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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96> 국보 속에서 숨쉬는 용

임진년(壬辰年) 용의 해가 밝았습니다. 한국인은 상상의 동물인 용을 유난히 사랑했습니다. 지역마다 이무기가 용이 돼 승천했다는 용담(龍潭)이나 못에 대한 전설 하나씩은 있지요. 공예와 미술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감상용 회화로 용을 그린 예는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궁궐부터 사찰까지 용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답니다. 광범위한 문화예술 중 국보로 범위를 좁혀 용이 쓰인 예를 찾아봤습니다.

●평양 석암리서 출토된 금제 띠고리

국보 89호,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각종 조형예술에서 용이 등장한 역사는 길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가장 뛰어난 금속 공예품 중 하나로 각광받고 있는 유물, 국보 89호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는 용의 새김이 환상적이다. 길이 9.4㎝, 너비 6.4㎝로 허리띠를 연결시켜주는 고리, 즉 버클이다.

 1세기 낙랑 시대로 추정되는 이 순금 버클은 얇은 금판 위에 수백 개의 금 알갱이를 일일이 붙여 섬세하게 만들었다. 가운데는 큰 용 한 마리가 꿈틀거리고, 그 둘레에 작은 용 6마리가 붙어 있다. 용의 몸통은 척추를 따라 두 줄의 금실 위에 굵은 금 알갱이를 한 줄로 붙여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나게 했다. 물방울 모양의 터키석을 박아 포인트를 주었는데, 원래 41개에 달하는 흔적이 있으나 지금은 7개밖에 남아 있지 않다. 순금으로 만들었기에 20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생생한 아름다움을 전한다. 용이 새겨진 유물 중 가장 연대가 거슬러 올라가는 것 중 하나다.

 이 유물은 1916년 평안남도 대동강면(현 평양시 낙랑구역)에 소재하던 석암리 9호분 발굴조사에서 출토됐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은 중국 한(漢) 왕조의 식민지였던 낙랑군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낙랑고분 발굴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유물이 1980년 초 중국 신장 위구르자치구에서 발견되는 등 10여 점의 기법이 유사한 자료들이 중원의 변방 지역에서 나왔다. 당시 대제국을 형성했던 한 황제가 변방의 이민족 우두머리에게 기념품으로 하사한 것이라는 해석이 등장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유물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청룡사지 탑엔 승천하는 이무기

국보 197호,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불교에서의 용왕·용신은 천왕팔부중(天王八部衆)의 하나로 불법을 수호하는 신이다. 신라 제일의 사찰의 이름이 황룡사(皇龍寺)임은 불교와 용을 떼어놓을 수 없음을 알게 한다. 불법을 수호하는 각종 불룡(佛龍)은 조선시대 사찰 건축의 천장·대들보에도 화려한 채색의 그림으로 빈번히 등장한다.

 건축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탑비에서도 용문양은 흔히 등장한다. 고려시대 탑비의 귀부(龜趺:거북 모양의 빗돌 받침)는 대개 거북의 머리를 용두로 조각했다. 법천사지광국사탑비(국보 59호)·고달사원종대사탑비·쌍봉사철감선사탑비(보물 170호)·봉림사진경대사탑비(보물 363호) 등의 귀부가 모두 용의 머리에 거북의 몸을 하고 있다.

 국보 197호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은 독특하게도 승천하는 이무기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새겨놓았다. 지붕돌의 여덟 귀퉁이에도 용의 머리를 새겨놓아 당시 목조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 유물인 국보 2호 원각사지석탑에 새겨진 문양 중에도 용이 포함돼 있다.

●국보 지정 향로 2개 모두 용 무늬

흥왕사명 청동 은입사 운룡문 향완,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절에서 향을 피우는 것은 마음의 때를 씻는다는 뜻이다. 역시 불교 유물로 금속 공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향 피우는 그릇 향완(香椀)이다. 주로 연꽃과 덩굴문양 등이 향완을 장식했다. 더러 봉황이나 용으로 장식된 것도 있는데, 향완 중 국보로 지정된 2종에는 모두 용 무늬가 새겨져 있다. 비슷한 기법이라면 용과 봉황을 문양으로 사용한 것이 유물의 가치를 높여주는 셈이다.

 국보 214호 흥왕사명 청동은입사향완(興王寺銘 靑銅銀入絲香)은 청동 향로에 음각으로 무늬를 내고 은을 세밀하게 채워 넣은 은입사(銀入絲) 기법으로 만들었다. 고려 충렬왕 15년(1289)에 제작된 이 향완에는 용과 봉황은 물론 갈대와 연꽃, 덩굴 무늬, 기러기와 오리 등이 새겨져 있다.

 국보 75호 표충사청동함은향완(表忠寺靑銅含銀香)은 이보다 시대가 더 앞선 작품으로 고려 명종 7년(1177) 제작됐다. 몸체에는 범(梵)자를 은입사했으며, 받침에 구름과 용무늬를 장식했다. 국내에 남아 있는 향완으로는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절 행사때 쓰는 깃대 끝에 ‘용두보당’

국보 136호 용두보당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절에 행사가 있을 때 그 입구에는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 사찰의 영역을 표시하는 기능을 했다. 이 깃발을 다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이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돌기둥을 당간지주(幢竿支柱)라 한다. 특히 당간 중 깃대 상부에 용머리를 장식한 것을 용두보당(龍頭寶幢)이라 한다.

