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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너 지금 잘하고 있어”… 공감·경청이 격려의 기술

#1. “그분은 살아 있는 예수다.”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는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설립자인 김종기(65)씨를 이렇게 불렀다. 대기업 임원이던 김씨는 1995년 6월 열여섯 살 아들의 투신자살이라는 비극을 겪었다. 왕따를 견디다 못해 내린 극단의 선택이었다. 아들의 죽음으로 모든 게 변했다. 옷이 왜 찢어졌는지 묻자 “깡패한테 맞았다”며 둘러대던 아들을 지켜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가슴이 찢어지듯 괴로웠다. 하지만 그는 절망 속에서 희망의 길을 택했다. 회사에 사표를 내고 재산을 털어 청소년 선도를 위한 재단을 세웠다. 지난해 김씨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희망을 잃은 사람이 세상에 희망을 준 것이다.

#2. 성매매 생활을 하던 30대 여성 A씨의 과거는 어두웠다. 남편이 죽은 뒤 생계가 어려워졌고, 아이마저 불의의 사고로 잃었다. “왜 살아야 하나?”라는 말을 되뇌며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다 심리학 박사인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교수를 만났다. 어떻게든 희망을 주고 싶었던 심 교수는 1년여 전 A씨의 사연을 트위터에 올렸다. A씨는 자신의 사연에 반응이 있을지 의심쩍어했다. 하지만 심 교수의 트윗에 “힘내라”는 멘션이 160개나 달렸다. 심 교수는 이 내용을 종이에 찍어 무지개 모양으로 만들어 A씨에게 선물했다.

A씨는 미용사 자격증을 따서 미용 강사로 활동 중이다. 160명이 만든 ‘희망의 무지개’ 덕이었다.

다들 괴로운 세상이다. 젊은 세대는 ‘3포 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자처하고,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가장 높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비율은 역대 최저라고 한다. 『위로받을 시간』을 펴낸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은 “요즘 불면증·우울증을 호소하는 자영업자들이 부쩍 많이 찾아오는데, 노인 우울증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젊은이들의 상담 멘토인 칼럼니스트 임경선씨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며 용기를 못 내는게 요즘 젊은 세대의 특성”이라고 짚었다.

건국대 하지현(정신과) 교수는 올해 『심야치유식당』을 펴내면서 부제를 ‘당신의 문제는 너무 열심히 사는 것이다’고 붙였다. “한 번의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경쟁 시스템은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식으로 사람이 나가떨어질 때까지 몰아붙인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너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라는 격려의 한 마디”라고 하 교수는 말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처방전은 ‘희망 찾기’다. 주위의 위로와 격려와 공감이 뒷받침 돼야 한다. 위로가 필요한 시간을 쓴 김경집 전 가톨릭대 교수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박탈당한 한국 사회에 필요한 건 격려와 위로”라고 진단한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아프니까 청춘이다』가 150만 부를 넘긴 배경이다. 하지만 격려와 위로도 잘못하면 잔소리나 훈계, 때로는 언어폭력이 된다. ‘잘 되겠지’ ‘더 힘든 사람도 있어’ 등 섣부른 위로는 상대방의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소통하고 공감하는 마음이 없어서다. 김경집 전 교수의 지적처럼 “암에 걸렸는데 위장약 주는 격”이 될 수 있다. 적정한 선을 지키며 희망을 주는데도 기술이 필요하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제대로 하긴 어려운 게 위로와 격려다. ‘격려 전도사’의 기술을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①경청
상대방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서 위로와 격려는 시작된다. 첫걸음은 경청이다. 상대방은 내가 지금 얼마나 힘든지, 자신의 고민을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공감받기를 원한다. ‘모든 게 잘 해결될 거야’라는 식의 섣부른 낙관론은 듣는 이를 더 깊은 실의에 빠지게 할 뿐이다.

이야기를 들을 때 구체적 질문을 해 가며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냥 듣는 것(hearing)이 아니라 경청(listening)을 해야 한다.

