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박경리 가상 인터뷰 “1960년대 비트족의 사랑이니 측은할 수밖에”

1970년대 중반 박경리의 모습. 이 무렵 그는 『토지』 집필에 집중하고 있었다. [중앙포토]
박경리(1926~2008)는 저 편 세상으로 건너갔다. 그의 몸은 경남 통영시 미륵산 기슭에서 흙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생전 26년간 대하소설 『토지』에 매달렸던 그는, 이제 그 토지의 일부로 남았다.

 『토지』는 박경리 문학의 정점이자 한국문학의 한 극점이다. 하지만『토지』에 이르기까지 징검다리 역할을 한 작품이 있었다. 최근 나온『녹지대』(현대문학)도 그런 작품 가운데 하나일 테다.

1964년 6월 1일부터 65년 4월 30일까지 부산일보에 연재된 장편이다. 서울대 방민호 교수(국어국문학과)가 신문 자료를 발견했고, 이를 KAIST 김은경 교수가 47년 만에 정리했다.

 『녹지대』는 언뜻 통속적이다. 60년대 서울 명동의 음악살롱 ‘녹지대’를 중심으로 20대 남녀의 사랑 서사가 펼쳐진다.

하지만 한낱 통속소설로 치부하기에 박경리란 이름은 묵직하다. 1·2권을 통틀어 700쪽이 넘는 이 소설은 일종의 세태 소설로서 전후 한국사회의 내면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소설을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선 작가와 마주 앉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금 박경리 선생을 만날 방도는 없다. 다만 작품을 파고들어 선생의 해설을 유추해볼 순 있을 터. 다음은 죽은 박경리 선생과의 가상 인터뷰다. 아마도 선생은 『녹지대』에서 이런 이야기를 건네고 싶었던 게 아닐까.

 -기본 골격이 연애담인데 좀 가벼운 주제 아닐까요.

 “인애·숙배·은자 등 20대 초반 여성과 김정현·민상건·한철 등 다양한 연령대 남성들이 연애하는 이야기인 것은 맞아. 하지만 가볍기만 한 사랑타령은 아니야. 시대 배경이 60년대 초잖아. 전쟁을 겪은 이들의 사랑에는 어떤 근원적인 상처 같은 게 있었지. 60년대 한국인의 심리와 의식을 담아내고자 했어.”

 -대화 중심으로 기술된 게 인상적입니다.

 “인물의 대화를 좀 더 생생히 살리고 싶었어. 소설 속 인물들의 대화에는 당시 젊은이들과 기성세대의 사고 방식이나 언어 습관 같은 게 고스란히 담겨있지. 60년대 한국 사회를 증언하는 육성으로도 볼 수 있을 거야.”

 -주인공 하인애는 어떤 인물인가요.

 “인애는 전형적인 60년대 여성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인물이야. 인애는 가출 중에 섬에서 만난 김정현이란 청년을 운명적으로 사랑하지. 하지만 김정현은 그런 인애를 온전히 받아주지 않아. 소설 말미에 나오는 반전에서 알 수 있겠지만, 둘은 끝내 이뤄지지 않지. 하지만 인애는 자신의 젊음을 불태우던 ‘녹지대’를 떠나 정현을 처음 만났던 섬으로 돌아가려고 하잖아. 젊음의 상처와 고통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거지.”

 -소설 속 사랑은 불안해서 측은한 마음이 들 정도에요.

 “60년대는 모든 게 불확실한 시절이었어. 그래서 숙배는 ‘녹지대’를 한국의 비트족(패배세대)이 모이는 음악살롱이라 표현하지. 패배세대의 사랑이니 측은할 수밖에. 하지만 사랑 가운데 가장 순수하고 밀도가 짙은 게 바로 연민 아닐까. 2004년 한 인터뷰에서 말한 적도 있지만, 불쌍한 것에 대한 것, 아파하는 마음, 이것이 사랑이야. 『녹지대』에선 그런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어.”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