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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 22조원, 뉴욕시장 3選 … CEO형 리더십의 성공모델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나 우리 사회는 기업형 효율성을 미덕으로 삼는 풍조가 생겼다. 그래서 최고경영자(CEO) 모델이 표준형으로 등장했다. 정·관계, 학계, 문화·예술계, 언론계, 심지어 군부에조차 CEO형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기야 과거 오랫동안 국가운영 전반에서 드러난 낭비와 비효율을 감안한다면 수익성과 효율성을 겸비한 CEO 모델이 이상형이라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 또 세계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글로벌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CEO형 지도력을 필요로 하는 부분도 있다.

기업인으로 출발해 ‘세계 도시’ 뉴욕의 시장직을 맡고 있는 마이클 블룸버그(Michael Bloomberg)는 기업과 공직의 차이를 잘 터득하고 이를 자신의 시정에 효과적으로 반영한 유능한 공직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립심 강해 어릴 때부터 고학
1942년 보스턴 근교 브라이턴에서 태어난 블룸버그의 부모는 폴란드-러시아계 개혁파 유대인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지적 호기심이 강했고 학업성적도 좋았다. 64년 동부 명문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후 하버드대에서 MBA과정을 마쳤다. 아버지가 회계사 출신의 부동산중개인이어서 미국의 중산층에 속했다. 그러나 자립심이 유독 강했던 블룸버그는 소년 시절부터 고학으로 학비를 조달했다. 대학 때는 주차보조원으로 일했다.

73년 블룸버그는 유대계 투자기업인 살로먼 브러더스에 입사해 주식 애널리스트로 근무했다. 순발력 있고 대인관계가 좋은 덕에 많은 실적을 올린 그는 회사에서 고속으로 승진했다. 블룸버그는 항상 ‘셀프 메이드’ 인재론을 폈다. 한 조직의 필수 구성원이 되려면 각자 자기의 상품성을 스스로 개발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논리다. 그도 자신의 상품성을 인정받아 직장에서 승승장구해 40세가 되기 전에 이미 백만장자가 됐다.

그런데 81년 예기치 못한 해고통보를 받는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퇴직금 1000만 달러와 개인 재산을 털어 그해 IMS라는 투자자문회사를 만들었다. 메릴린치 등 월가의 대형 투자금융기업 몇 곳을 고객으로 확보했다. 과거 수작업으로 처리하던 금융시장 동향 분석을 컴퓨터 전용회선과 단말기를 통해 제공했다. 당시로선 매우 혁신적 방법이었다. 86년 IMS는 ‘블룸버그 리미티드 파트너’라는 합자회사 형태의 미디어그룹으로 확대 개편됐다.

91년에는 전용회선으로 뉴욕 타임스에 금융정보를 공급하게 돼 블룸버그통신사의 성가가 일반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그룹은 라디오, TV, 잡지, 인터넷사이트, 출판사를 거느리는 대형 미디어그룹으로 성장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세계 91개국에서 금융시장의 뉴스와 정보, 동향분석자료 등을 제공한다. 한국에는 92년 진출해 국내 경제매체 2개사와 제휴하고 있다.

억만장자 반열에 오른 블룸버그는 2000년대에 들어오자 정치에 관심을 갖는다. 많은 미국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오랫동안 민주당원이었다. 그런데 돌연 공화당으로 당적을 바꾼다. 루디 줄리아니 공화당 출신 뉴욕시장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뉴욕시장에 당선되려면 유대인이나 이탈리아계가 유리하다. 특히 역대 뉴욕시장 중에는 유대계 인사가 많았다. 9·11 테러의 사후수습을 마치고 퇴임하는 줄리아니 시장의 후임으로 블룸버그는 2001년 말 뉴욕시장 선거에 출마해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승리한다.

시장 취임 초기 블룸버그는 기업운영 방식을 시정에 도입했다. 그런데 그의 기대와는 달리 이런 CEO식 모델은 시정 각 부문에서 현장과 충돌하면서 잡음을 냈다. 영리한 블룸버그는 곧 그 이유를 알아챘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이윤창출이 가장 중요한 목표지만 공공영역에선 계량화된 실적이 나오기 힘들다는 점을 인식한 것이다. 그는 국가 공직의 기본임무인 계층별 갈등조정, 빈부격차 해소 등 사회문제에 주력했다. 즉 생활환경 개선과 빈민 구호에 시정 우선순위를 두었다. 뉴욕 시민 다수는 기업인이 아닌 공직자 블룸버그의 새로운 모습에 대해 호감을 보였다. 2005년 그는 공화당 후보로 나가 시장에 재선된다. 2009년에는 무소속 후보로 다시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3선(選)에 성공한다.

빈민 구호 등 계층 갈등 조정 힘써
블룸버그는 기업과 공직 양쪽에서 커다란 성취를 이뤘다. 2011년 3월 미국 포브스지 발표에 의하면 그는 195억 달러(약 22조5000억원)의 개인재산을 가진 대부호다. 미국 8위, 세계 17위다. 많은 동료 유대인 부호와 같이 블룸버그도 자선과 기부에 열정을 보인다. 모교인 존스홉킨스대학에 매년 수억 달러를 기부한다. 개발도상국 청년지원사업에도 큰돈을 낸다. 그는 2006년 세계 기부자순위 6위에 올랐다.

블룸버그에 대해 호의적 여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97년에는 그의 통신사 여직원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리고 민주당적을 버리고 공화당, 무소속으로 말을 갈아탄 ‘철새 행적’도 도마에 올랐다. 최근엔 월가 점령시위의 강경진압을 지시했다는 비난도 있다. 그러나 그는 공적 영역의 특수성과 기업의 강점을 시정에 잘 조화시킨 인물이라는 평가가 중론이다. 국가는 기업과 달리 이윤만을 추구하는 집단이 아니며 장·단기적 목표와 전략 그리고 철학이 있는 비전에 의해 운영되어야 함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CEO형 인재가 각 분야에서 각광받고 있다. CEO 출신 인사가 국가 주요 공직에 임용되는 것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자수성가형 CEO 출신의 블룸버그가 국가 공직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성공적으로 시정을 수행하고 있는 사례는 우리에게도 참고할 부분이 많다.

명지대 객원교수·전 외교부 대사 jayson-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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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