 나는 이런 암묵지가 금융시장에 뿌려지길 원했다. 그리고 시장은 실제 그렇게 반응해 줬다.

 ‘암묵지’는 금감위를 작동하게 한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흔히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더 암울했다. 사회 전체론 뼈를 깎는 것이겠지만, 깎여나간 사람 입장에선 전체를 잃는 것이 구조조정이다. 개인에게 더 혹독한 대가를 요구하는 작업인 것이다. 그런 만큼 암묵적으로 국민이 받아들여주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게 구조조정이었다. 지금 구조조정을 반대해 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그리스 국민과 98년 묵묵히 금을 모으던 한국 국민은 어떻게 다른가. 그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이 암묵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영재는 내 기대 이상으로 대변인 역할을 잘했다. 내 당부 그대로 잠을 거의 자지 않다시피 했다. 내 입장을 대변하느라 기자들과 격렬히 싸울 때도 많았다. 우직하게 일하느라 적도 많이 만들었다. 몇몇 언론사에선 “김영재를 당장 자르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나중에 그가 종금사에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을 때 가슴이 많이 아팠다. 어찌 보면 나 때문인 것 같아서다.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됐다.

등장인물

▶김영재(64)


금융감독위원회 초대 대변인. 2년여 동안 금감위의 ‘입’ 역할을 소화했다.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로 있던 2000년 말 정치권과 갈등을 빚으면서 청탁과 함께 돈을 받았다는 혐의로 구속됐지만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는다. 현 칸서스자산운용 대표이사 회장.

기자가 묻고 이헌재가 답하다

대변인은 조직 희생양
여론 나쁘면 책임 떠넘겨


“대변인은 조직의 방패다.” 이헌재 전 부총리는 “대변인 자리를 만든 속내는 따로 있다”고 말했다.

 - 무슨 뜻인가.

 “금융감독위원회의 공식 입장은 대변인을 통해서만 나오게끔 했다. 말하자면 창구 단일화다. 그런데 가끔 정책이 시장에 혼선을 줄 때가 생긴다. 그러면 ‘원래 의도가 그게 아닌데 대변인이 잘못 전달했다’고 책임을 떠넘기는 거다.”

 -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인 셈인가.

 “‘이런 정책은 반응이 어떨까’ 싶은 것들은 대변인을 통해 슬쩍 흘렸다. 반응이 좋지 않다 싶으면 ‘확정되지도 않은 내용을 대변인이 흘렸다’고 호통치고 없던 일로 했다.”

 - 개인한테 못할 짓 아닌가.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런 장치가 있어야 조직이 산다.”

 - 지금도 이런 장치가 작동하고 있나.

 “요즘은 조직 수장들이 중구난방 말을 너무 많이 한다. 장관급이 말실수를 해놓으면 수습이 안 된다. 대통령이 일일이 나서서 ‘잘못된 발언’이라고 정정할 순 없잖은가. 그래서 혼란이 굳어진 사례가 꽤 있다.”

 - DJ 때와 달리 지금은 신문·방송 외에 SNS다 해서 홍보하기 더 어려울 거다.

 “매체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의 밀실 홍보가 문제다. 정책을 다 정해놓고 정부를 잘 대변할 매체만 골라 내용을 흘린다. 그러면 국민은 원하는 정보를 다 못 얻으니까 상상을 하고, ‘배경에 뭐가 있지 않을까’ 하면서 음모론을 만든다. 정책은 결정해 놓고 홍보하는 게 아니다. 고민 단계부터 언론을 통해 국민과 공유해야 한다.”

 - 예를 들자면.

 “1998년 은행 합병을 보자. 합병 방식을 놓고 기자들과 토론했다. 그런데 4대 강이나 자유무역협정(FTA)은 다 정해놓고 홍보했다. 그러면 ‘일방적이다’ 하고 국민이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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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