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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ISSUE] 로고 없는 명품백 보테가 베네타

보테가 베네타의 색색 클러치 [보테가 베네타 제공]


이탈리아 가죽 수공예의 전통 기법 인트레차토(intrecciato)는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의 상징과 같다 [보테가 베네타 제공]
2006년 4월, 세계 명품 업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의 소비자 조사 기관인 ‘럭셔리 인스티튜트’가 명품 브랜드 인지도 조사를 벌인 결과 이탈리아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가 에르메스와 조르조 아르마니를 제치고 1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핸드백 가격이 1000만원 정도부터 시작하는 에르메스는 역사가 200년 가까이 되는 프랑스의 정통 명품 브랜드고, 조르조 아르마니는 1980년대부터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온 이탈리아 디자이너 브랜드다. 반면에 보테가 베네타는 전 세계 소비자를 상대로 영업을 시작한 것이 2001년이니 5년 만에 기라성 같은 브랜드를 제친 셈이다. 이후 이 브랜드는 승승장구해 지난해 3분기 실적이 전년도보다 39%나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분기 매출액은 1억8500만 유로(약 2800억원)다. 2011년 1월부터 9월까지 총매출액은 4억8300만 유로(약 7300억원). 매출 비중이 큰 4분기 실적을 합하면 1조원을 훌쩍 뛰어넘을 전망이다. 눈에 띄는 로고조차 없는 이 브랜드가 어떻게 고객의 눈길을 사로잡았을까. 보테가 베네타가 단기간에 최고 인기 브랜드로 떠오른 이유를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인 마르코 비차리를 만나 물었다. 한국 언론에는 처음 털어놓는 이야기다.

상하이=강승민 기자


마르코 비차리
영국 주간지 ‘타임’에서 명품 분야를 취재하는 케이트 베츠는 이탈리아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이하 BV)를 가리켜 ‘명품업계의 반항아(luxury rebels)’라고 했다. “크게 유행해서 꼭 들어야만 한다고 꼬드기는 소위 ‘잇백’을 지양한 데다 더 많은 대중이 즐기는 ‘명품의 민주화’에도 굴복하지 않았다”는 분석을 곁들였다. BV가 브랜드를 상징하는 로고 하나 없이 명품 업계에 등장해 장인정신과 고가전략으로 급성장한 걸 두고서다. 로고도 없지만 눈치 빠른 이들은 어떻게든 BV를 골라내 이 브랜드 가방을 들었고 BV는 본격 영업 10년 만에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에 대해 BV 최고경영자(CEO)인 마르코 비차리는 “사람들이 점점 더 ‘개인적인 명품’을 갖고 싶어 한 덕분”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눈에 띄는 로고가 없어도 제품 자체에 만족감을 느끼는 소비자가 많아졌다”면서 “앞으로 이런 취향의 소비자가 더욱 늘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시장 조사차 중국 상하이에 들른 그는 BV가 단기간에 명품 시장의 리더로 자리잡게 된 이유를 한국 언론에 처음 털어놨다.

-한국에 처음 소개된 2002년, BV 고객들 사이에선 “이 브랜드만은 지키자. 남들은 모르게 우리만 알고, 우리만 즐기자”는 분위기가 일었다. 거리에서 3초마다 마주칠 만큼 흔하디 흔한 명품 가방은 싫다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얘길 들은 적 있나.

“한국만 그런 게 아니다. 요즘도 마찬가지이고, 다른 나라의 우리 고객들도 그렇다. BV엔 로고가 아예 없다. 로고가 없어도 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가방을 사기 때문이다. 굳이 ‘나 이거 들었다’ ‘얼마 주고 샀다’고 알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소위 명품이란 걸 자기 과시를 위해 드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어 그렇다.”

 -다른 사람은 모르게 자기만 들려는 고객의 심리가 당연하단 얘긴가.

“적어도 우리 브랜드에 대해선 그렇다. BV의 애초 모토가 ‘나 스스로도 충분할 때(when your own initials are enough)’이다. 1960년대 말, BV 장인들의 신념이었고 이것이 당시 광고에 쓰였었다. 2001년 구찌그룹에 인수된 후 당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토마스 마이어가 옛 자료에서 찾아내 지금까지 쓰고 있는 말이다.”

