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삶의 향기] 섬집 아이와 해당화 냄새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 매체경영
동요를 부르던 사람들을 가끔 볼 수 있었다. ‘과꽃’ ‘고향의 봄’ 등이 많이 불리던 동요들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동요는 이제 과거에만 존재하는 잊혀진 노래쯤으로 여겨진다. 이른바 국민 프로라는 ‘전국 노래자랑’에 등장하는 어린아이조차도 걸 그룹의 노래를 현란한 동작으로 부른다. 동요는 이제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가고 있다.

 그러나 동요의 명맥을 유지하는 노래들이 그래도 얼마간 존재한다. 그중에 ‘섬집 아기’가 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 옵니다.” 많은 한국인이 즐겨 불렀다. 따라 부르기 쉽다는 특징 외에도 인간이면 누구나 느끼는 가장 원초적이고 애틋한, 그러면서도 자연친화적인 정서를 노랫말에 담았다. 그래서 한국인들에게 이 노래만큼 가장 근원적인 노스탤지어를 안겨준 노래는 드물다고 한다. 섬집 아기는 세대를 아우르는 최고의 동요로 인정받고 있다.

[일러스트=백두리]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노랫말의 배경을 제주도나 남해 바닷가쯤으로 알고 있고, 일부 언론에서도 그렇게 소개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몇 년 전 나는 어떤 연유로 이 노랫말의 쓰여진 연원을 알아보기 위해 적잖이 공을 들인 적이 있다.

 이흥렬이 곡을 붙이고 한인현이 작사한 섬집 아기의 무대는 지금은 갈 수 없는 함경남도 원산 명사십리 백사장이다. 한인현은 마식령 산맥의 끝자락 갈마반도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여름만 되면 해당화가 만발한 명사십리 해변에서 깜둥이가 되었다. 캐나다 선교사가 운영하는 광명 보통학교에 다닐 때에는 조선인 선생님들이 문을 걸어잠그고 읽어주던 단종애사를 들으며 자랐다고 전했다. 바이올린에도 재주가 있어 사범 시절, 일제의 병영집체 훈련을 받는 밤이면 슈만의 트로이메라이(traumerei)를 연주해 나라 잃은 망국 청년들의 잠자리를 뒤척이게 했다는 기록도 있다.

 함흥사범을 졸업한 그는 첫 발령지인 경기도 가남초등학교(현 영동고속도로 가남휴게소 자리)에 재직 중 6·25를 맞아 부산으로 피난오게 된다. 당시 그는 고향인 원산의 명사십리와 비슷한 풍경의 송정 바닷가를 즐겨 찾았고 바닷가 언저리 오막살이 초가집을 통해 고향 바다를 떠올리고 노랫말을 쓰게 된다. 그래서 그의 노랫말에는 원산반도의 명사십리, 해당화, 루씨(樓氏) 여학교, 서양인 별장 등과 함께 동해남부선 기적소리가 유장하던 송정 바닷가 풍경이 함께 어울려져 있다.

노랫말을 완성한 그는 도쿄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모교인 광명보통학교에 재직 중이던 고향 친구인 이흥렬에게 곡을 의뢰했다. 그러나 노래는 발표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다. 더구나 한인현은 1969년 한창 일할 나이인 마흔아홉에 고혈압으로 타계했고 ‘바위고개’를 작곡한 이흥렬 역시 80년 세상을 떠났다.

 지난 연말 바쁜 송년 저녁 일정 중 우연한 기회에 리차드 용재 오닐이 비올라로 연주하는 섬집 아기를 들었다. 비올라는 현악기 중에서 알토에 해당된다. 바이올린과 탄생 시기는 같지만 바이올린의 빼어난 선율에 가려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악기다. 이 노래의 탄생 연원을 비교적 소상하게 알고 있는 나는 섬집 아기만큼은 바이올린보다는 비올라의 유려한 음색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혼자 해봤다. 섬집 아기를 듣는 이 겨울, 나는 이 짧은 노래를 통해 단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원산 앞바다의 소금 냄새와 짙은 해당화 향기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 매체경영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