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송호근 칼럼] 보수와 진보, 그 울부짖는 바람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1903년 초겨울, 한반도를 여행했던 러시아 지리학자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는 조선을 ‘울부짖는 바람의 나라’로 묘사했다. 해안 절벽을 때리는 모진 바람, 산등성이에 휘몰아치는 삭풍이 러시아인에게도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그 바람을 맞으면서 위태로운 절벽과 깊은 계곡 사이로 점점이 펼쳐진 민가, 그것이 조선의 풍경이었다. 몇 달 후 조선은 러일전쟁의 폭풍에 내몰렸고, 일본의 진군 앞에 정치권은 찢어졌다.

 이 외풍(外風)과 내풍(內風)의 대가를 지난 세기 우리는 혹독하게 치렀다. 대부분 이념분쟁의 바람이었는데, 오늘날의 보수와 진보도 그 와중에 태어나 ‘극단의 시대’로 불리는 20세기를 할딱거리며 넘었다. 유럽이라고 해서 보혁 진통을 비켜갈 수는 없었지만, 정치 선진국답게 대화와 타협의 채널을 열어 의견 일치의 영역을 넓히는 지혜를 발휘했다. 그런데 몸살을 앓는 우리의 정당들을 보면 ‘종의 기원’이 다른 인간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화의 생태계는 같았는데 왜 저리도 다른 논리와 표정을 갖게 되었는가.

 순회공연 중인 민주통합당의 지정곡은 재벌경제 해체, 한·미FTA 폐지, 무상복지다. 이 지정곡이 시대에 맞는가는 버려둔 채 더 격앙된 목소리로, 더 과격하게 질러대는 급진파 경연장이 이른바 진보의 풍경이다. 저 울부짖는 ‘분노의 바람’은 분명 어두웠던 80년대 혁명전사들과 닮았는데, 옛 처방전의 유효기간 연장을 외치는 진보를 ‘복고적 진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척결, 처단, 탄핵 같은 으스스한 용어로 2012년의 문을 연 그들을.

 보수의 지정곡은 부정부패와 반칙에 대한 반성문 쓰기다. 남성들이 반칙하고 여성이 사죄하는 모양새는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이 있는데, 젊은 세대와 저소득층이 품은 울화병을 해독하지 못하고, 가계가 곤두박질치는 것을 방치한 무력한 정부에 대안도 못 내는 보수를 ‘무지한 보수’라고 해도 좋겠다. 그래도 잘나가는 대기업과 수출 1조 달러를 재기의 발판 삼아 토끼 꼬리만큼 양보할 아량을 내비치는 보수는 산업화시대의 낡은 유전자를 대물림했다. 반성문 쓰고 당명을 바꿔도 유전자가 바뀌지 않으면 ‘철 지난 보수’로 다시 전락하는 건 시간문제다. 단속, 훈계, 독단 말고 보여준 게 없는 그들은.

 격돌로 치닫는 요즘 정치판에서 ‘복고적 진보’와 ‘무지한 보수’ 간 접점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종자가 다른 두 정치세력이 전열정비를 마치면 더 치열하게 맞붙을 것이다. 두 정치세력 간 이념적 차이가 좁아질 때 경제가 발전하고 복지도 나아진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 선에서 수년간 답보상태에 있는 것, 저소득층이 여전히 절망 속에 처박혀 있는 것은 보수와 진보가 서로 멀리 울부짖은 탓이다. 정권이 바뀌면 기존 정책을 몽땅 뒤집고, 다시 뒤집힐 것을 새로 쌓는 탓이다. 쌓다 허무는 짓을 5년마다 반복했다.

 시장을 닫고 우리끼리 잘해 보자는 진보, 그러면 비정규직이 정규직 되고 청년들이 직장을 골라잡을 수 있을까? 재벌을 전진배치하고 시장을 열면 자영업자, 중소기업에 돈이 넘쳐흐른다는 보수의 약속은 지켜졌는가? 두 개 다 ‘아니오’다. 답은 두 개를 합한 것, 시장개방과 약자보호가 결합해야 한다. 타협의 지혜다. 무상복지는 부자증세만으로 가능하다? 천만의 말씀, 온 국민이 월평균 10만원쯤을 더 내야 한다. 연평도 포격에 침묵하는 진보, 무조건 대화를 단절하는 보수에 너무 질렸다. 미래 대안 없는 선동가들의 논리는 위험하다. 시민들의 이념성향은 쟁점별로 다르다. ‘너는 누구 편인가?’ 하는 질문, 온당한 현실인식을 호도하고, 소통(疏通)을 불통(不通)으로 만들고, 진취적 제안에 이념적 낙인을 찍는 이분법을 추방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나라당이 ‘보수’를 삭제하자는 불발된 제안에 찬성한다. 민주당도 진보 특허를 취소하라는 이 불발될 운명의 제안을 심사숙고해 줬으면 한다. 보수·진보의 정체성까지 버릴 수는 없겠으나, 마치 경제중심이 IT로 넘어갔듯이 보혁 구도로 정치할 시대는 지났다. 정당구조도 바뀌었다. 세대·계층·지역이 중층적으로 작용하는 한국의 정당은 계급정당이 아니라 범국민정당이다. 현안 쟁점과 시의적 정서가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강원도는 오랜 소외의식, 충청도는 세종시 문제 때문에 집권보수당에서 이탈했으며, 서울과 경기지역은 보수와 진보 경계를 상황적으로 넘나든다. 오늘의 보수는 내일의 진보이고, 심사가 복잡해지면 중도에 한참을 머물기도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민주화 단계를 지나 사회·경제 민주화로 진입한 한국이 이념논리만으로 미래 과제를 제대로 짚거나 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사회민주화의 핵심 키워드인 ‘공정(公正)’을 이 정부가 풀지 못한 까닭도 그것인데, 하물며 복고적 진보로 경제민주화의 핵심인 ‘공생(共生)’을 풀어내겠는가? 러시아 학자가 묘사한 ‘울부짖는 바람’이 정치판의 격돌로 읽히는 올해는 분명 험난한 시간들을 예고한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