 BV는 대개의 서양 고가 브랜드와 달리 브랜드명이 창업주의 이름이나 패션디자이너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 보테가 베네타는 이탈리아말로 ‘베네치아의 장인’이란 뜻이다. 인트레차토(intre cciato)라 불리는, 가죽줄을 꼬아 만드는 이탈리아 전통 공예 기법이 사용된 가방이 대표 상품이다. 1966년이 브랜드의 기원이지만 소규모로 운영되던 브랜드가 90년대 경영상 어려움에 부닥치자 2001년 명품그룹 구찌에 인수됐고, 구찌그룹은 2004년 프랑스의 거대 명품그룹 페페에르(PPR)에 또다시 인수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유명 작곡가 정재형이 BV 백을 들고 인기 프로그램에 나와 대중도 많이 알게 됐다. BV 전략과 상충되는 것 아닌가.

“우리 제품이 좋다고 선택해준 유명인을 나무랄 수 있나. 오히려 고맙다. 그런데 한 가지 말해둘 것은 우린 브랜드 홍보를 위해 연예인에게 가격 할인을 해주거나 제품을 공짜로 제공하지 않는다. 그것이 원칙이다. 모름지기 명품 브랜드라면 원칙을 세우고 일관성 있게 그 원칙을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다.”

다양한 크기의 보테가 베네타 여행가방. 가방 겉면이 가죽 줄을 꼬아 만든 ‘인트레차토’ 기법으로 장식돼 있다.
 -BV엔 눈에 띄는 로고가 없다. 하지만 요즘 대개의 고가 브랜드는 누가 봐도 ‘아, 저건 어느 상표네’ 하고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돼 있다. BV 원칙대로라면 이들이 잘못됐단 얘긴가.

“세상은 넓다. 누구든 각자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그렇지만 큰 흐름에서 봤을 때 고객들은 점점 더 ‘개인적인 것’을 찾고 있다. 개인은 대중과 반대의 개념이다. 중국을 예로 들어보겠다. BV에서 세계적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와 함께 2008년과 2010년, 부유층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과시성 명품을 구매하지 않는다’는 중국 부유층이 2008년엔 조사대상 중 30%에 그쳤지만 불과 2년 후엔 52%로 늘었다. 이 수치만으로 보면 절반 이상의 명품 고객이 더 이상 로고에 집착하지 않는단 얘기다. 우린 이 현상을 보면서 고객의 취향이 진화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물론 로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잘못됐다는 건 전혀 아니다.(웃음)”

 -다른 명품 브랜드는 눈에 띄는 로고를 부각시키면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오래된 브랜드의 역사는 100~200년이 기본이고, 신화적인 존재가 돼 버린 전설적 디자이너를 앞세우는 고가 브랜드도 많다. BV는 이들에 비하면 약점이 많아 보인다.

“여전히 대중적으론 브랜드 인지도가 낮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고객과 대화할 수 있는 매장 직원 교육에 공을 들이고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직원 전부를 BV의 고향인 이탈리아 비첸차(※베네치아 인근 지역의 이름) 공방으로 초청해 제품 제작 과정을 지켜보게 한다. 직접 보고 난 뒤 매장에서 손님을 맞는 직원들은 실제로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자신이 느낀 것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열정적으로 장인의 작업 과정을 묘사하고 설명하는 직원들 덕분에 고객이 제품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가 50년 정도밖에 안 됐지만 결국 고객에게 무엇을 전할 것이냐의 문제라면 우린 현재 BV의 모토와 전략에 충분한 확신이 있다.”

 -로고 있는 것도 만들고, 지금과 같은 제품도 만들면 더 많은 사람들이 BV를 사게 되지 않을까.

