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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 ‘김환기’전을 보고
“코리아는 예술의 노다지”
김환기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한국의 자연과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이다. 잘 알려진 대로 백자 항아리를 포함한 전통문화에 대한 김환기의 사랑은 극진했고, 보는 안목도 상당했다. 이것은 단순한 호사 취미가 아니었다. 그 속에서 김환기는 우리 민족이 일찍이 도달했던 아름다움의 깊이를 보았다. “코르뷔지에 건축 또는 정원에다 우리 조선조 자기를 놓고 보면 얼마나 어울리겠소”라는 그의 말처럼 한국적인 아름다움은 자부심의 원천이자, 도달해야 할 미의 기준점이었다. “세계적이려면 가장 민족적이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그의 유명한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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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변화를 겪게 되는데, 파리 시절에 그려진 작품 ‘산’은 동양 산수화의 구성원리를 재해석한 것이다. 더 이상 표면적인 아이콘의 나열이 아니라 작품 구성의 원리가 중요시됨으로써 그의 작품은 추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
결정적인 전환은 70년대 뉴욕에서 그려진 전면점화(全面點畵)에서 이루어진다. 밤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들처럼 무수히 많은 점이 찍힌 큰 화면은 ‘거대(巨大)와 미소(微小)가 하나의 공간 속에서 숨쉬고 있는’ 우주의 풍경이다. 한국적인 미학은 이제 추상적인 상징의 원리로 내재화되었다.
전통색인 오방색에 대한 실험도 다양하게 행해진다. 특히 김환기의 푸른색을 보면서 사람들은 깊은 동해의 물색과 유현한 하늘을 떠올린다. 종이에 번지는 운연(雲煙)의 효과를 내면서 점을 찍는 방식은 김환기가 서양화의 재료를 동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점화는 김환기의 대표작으로, 그의 긴 예술적 여정의 종착역이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적인 동시에 세계적인 수준의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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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 나이에 뉴욕으로
현재보다 내일이 더 중요했던 김환기는 한국 미술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는 30년대 말 국내 최초의 화랑인 ‘종로화랑’을 개설하고, 최초의 근대미술 유파인 ‘신사실파’를 결성했으며, 63년 한국미술평론가협회를 주도했다. 홍익대 학장직을 맡을 때도 그의 머릿속에는 “세계적인 대예술가”를 배출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구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미술행정가 이전에 무엇보다 작가였고, 작품의 완성이 가장 중요했다. 프랑스·미국으로 이어지는 김환기의 끊임없는 해외 진출도 이런 생각과 관련이 있다. 그는 56년 마흔이 넘은 나이에 파리로, 63년 쉰의 나이에 뉴욕으로 떠났다. 63년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 대표로 참가해 ‘회화 부문 명예상’을 수상하는데, 이를 계기로 뉴욕으로 떠난 김환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좁은 한국 화단이 아니라 세계 무대에서 겨루어보고 싶은 야망과 자신감이 있었기에 한국에서의 안정적인 생활을 버리고 모험을 찾아 떠난 것이었다.
그가 뉴욕에서 쓴 일기들은 숨이 가쁘다. 숨돌릴 틈 없이 작업이 이어졌다. “미술은 질서와 균형이다”라는 깨달음 속에서, 임종을 맞이할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 드로잉을 포함한 3000여 점의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74년 7월 뉴욕의 병원에서 그는 눈을 감는다. 이듬해인 75년 포인덱스터 화랑에서 추모기념전이 열렸다. 그는 지금도 미국에 있다. 뉴욕 허드슨 강변이 내려다보이는 너른 터에 그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부인 김향안은 김환기 사후 환기재단을 설립해 열정적으로 작품을 정리해 소개했다. 92년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열었다.
이상·김환기 두 천재의 아내, 김향안
김환기가 굳게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평생의 지지자인 김향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경성은 김향안에 대해 “수필가이기도 한 김향안은 어느 쪽이냐 하면 차가운 성질의 소유자”라고 표현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김환기에게만은 최고의 아내였다. 그녀는 어머니 같은 존재였고, 말이 통하는 친구이며, 사무적 수완을 갖춘 훌륭한 비서였고 통역관이었다. 김환기의 에세이에는 김향안에 대한 애틋한 묘사가 나온다. “아내는 먹을 것이 있든 없든 항상 명랑하고 깨끗하다. 아내는 낙천가다. 아내는 나에게 지지 않게 목공예품들의 고완품을 좋아한다… 나는 생활에 있어서나 그림에 있어서나 아내의 비판을 정직하게 듣는다.”
그 가난했던 시절, 예술만 아는 예술가의 아내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다. 그러나 김향안의 수필집 『월하의 마음』에는 그늘이 없다. 씩씩하고, 긍정적이고, 김환기 말대로 ‘낙천적’인 마음 씀씀이를 볼 수 있다. 이 책의 말미에는 김향안의 본명인 변동림이 다시 등장한다. 한때 시인 이상(李箱)의 아내였던 변동림은 반세기 만의 침묵을 깨고, 이상의 소설은 상상의 산물일 뿐 이상과 자신의 결혼생활과 이상이 쓴 소설과는 별개라고 해명한다. 이상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내의 이미지가 그에게 오버랩되면서 진실이 왜곡되었다고 생각했던 탓이다.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이상은 안타깝게 요절했고 젊은 과부 변동림은 세 아이가 딸린 이혼남 김환기와 다시 인연을 맺어 김향안이 되었다. 이상과 김환기, 시대의 두 거물과 깊은 인연이 있었던 작은 여인 김향안(변동림).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고 있을까?
이진숙씨는 러시아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미술 작품에서 느낀 감동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러시아 미술사』『미술의 빅뱅』의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