 국보 136호 용두보당은 고려 당간을 축소해 만든 금속공예품이다. 높이 73.8㎝의 작은 크기지만 고려시대 용두보당의 형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2층의 기단 위에 두 개의 기둥을 세우고, 그 가운데 당간을 세운 모습이다. 용머리의 목 부분에는 비늘을 새겨놓았고, 뿔은 앞뒤로 생동감 있게 뻗쳤다. 표면 전체에 옻칠을 한 뒤 위에 금칠을 했으나 지금은 벗겨져 군데군데 흔적만 남아 있다.

 금동용형당간두(보물 1410호)는 용두보당 중 용머리 장식 부분만 남아 있는 실물 자료다. 1977년 경북 풍기에서 발견된 이 통일신라시대 유물의 높이는 65㎝다. 당간을 포함한 전체 높이는 약 15m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큰 소리 필요한 범종엔 울보 용 새겨

국보 29호, 성덕대왕신종 용뉴와 용통,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삼국시대 불교가 수용되면서 용은 불법 수호의 상징으로 각종 불구 및 사찰과 왕실 건축물의 장엄에 빈번하게 등장한다. 국보 중 용 문양이 예외 없이 새겨진 유물은 바로 범종이다. 상원사 동종(국보 3호), 성덕대왕신종(국보 29호), 용주사 동종(국보 120호),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국보 280호) 등의 꼭지에는 그 형태는 각기 다르지만 용머리가 조각돼 있다.

 종의 고리 역할을 하는 이 장식을 ‘용뉴(龍)’라고 한다. 이 용을 ‘포뢰(蒲牢)’라고도 한다. 포뢰는 용의 아홉 아들 중 셋째로 바다에 사는 울보인데 고래만 보면 무서워 크게 울부짖었다는 전설의 용이다. 옛 사람들은 용뉴는 용 모양으로, 당(종을 치는 막대)을 고래 모양으로 만들면 둘이 만나 큰 소리를 낸다고 믿었다. 고래가 다가오면 포뢰가 무서워 울부짖듯 부처의 법음이 세상 밖으로 크게 울려 퍼지리라는 믿음이다.

 중국과 일본의 종은 그저 용을 조각해 놓은 데 반해 우리 종은 대개 용의 허리에 대막대기 형상의 용통(甬筒·종의 음향을 조절하는 음관)을 하나씩 달아놓은 것도 특징이다. 성덕대왕신종의 경우 무게가 무려 18.9t에 달하는데, 그 무거운 종신을 지탱하는 것이 바로 용뉴의 몫이다.

●서민형 분청사기에도 용이 들어가면 왕실용

국보 259호, 분청사기 상감 용문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리나라 고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은 지난해 3월 18억원에 팔린 ‘백자청화운룡문호(白磁靑畵雲龍文壺)’가 세운 바 있다. 국내외 미술 경매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한국 고미술품 상위 10점 중 5점이 청화백자, 그중 세 점이 구름과 뒤엉킨 용이 그려진 운룡문 항아리다.

 그러나 의외로 국보로 지정된 백자 중 용이 그려진 유물은 찾을 수 없다. 용보다 매화·대나무 등 사군자가 담긴 백자류가 오히려 높이 평가 받아 국보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가장 근래에 국보로 지정된 백자류는 백자대호(국보 309호, 310호), 즉 달항아리다. 아예 무늬가 없는 순백의 항아리다.

 국보로 지정된 도자기류 중 용의 문양이 담긴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국보 61호 청자비룡형주자(靑磁飛龍形注子). 고려 청자의 전성기인 12세기에 제작된 청자 주전자로 용의 머리에 물고기의 몸을 가진 ‘어룡’을 형상화했다. 화재를 막기 위한 상징적 의미로 건축물의 용마루 끝을 장식하는 치미(尾)에 많이 사용된 조형이다. 이 주전자는 고려 도성이었던 개성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한다. 왕실 혹은 고위 귀족층에서 사용한 최상품으로 추정된다.

 유사한 종류로는 국보 96호 청자귀형수병(靑磁龜形水甁)이 있다. 용의 머리에 거북의 몸을 한 청자 주전자로 등 부분에 새겨진 구갑 장식 속에 왕(王)이라는 글자가 음각돼 있다. 국보 220호 청자상감용봉모란문개합(靑磁象嵌龍鳳牡丹文蓋盒)의 뚜껑에는 용 무늬가 상감(음각으로 새긴 후 흰색 태토를 채워넣어 장식한 기법)으로 장식됐다.

 청자에서 백자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던 조선 전기에 유행한 것이 분청사기다. 분청사기는 태토(胎土) 위에 분칠하듯 백토를 입혀 구워낸 것으로, 청자나 백자에 비해 제작하기가 그리 까다롭지 않아 서민에게 사랑받은 양식이다. 그중에서도 왕실이나 고위층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급스러운 작품들이 국보로 지정됐다.

 용 문양은 그러한 왕실 유물의 상징이기도 하다. 제259호 분청사기상감용문호(粉靑沙器象嵌龍文壺)는 높이가 49.7㎝에 달하는 대형 항아리다. 발톱이 네 개인 사조룡이 앞 뒷면에 한 마리씩 배치되었는데, 용이 흔히 구름을 뚫고 날아오르는 모습으로 묘사되는 것과 달리 앞으로 힘차게 달려나가는 듯 표현됐다. 15세기 전반기인 세종연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에는 국가 의례용 제기도 분청사기로 만들어 쓰기도 했다. 의례용 그릇은 금속으로 제작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당시 금속이 부족했기 때문에 분청으로 만들어 재정을 아낀 것이다.

※참고서적: 『문화재대관 국보 도자기 및 기타』(문화재청), 『문화재대관 국보 금속공예』(문화재청), 『십이지신 용』(생각의 나무), 문화재청 홈페이지(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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