“아니,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아까 말했듯이, 과시하지 않는 명품을 선호하는 사람이 더 늘고 있다. 우리 브랜드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라 점점 더 이렇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우리의 걱정은 더 많이 팔지 못하면 어쩌나가 아니다. 늘어나는 고객의 수요에 맞춰 제품을 대지 못할까 봐 더 걱정이다. 바느질 없이 가죽줄을 꼬아 만드는 것은 숙련된 장인 없인 불가능해서 이런 상품을 만들 수 있는 장인의 숫자가 우리에겐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요가 더 늘 것에 대비해 장인을 더 많이 양성하는 것이 과제다. 그래서 우린 본사가 있는 비첸차 지역에 장인 양성학교도 세웠고, 실업 여성 장인들이 모여 만든 조합을 통해 장인 숫자를 더 늘리고 있다. ‘몬타나 여성협동조합’이란 것인데, 금 세공품과 정교한 가죽 제품 장인들이 많은 비첸차 지역에서 수요 부진으로 일자리를 잃었던 여성 장인들이 모여 만들었다. 그들 스스로 공방이자 회사를 설립해 우리를 위한 제품을 만드는 시스템이다. 올 4월 이 지역의 여성들이 설립하는 세 번째 공방이 생겨날 것이고 이들도 BV와 함께 일하게 될 예정이다. 대부분의 여성 장인들은 가사와 육아 등 집안일을 병행하고 있는데 이 조합을 통해 일하는 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면서 직장에 다닐 수 있고 우린 더 많은 장인들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명품 고객이 늘어날수록 장인 스카우트 경쟁도 치열하다.

“그래서 2006년 10월엔 장인 양성학교도 세웠다. 원래 이 지역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비첸차 미술공예 교습학교’와 공동으로 설립했다. 3년 과정이며 학년당 학생은 15명이고 학비는 무료다. 18~25세면 입학이 가능하고 외국인도 입학할 수 있다. 명품 브랜드가 계속 유지되려면 젊은 장인들이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


장인의 작업대 위에 놓여 있는 보테가 베네타 ‘카바 백’. [보테가 베네타 제공]

장식 없이 줄로 엮은 카바 백, 11년째 인기 모델

보테가 베네타(이하 BV)가 단기간에 전 세계 명품 시장의 주류로 떠오른 데서 빼놓을 수 없는 성공 요인은 ‘카바 백’의 흥행이다. 카바 백은 2001년부터 줄곧 BV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는 토마스 마이어(56)가 디자인했다. 토마스 마이어는 패션디자이너 질샌더,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카를 라거펠트와 같은 독일 출신이다. BV 로고를 대신할 만큼 유명한 줄꼬임 장식으로 된 카바 백은 출시 이후 지금까지 계속 생산될 정도로 인기 있는 모델이다.

 600만~700만원이란 만만치 않은 가격부터 시작하지만 대기자 명단에 올려 가방을 구입할 만큼 찾는 사람이 많다.

 카바 백이 처음 나왔을 때 뉴욕 타임스의 패션전문 기자인 수지 멘키스는 “‘잇 백’을 만들면 무조건 팔리던 시대에 정반대 디자인이 나왔다”고 평했다. 멘키스 기자에 따르면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는 ‘잇백’의 전성시대였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때는 “큼지막한 로고가 눈에 잘 띄도록 만든 다음 ‘요즘 이것 안 들면 안 돼요’라고 광고를 쏟아부으면, 사람들은 ‘정말 사야 되나 보다’ 하던 시대”였다. 그런데도 디자이너 토마스 마이어는 로고도 전혀 없으며 줄꼬임이란 제작 방식 외에는 별다른 장식도 없는 가방을 고안했고 히트작으로 만들어냈다. 토마스 마이어와 인터뷰한 미국의 방송사 CNBC는 “카바 백을 포함해 절제되고 단순한 그의 디자인은 건축가인 아버지의 영향과 그의 태생인 독일에서 비롯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미국의 경제 전문 격주간지 포브스는 최근 카바 백을 언급하면서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다. “카바 백처럼 아무나 알아보지 못하는 가방을 사는 사람들은 열쇠 고리나 지갑처럼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명품을 사는 사람들과 차별화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유럽 경기 침체까지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BV 같은 브랜드가 크게 성장하는 이유를 분석한 기사에서다. 마르코 비차리 BV 최고경영자도 이 같은 분석에 고개를 끄덕였다. “부유층 소비자를 포함한 대중은 경제가 어려울수록 구입하는 상품 개수를 줄인다”면서 “3~4개씩 사던 사람들이 단 1개를 산다면 만족감이 더 큰 BV 같은 브랜드를 찾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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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