경청을 위해선 함께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실의에 빠진 이를 찾아가는 거다. ‘너와 함께 있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에서 치유는 시작된다. 칼럼니스트 임경선씨는 “마음이 복잡할 땐 감정을 표현하는 것 자체도 힘들어 횡설수설하게 된다. 그럴때, 상대방이 행간을 읽어 가며 ‘아, 네가 이래서 힘들구나’라고 이야기를 경청해 주면 그 자체로 마음이 정리된다”고 설명했다.

경청은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이시형 박사가 미국에서 근무하던 시절, 한 청년이 뉴욕 워싱턴 다리 난간에서 자살하겠다며 몇 시간을 버틴 적이 있었다. 그 청년은 경찰에게 “닥터 리를 불러 달라”고 했고, 이 박사는 경찰이 보낸 헬기를 타고 현장에 도착했다. 난간에 매달린 청년에게 이 박사는 “내가 왔다.

내려와서 뭐가 힘든지 얘기하자”고 손을 내밀었고 청년은 곧바로 내려왔다.

②역발상
어두움이 있어야 빛이 있듯, 절망은 희망의 재료다. 위로를 받거나 해 본 이들은 절망이 곧 희망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모든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진 않는다. 똑같이 암 선고를 받아도 어떤 이는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지만, 어떤 이들은 치료법을 찾아 병세를 호전시키는 것과 같다.

이시형 박사는 ‘불안의 힘’을 강조한다. “교수감으로 인정받는 유능한 학생이 찾아왔다. 대인공포증 때문에 너무 괴롭다고 했다. 남들 앞에만 서면 10을 준비해도 하나도 채 말을 못하겠다고 하소연했다. ‘난 하나를 알아도 10을 아는 것처럼 떠드는 재주가 있네. 자네는 열을 알아도 하나를 겨우 말한다니 나보다 10배로 공부해야 하겠군. 그 절박함이 자네를 밀어주는 힘이네. 10년 후 자네 실력은 나를 훨씬 앞지를 거야’라고 말해 줬다. 그 학생의 절망은 20분 만에 희망으로 바뀌었다.”

③공감과 대화
희망으로 가는 위로와 격려의 핵심은 동정(sympathy)이 아닌 공감(empathy)이다. 공감엔 돈이 들지 않는다. 김경집 전 교수는 220원짜리 우체국 엽서를 많이 사서 가방에 넣어 둔다. 좋은 말을 들을 때면 그 말이 필요할 것 같은 누군가에게 엽서를 써서 부친다.

“위로를 표피적으로만 할 경우 불통이 된다. 위로와 격려는 곧 소통이다. 마음과 마음이 대화하는 데는 큰돈이 안 든다.”

공감을 위한 대화의 목적은 판단이나 설득이 아니다. 배우자가 바람을 피워 속상한 친구와 대화할 때 “빨리 이혼해 버려”는 식의 판단 섞인 충고는 금물이다. 김상준 원장은 대신 “그래서 지금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혹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라고 물으라고 조언한다.

④눈물과 치유
한국 남자들은 눈물 흘리는 걸 어색해한다. 하지만 눈물의 힘은 세다. 김상준 원장이 직접 겪은 경우다. “극심하게 몸이 아팠을 때, 너무 억울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만 하고 살았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 싶었다. 내 얘기를 누군가에게 하고 싶어 아버지 산소에 갔다. 남들이 듣든 말든 실컷 대성통곡을 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고, 내가 아픈 것을 받아들이게 됐다.” 하물며 정신과 전문의도 고민이 있고 괴로운 게 인생이다. 힘든 상대의 손을 붙잡고 함께 눈물을 흘려 보라. 상대도 위로받지만 나도 치유됨을 느낄 수 있다.

⑤응원
공감 어린 대화 뒤 상대에게 희망을 줘도 근본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다 잘 될 거야’라든가 ‘곧 나아질 거야’라는 상투적이고 대책 없는 희망의 메시지는 상대에게 독이 될 수 있다. 하지현 교수는 “성인을 위한 격려는 결국 ‘내 편이 하나 있구나’라는 안정감을 갖도록 응원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는 것도, 짐을 덜어 주는 것도 아니지만 같은 편에 서 있다는 메시지가 중요하다. 아무 말 없이 하는 간단한 스킨십도 좋다. 가볍게 안아 준다든가,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여 주는 ‘동조’의 표시도 좋은 격려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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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