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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12) 박태준이 시작한 삼각빅딜

동상이몽(同床異夢). 김대중 전 대통령(가운데)과 박태준 전 국무총리(왼쪽)가 빅딜로 얻고자 했던 것은 달랐다. DJ는 재벌 개혁의 성과를 과시하고 싶어 했다. TJ는 빅딜이 대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방안이라 생각했다. 1998년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오른쪽)은 빅딜에 반대 의견을 밝혔지만 끝내 두 손을 든다. 사진은 2000년 5월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장면. [중앙포토]

지난해 12월 세상을 떠난 박태준(TJ) 전 포스코 명예회장. 그를 만날 때마다 꼭 물어보고 싶었지만 끝내 못 물어본 게 있다. ‘삼각 빅딜’이다. 도대체 누가 낸 아이디어였는지, DJ인지 TJ인지, 왜 중간에 동력을 잃고 말았는지.

 삼각 빅딜은 단순 명료한 안이었다. 현대에 자동차, 삼성에 반도체, LG에 석유화학을 몰아주자는 것이었다. 처음 언급한 게 TJ다. 1998년 1월 초부터 황경로 TJ 경제특보가 실무를 챙긴다는 얘기가 들렸다. 포스코 회장을 역임한 그 황경로다. TJ의 삼각 빅딜은 중간중간 잡음과 혼선으로 동력을 잃고 만다. 대신 엉뚱한 ‘7대 업종 빅딜’이 시작된다. 그러면서 ‘재벌과 거래하지 않는다, 은행을 통해 한다’던 DJ 정권의 재벌 구조조정은 궤도를 벗어나고 만다.

 그런 빅딜을 도대체 누가 왜 시작했을까. 한 차례 TJ에게 확인할 기회는 있었다. 2001년 4월 뉴욕에서다. 나는 우드로 윌슨 상을 받으러 뉴욕에 갔다. 그는 그때 폐 물혹 제거수술을 받고 퇴원해 작은 아파트에서 요양 중이었다. 당시 그의 병명이 흉막 섬유증이었다는 사실은 지난해 TJ 사망 관련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다. 수술을 마친 그는 건강한 모습이었다. 총리에서 물러난 지 1년쯤 됐을 때다.

 “아쉽습니다. 총리께서 중심이 돼서 나라를 바로잡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위기 후 시스템과 정책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게 잘 안 됐어.”

 그러곤 에둘러 운을 뗐다. “한국이 먹고살 산업이 마땅치 않습니다.” ‘왜 누가 삼각 빅딜을 시작했습니까?’ 대놓고 물어볼 수 없어 슬쩍 말을 돌린 것이다. 돌아온 TJ의 답변. “글로벌 산업은 최강자만 살아남아. 우리도 그렇게 가야 해. 어중간한 회사들이 서로 나눠 먹기 해서는 곤란하지.” 그때 나는 감을 잡았다. 아! 삼각 빅딜은 TJ 본인 생각이구나. 본인이 확신을 갖고 한 것이구나.

 빅딜이란 단어를 처음 거론한 건 97년 말 삼성·대우경제연구소였다. 이때만 해도 아이디어 차원이었다. ‘재벌의 과잉시설과 과다부채를 해소하려면 사업 교환이 필요하다’는 정도였다. 정부 차원의 논의가 공식화된 건 98년 1월 22일이다. 롯데호텔 일식집 ‘벤케이’에서 김원길 당시 국민회의 정책위 의장이 5대 그룹 기조실장들을 불러 모아 던진 얘기다. 전언에 따르면 김원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반도체·철강·자동차 등이 과잉투자 산업입니다. 5대 그룹이 빅딜을 통해 투자를 나누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던질 것은 과감히 던지세요.”

 이를 전해 듣고 머리가 띵했다. 이미 대통령은 1월 13일에 5대 그룹 총수를 만나 ‘구조조정 5원칙’에 서명을 받았다. ‘은행을 통한 구조조정’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과잉투자건 중복투자건 시장에 맡기면 될 일이다. 빚을 줄이려면 덜 필요하거나 경쟁력 없는 사업은 기업 스스로 알아서 내다 팔 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빅딜이라니. 거래라니. 당장 전화를 걸었다. 외채 협상을 위해 뉴욕에 간 김용환 비대위원장을 찾았다.

 “접니다. 빅딜 얘기 들으셨습니까. 빅딜을 하면 구조조정 본질이 뒤틀립니다. 중단시켜 주십시오.”

 “알았네. 대통령께 말씀드리지.”

 김 위원장의 만류에 DJ는 “빅딜 논의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때까진 DJ도 확신이 없었던 것이리라. 그런데 그해 6월 10일. 김중권 대통령 비서실장이 폭탄을 터뜨렸다. “빅딜을 포함, 대기업 구조조정 계획이 이르면 며칠 뒤 발표될 겁니다. 그동안 한 재벌그룹이 구조조정을 거부해 왔으나 9일 승복했습니다.” 그는 기자들이 묻자 “자세한 건 박태준 총재께 물어봐라”고 물러섰다. 그러나 TJ는 “나는 빅딜은커녕 스몰딜도 모른다”고 부인했다.

 TJ는 왜 그때 “빅딜을 모른다”고 했을까. 분명한 건 그때 그가 상당히 불쾌해했다는 사실이다. 내용도 제대로 모르는 김중권이, 마무리도 다 안 된 사안을, 3대 그룹 간 딜에서 5대 그룹으로 확대 발표한 것. 이런 것들에 마음이 상했을 것이다.

 그때 김중권의 폭탄발언이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TJ의 구상대로 삼각 빅딜이 성사됐다면 훗날 빅딜로 인한 혼선은 훨씬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흘 뒤인 6월 14일. 김대중 대통령이 방미(訪美)를 마치고 귀국했다. 귀국 기자회견에서 그는 빅딜을 기정사실화한다.

 “빅딜이건 작은 딜이건 기업을 개혁해야 합니다. 이것은 확실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5대 그룹이 앞장서야 합니다.”

 돌이킬 수 없는 빅딜 정국이 시작된 것이다. 그 후 빅딜은 산업자원부가 주무를 맡되 전경련이 자율적으로 추진하는 형식으로 본격화한다.

등장인물

▶고(故) 박태준(1927~2011)


1968년 포항종합제철 사장 취임 후 한국의 철강신화를 새로 써 ‘철강왕’으로 불렸다. 81년 민정당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자민련 총재를 지내고 2000년 국무총리가 된다. 타계 전까지 포스코 명예회장을 맡았다.

▶김중권(73)

판사 출신 정치인. 92년 YS 정권에서 청와대 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낸 뒤 97년 국민회의에 입당, DJ 정권의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 현 법무법인 양헌 고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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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