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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국민당보다 심하다는 공산당 부패 사슬 끊을까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은 유명한 축구광이다. 그가 지난해 승부 조작 등으로 얼룩진 중국 축구계를 개혁한 것처럼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제대로 척결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시진핑이 2008년 7월 베이징 올림픽을 한 달 앞두고 허베이성 친황다오 축구경기장을 찾아 시축하고 있다. [인민일보]


“조카가 국가주석이 된 뒤 인민을 위해 복무해 10년 안에 중국을 전면적인 ‘샤오캉(小康·의식주가 넉넉한 수준) 사회’로 만들어 주길 바란다.” 지난해 11월 30일 시진핑(習近平·59) 중국 국가부주석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勛·1913~2002)의 고향인 산시(陝西)성 푸핑(富平)현 중허(中和)촌. 시중쉰의 옛집 ‘시원로옛집(習老故居)’을 지키고 있는 시 부주석의 당숙 시중파(習仲法·82)는 이렇게 말했다. 시진핑 시대를 맞는 소망이다. 그는 현지 생활에 대해 “배불리 먹는 원바오(溫飽) 수준은 이미 실현했지만 아직 샤오캉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모두가 잘살기를 바라는 그의 기대가 실현되기 위해 시진핑이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는 듯하다.

‘시진핑의 길’에서 한·중관계 미래를 묻다 ⑤·끝 험난한 부정부패 척결의 길



 첫째는 부정부패다. 지난해 12월 8일.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시 펑화(奉化)에서 만난 주민 정(鄭·35)은 중국의 극심한 부패 현상에 분노를 쏟아냈다. 그는 “공산당과의 국공(國共)내전에서 국민당의 장제스(蔣介石)가 승리했다면 지금 이곳이 중국에서 가장 잘 사는 지역으로 발전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당은 심한 부패 때문에 대륙에서 쫓겨나지 않았느냐고 묻자 “지금 공산당은 그때의 국민당 정권보다 (부패가) 더 심하다”고 했다. 이곳이 장제스의 고향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현지에서 느낀 공산당의 부패에 대한 혐오감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저장성은 시진핑이 2002년부터 약 5년간 당서기로 일한 곳이다.



산시성 푸핑현 중허촌의 시진핑 아버지 시중쉰의 옛집(習老故居) 전경과 이를 지키는 당숙 시중파의 모습. [푸핑현=장세정 특파원]
 실제 지난해 11월 말부터 20여 일간 시진핑의 발자취를 취재하면서 현지 중국인들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은 “탐관오리가 아닌 공무원이 없다(無官不貪)”는 한탄이었다. “국민당이 낫겠다”는 말은 차라리 절규였다. 도시와 농촌, 계층 간 소득 격차에 대한 불만도 컸고, 분배 정의와 민주적 권리에 대한 열망도 강했다.



 1월 5일 허난(河南)성 융청(永城)에서 만난 택시기사 왕(王·31)은 “나도 지원병으로 6년간 군대에서 근무했지만 공무원의 행정 처리에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높은 곳이 중국이라고 들었다. 그 비용은 고스란히 내 주머니에서 나간다. 대낮에 공무원들에게 도둑질당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목청을 높였다.



 부패로 인해 힘 없는 국민들이 일상생활에서 불이익을 보는 크고 작은 사례는 취재 현장에서도 접할 수 있었다. 장쑤(江蘇)성 쉬저우(徐州)에서 만난 택시기사(47)는 “쉬저우의 311번 국도 통행료가 10위안(약 1800원)인데 겨우 먹고사는 사람들의 생활수준에 비해 턱없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톨게이트 인근의 비포장 농로로 우회하는데 부패한 관리와 결탁한 폭력배들이 5위안씩 갈취해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국도 통행료를 5위안 정도로 낮추면 해결될 텐데 주민의 불만이 제대로 정책에 반영되지 않아 정부에 대한 원망만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진핑 시대의 민생 분야 최대 과제가 부패 척결과 공평정의 실현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와 증언들이다. 상하이(上海) 중국유럽공상관리학원(CEIBS)의 왕젠마오(王建?·57) 교수는 “(시진핑 시대에는) 공정한 사회와 분배 정의 실현을 위해서라도 ‘큰 정부, 큰 국유기업, 큰 국유은행’의 3대 체제를 개혁해야 한다”면서 “이를 통해 중국의 발전 방향을 구조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문했다.



 시진핑은 1989년 푸젠(福建)성 닝더(寧德)시 당 서기로 일할 때 반부패 드라이브를 건 적이 있다. 당시 그는 “공직자가 법을 어기면 당과 인민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공직자는 돈 벌 생각을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그러나 부패 척결과 청렴한 정부를 만드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지적들이다. 시진핑이 85년부터 3년간 부시장을 지낸 푸젠성 샤먼(厦門)시는 99년 중국 역사상 최대 규모인 530억 위안(약 9조5400억원)의 ‘위안화(遠華)그룹 밀수 사건’이 터진 곳이다. 시진핑은 이 사건에 연루되지 않아 청렴성을 인정받았지만, 라이창싱(賴昌星) 위안화그룹 회장의 로비를 받은 공안부·세관 등 정·관계 고위 인사들이 밀수를 묵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0년 주룽지(朱鎔基) 당시 총리는 이 사건과 관련해 북송(北宋) 시절의 재판관 포청천(包靑天)처럼 반부패를 외치며 “백 개의 관을 준비하라”고 호통쳤을 정도다. 라이창싱이 공직자들을 접대한 7층짜리 붉은색 빌딩 훙러우(紅樓)는 당시 주 총리의 지시에 따라 반부패 학습장으로 공개됐다. 건물 안의 호화 음식점과 사우나 시설, 침실을 그대로 전시했다. 그러나 반부패 운동은 한순간의 이벤트일 뿐이었다.



 지난해 12월 5일 찾아간 훙러우의 반부패 교육장은 흔적도 없었다. 대신 중국이동통신의 영업장으로 개조돼 사용되고 있었다. 한 직원은 “2009년에 훙러우 내부 시설물을 철거했고 지금은 통신사가 영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간이 가면서 반부패 의지가 약해지고 결국엔 반부패 학습장마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반부패 뿌리뽑기가 얼마나 어려운 숙제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베이징 국제경제윤리연구중심(CIBE)에 따르면 중국 사회의 뇌물과 탈세액이 중국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5%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을 정도다.



 시진핑은 2002년 중국중앙방송(CC-TV) 인터뷰에서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 유한(有限)한 정부, 서비스형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문제는 강력한 실천이다. 역대 최고지도자들이 제대로 손을 대지 못한 부패와 격차(양극화) 문제에 시진핑이 어떻게 대처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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