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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여인천하

신라에만 여왕이 존재했던 것은 신라만 유독 여성의 지위가 높았기 때문은 아니다. 『신당서(新唐書)』 ‘신라조’는 “시장(市)에서 사고파는 것은 모두 여성들이 한다”고 밝혀 신라 여성들이 가정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비단 신라만의 것이 아니라 고대 삼국 공통의 풍습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고대에는 여성의 지위가 높았다.

 신라에만 여왕이 존재했던 이유는 신라는 성골(聖骨), 즉 ‘성스러운 뼈다귀’의 혈통을 남녀의 성별보다 더 중요한 가치로 봤기 때문이다. 유학자 김부식(金富軾)은 『삼국사기』 ‘선덕왕조’에서 “신라는 여자를 세워 왕위에 있게 했으니 진실로 난세(亂世)의 일이며 이러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혹평했다. 그러나 나라가 망할 뻔한 것은 선덕의 전왕들 때의 일이었다. 전왕인 진평왕 30년(608) 고구려가 북쪽 국경을 침범해 8000명을 사로잡아갔다. 동왕 재위 46년(624) 10월에는 백제군이 속함(速含·지금의 함양) 등 6개 성을 공격해 3개 성이 함락되고 급찬 눌최(訥?)가 전사했다. 이듬해(625)에는 진평왕이 신라가 당나라로 가는 길을 고구려가 막고 자주 침범한다고 당나라에 호소했고, 그 다음해(626)에는 주재성(主在城) 성주 동소(東所)가 백제군에게 전사했다. 선덕여왕 즉위 때는 고구려·백제 틈바구니에서 생존조차 불투명한 상태였다.

 그러나 『삼국유사』 탑상(塔像) 편은 선덕여왕이 재위 14년(645) 황룡사(黃龍寺) 9층탑을 완성했는데, ‘1층은 일본(日本), 2층은 중화(中華), 3층은 오월(吳越)… 9층은 예맥(穢貊)을 진압’할 수 있기 때문에 쌓았다고 전하고 있다. 남자 국왕들은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도와달라고 울었지만 선덕여왕은 중화까지도 진압하기 위해 황룡사 9층탑을 쌓았던 것이다. 선덕여왕은 주변 9개국 복속이란 남자 왕들이 꿈도 못 꾸던 새로운 어젠다를 제시하고 그 실현을 위해 폐출당한 진지왕의 손자 김춘추와 소외받던 가야계 김유신 같은 비주류를 전격적으로 발탁했다. 선덕여왕 때 나라가 망하기는커녕 그가 등용했던 김춘추·김유신이란 두 비주류가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다.

 한명숙 전 총리가 민주통합당 새 대표로 선출되었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 그리고 통합진보당 이정희·심상정 공동대표까지 가히 여인천하다. 이들 중 누가 남성 국왕들과 전혀 다른 어젠다를 제시하고 실천했던 선덕여왕의 성공담을 21세기 한국 사회에 재연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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