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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시대, 야성을 잃지 말자

연말연시 기관과 연구소마다 경제전망을 내놓고 있다. 2012년 상반기는 성장률이 낮고 하반기는 높다는 ‘상저하고(上低下高)’ 견해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한 해의 전망에 머물러 경제를 볼 시기는 아닌 것 같다. 순환적 요인으로 경기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경제 저변에 펀더멘털(거시경제의 기조)의 변화가 일고 있기 때문이다. 펀더멘털이 약화되는 신호를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우선 국가의 생산능력에 해당하는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4%대 중반이던 잠재성장률이 위기 이후에는 4%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몇몇 기관은 이보다 낮춰 3.7% 안팎으로 보기도 한다. 3%대 추정치는 저성장을 우려케 한다. 또한 우리나라 경제성장 동인이던 베이비부머(1955~63년생)가 경제의 짐이 되기 시작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베이비부머는 40, 50대 연령에 속해 ‘인구배당금(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사회 전체가 얻는 이익)’이 극대화된 시기였다. 베이비부머들의 노동생산성은 절정이고, 소비성향이 높은 데 비해 저출산으로 양육비용은 줄어든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제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했다. 노동생산성과 소비성향이 높은 인구가 줄고 고령자를 위한 복지 부담이 늘어날 참이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각국이 디레버리징(차입 축소)을 할 때 우리나라는 부채를 늘려 왔다. 가계의 레버리지(차입 확대)는 소비를 유지하고 생활수준의 거품을 만들었다. 자영업자 부채를 넣으면 가계부채는 1000조원에 육박한다. 이자 부담만 한 해에 50조원에 이를 정도다. 부채 증가로 이뤄진 소비 증가와 부동산 가격 상승은 한계에 다다르면 오히려 반대 모멘텀까지 만든다. 과다 부채는 그 시기를 정확히 모를 뿐이지 반드시 부작용을 초래한다. 또한 가계부채는 주택담보대출을 연결고리로 해 부동산 시장과 밀접하므로 부채 문제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작금의 난관은 경기순환이 아니라 펀더멘털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첫째, 기관이나 개인 모두 버블을 해소하고 견실해져야 한다. 경제가 순환국면일 경우에는 부채가 과다하거나 조직이 다소 비효율적이더라도 경기가 좋아지는 국면이 되면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펀더멘털의 문제로 저성장이 장기화할 경우 과다 부채나 비효율 조직은 부담이 되면서 해소할 방도를 찾기가 어렵다. 실수를 하면 만회할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따라서 조직을 좀 더 효율적이고 유연성 있게 만들어야 한다. 가계와 개인은 생활의 버블을 줄여야 한다. 저성장기엔 가계의 소득증가율이 낮아지지만 이자지급액은 확 줄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부동산과 같은 자산의 가격은 떨어질 수 있는 데 비해 부채는 고정돼 가계의 대차대조표가 악화된다.

둘째, 경제의 펀더멘털을 개선하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재정·통화정책과 같은 수요정책에 대한 관심이 크다. 그러나 펀더멘털의 문제는 펀더멘털로 대응해야 한다.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한 공급 측면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인구·규제 정책이나 사회적 자본의 형성, 혁신정책 등을 치열하게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창의적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혁신이 활발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혁신 가능한 사회를 위해서는 야성(野性)을 잃지 말아야 한다. 고대 로마제국은 건국 과정에서는 야성을 지녔다가 이것이 점차 약해지면서 야만족인 게르만의 침략을 당했다. 페르시아도 그리스의 변방국 마케도니아에, 중국은 오랑캐라던 몽골에 나라를 빼앗긴다. 성숙한 문명국이 문화와 품위에 길들여져 야성이 충만한 나라에 망한 사례들이다.

경우는 다르지만 경제가 선진국처럼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면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기 쉽다. 또한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면 사회 전반적 분위기가 한 박자 느려진다. 일본을 보면 알 수 있다. 경제의 야성은 기업가 정신이고 혁신이다. 케인스는 투자를 좌우하는 것을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이라고 표현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간신히 넘긴 시점에서 벌써 안락함을 추구해서 되겠는가. 무엇보다 칸막이로 인해 상황이 고착화되는 사회, 고체입자 같아서 계층 간 이동이 어려운 사회를 경계해야 한다. 벽 없이 활발하게 이동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야성이 커진다. 다가오는 저성장 국면을 타파할 수 있는 방법이다. 
 


김경록(50) 2000~2009년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채권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와 채권·금융공학부문 대표를 지냈다. 지난해부터 미래에셋자산운용 경영관리부문 대표를 맡고 있다. 서울대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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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