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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의 시시각각] 친박이 먼저 희생하라

이상일
논설위원
이명박 정권에서 친박근혜계(친박)는 서자(庶子) 홍길동처럼 오랫동안 뭇 설움을 겪었다. 지난해 7월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친박 일부와 연대한 홍준표 의원이 대표로 당선되기 전까진 변변한 당직 하나 맡지 못했다. 개각이 수없이 이뤄졌음에도 장관 자리를 받은 친박 의원은 고작 두 명이었다. 친박의 눈에 친이명박계(친이)는 ‘항렬 높은 못된 일가’였다. 요직이란 요직은 전부 꿰차고, 권력을 누리면서 친박을 홀대하고 핍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어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가 됐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출범함에 따라 친이는 뒷전으로 물러났다. 친박은 박 위원장의 당 쇄신을 돕는다며 계파 해체를 선언하고 비대위에도 참여하지 않았지만 이젠 폼 잡을 수 있게 됐다. 다수가 그러는 건 아니지만 좀 과하게 거드름을 피우는 이들도 있고, 박 위원장 이름을 들먹이며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초선인 한 친박 의원의 경우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총선 공천 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뽐내며 “좋은 사람들을 추천해 보라”고 했다 한다. 지역구에선 “박 위원장이 내 출판기념회 때 오지 않았느냐. 내가 그만큼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며 목에 힘주고 다닌다고 한다. 박 위원장을 팔아 당 외곽에 사조직을 만드는 이들도 있다. ‘○○포럼’입네 하는 것들이 몇 개나 생겨 어떤 지역에선 사조직 간 암투가 벌어지기도 한다는 게 친박 측에서 나오는 얘기다.

 쇄신파로 불렸던 김성식·정태근 의원이 탈당하게 된 것도 친박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김 의원 등은 지난달 재창당을 요구하는 내용의 문건을 한 친박 의원에게 줬다. 그러면서 박 위원장에게 전달하고 면담을 주선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박 위원장은 문건을 보지 못했다. 면담 얘기도 듣지 못했다. 김 의원 등의 부탁을 깔아뭉갠 이가 그 친박 의원인지, 박 위원장 주변의 다른 사람인지 관계자들이 입을 닫고 있어 알 순 없지만 김 의원 등은 한때 박 위원장을 오해했다. 그들의 뜻을 전해 들었을 텐데도 연락도 하지 않는다고 보고 불만을 나타낸 것이다. 이처럼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 의원총회장에 가보니 친박 대다수는 재창당을 반대하고, 그중 어떤 이는 “떠날 사람은 떠나라”고까지 하자 김·정 의원은 탈당을 결행해 버렸다.

 “친박 의원끼린 셋 이상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다. 박 위원장의 신임을 얻기 위해 각개약진하면서 다른 사람을 흉보고, 견제하는 일부 친박의 언행을 꼬집는 얘기다. 누군 누구와 앙숙인지 박 위원장은 잘 모를지 몰라도 현장의 기자들은 훤히 안다. A의원이 박 위원장 생각은 이렇다고 말하면 B의원은 “그거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고 깎아내리는 게 일부 친박의 풍경이다. 박 위원장의 의중을 놓고 가끔 혼선이 빚어지는 건 친박 내부의 알력 탓이 크다. 친박엔 몸을 낮추고 바른 처신을 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일부의 행태는 박 위원장에게 큰 짐이 되고 있다. 친이·중립파의 냉소와 불만을 키워 쇄신 동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해서다. “박 위원장을 적극 돕고 싶어도 주변에서 얼쩡거리며 칸막이를 치는 것들이 보기 싫어 팔짱 끼고 있다”고 말하는 의원들이 적잖은 게 오늘의 한나라당이다.

 친박은 성찰해야 한다. 박근혜의 성공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친이의 과거 모습과는 달라야 한다. ‘물 본 기러기, 꽃 본 나비’처럼 의기양양하게 행세하고 싶겠지만 그럴 때가 아니다. 마침 친박 중진 이해봉(대구 달서을)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며칠간 줄담배를 피우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단을 내렸다 한다. 친박에선 이 의원을 따르는 이들이 줄지어 나와야 한다. “당을 망가뜨린 건 친이인데 억울하다”고 생각할 테지만 그래도 친박이 먼저 희생하는 대승적 면모를 보여줘야 한다. 그러면 친이도 각성하지 않겠는가. 박 위원장은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했다. 그걸 친박이 실감나게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하면 국민은 한나라당을 다시 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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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