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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의 시시각각] 십대에게 체육을 허하라

이나리
경제부문 차장
곧 고등학생이 되는 아들이 있다. 학교폭력 문제가 남 일 같지 않다. 며칠 전 모 신문을 보다 표 하나에 눈이 멈췄다 이른바 ‘왕따 폭력 가해학생 징후 체크리스트’다. 작성자는 교육부 장관까지 지낸 학계 원로다. ‘자존심이 강하다’ ‘밤늦도록 자지 않는다’란 항목도 이상했지만 가장 황당한 건 ‘육체적 활동, 체육 등을 좋아하며 힘이 세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에너지 넘치고 체육 ‘따위’나 좋아하는 애들은 잠재적 문제아라는 건가. 몸과 스포츠에 대한 우리 교육계의 뿌리 깊은 편견 한 자락을 본 듯해 맘이 언짢았다.



 외국은 어떨까. 2009년 여름부터 1년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소도시에 살았다. 아들은 첫 등교일부터 땀범벅이 돼 돌아왔다. 아들이 다닌 공립학교엔 주4회 체육시간이 있었다. 2㎞ 구보는 기본. 방과후 활동도 대부분 테니스·수구·축구 같은 스포츠였다. 아들 친구 녀석 하나는 평범한 실력임에도 학교 육상부에서 열심히 활동했다. 또 다른 친구는 공부보다 테니스에 더 열성이었다. 각각 하버드대·코넬대 박사인 한인 부모는 아이를 적극 지원했다. “공부에 지장이 많겠다”고 하자 그 엄마가 말했다. “박사 공부 때 가장 아쉬웠던 게 체력적 열세였다. 난 하룻밤만 새워도 힘든데 미국 애들은 이틀 새우고 조깅까지 하더라.” 그런 강인함을 길러주고 싶고, 뭣보다 미국에선 팀워크와 스포츠맨십 없이는 리더가 되기 힘들다고 했다.



 해외 생활을 해본 이들에게 이런 체험은 흔하다. 스웨덴 학교는 점심시간이 90분, 쉬는 시간이 각 30분이다. 쉬는 시간은 공부 금지다. 교사가 교실 문을 잠가버린다. 맑은 공기 마시며 뛰놀라는 것이다. 프랑스 교육행정엔 ‘체육은 프랑스어·수학과 비중이 같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독일 고3에게도 영어는 선택, 체육은 필수다. 핀란드는 아예 체육 수업을 학생의 기본권으로 본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고3까지 주4회 체육수업이 의무다. 씁쓸한 건, 입만 열면 글로벌 리더 양성을 외치는 우리 교육이 이런 글로벌 스탠더드로부터는 갈수록 멀어지고 있는 점이다.



 체육 경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1994년 대입 체력장이 없어지면서 고교 체육수업은 자습시간, 잘 해봐야 ‘광합성 시간’ 정도가 됐다. 여기 결정타를 먹인 게 지난해 본격화한 집중이수제다. 특정 학기에 특정 과목을 몰아쳐 이수해도 되니, 1학년 때 체육 학점을 다 따게 한 뒤 2, 3학년은 아예 운동장 구경을 안 시켜버리는 거다. 이재완 대진여고 체육교사는 “3년 먹을 음식을 1년에 몰아 먹인 뒤 알아서 크라는 식”이라고 했다. 이유야 빤하다. 입시 집중을 위해서란다. 십대들이 덩치 큰 약골이 돼가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더 큰 문제는 ‘지육·덕육·체육’이라는 전인교육의 포기다. 세계 명문교들은 하나같이 체육을 중시한다. 단결력·절제력·인내심, 자기 희생의 용기와 깨끗이 승복하는 자세, 약자에 대한 배려를 몸에 배게 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교장, 학부모가 나서 체육수업을 막는다. 인성이든 체력이든 일단 좋은 대학만 붙으면 그만이란 식이다. 이는 학교폭력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국·영·수 문제를 암만 풀어도 공감·배려의 능력은 안 생긴다. 공부보다 운동이 좋은 아이들은 또 그 영역에서 존경받고 리더가 될수 있어야 한다. 길이 없으니 엉뚱한 데서 존재를 증명하려 든다. 류태호(체육학) 고려대 교수는 “질풍노도의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공적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러다간 정말 폭발하고 말 것”이라며 진심으로 걱정했다.



 하지만 자녀 입시에 맹목적으로 몰입한 부모를 설득하기는 힘든 일이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세계적 뇌과학자인 존 레이티 하버드대 교수는 “운동보다 뇌를 활성화시키는 건 없다”고 했다. 국내 최고 인재들이 모인 민족사관고에선 아침 6시 운동으로 하루를 연다. 뇌를 깨우고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좋은 학교는 결국 좋은 부모가 만든다. 운동 안 시키는 부모는 좋은 부모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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