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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짝짝 쿵짝짝 왈츠가 환호받던 시대 홀로 짜증스러운 음악 만든 심사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 그녀와 춥고 어두운 밤에 숲길을 함께 걷고 있다. 높은 떡갈나무의 검고 뾰족한 가지 끝이 달을 찌르고 있다. 그녀가 말한다. “저는 애를 배었어요.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애를….” 현악6중주 <정화된 밤>의 배경 내용인데 남녀 무용수 둘이 등장해 내용을 표현하기도 한다.

신경질적인 기상 나팔 소리, 채찍질, 의식을 잃고 죽어가는 포로들, 가스실, 극한의 공포와 전율을 드러내는 오열 그리고 이어지는 광란의 소음들…. 내레이터의 영창과 함께 <바르샤바의 생존자>는 시작된다. 연주자도 객석도 표정이 어둡고 심란하다.

귀곡성이랄까. ‘으히히 으히히’ 하는 여인의 요사스러운 목청으로 달빛을 노래한다. 어지럽고 환한 달빛은 인간이 눈으로 마실 수 있는 술이다. 무섭고 달콤한 욕망이 수없이 물결을 가르고 신이 만든 양조주에 취한 피에로는 미친 듯이 기뻐하며 비틀거리고 흐느적거리고 쓰러졌다 일어서고…. <달에 홀린 피에로>의 내용이다.

‘이 시대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라는 명제가 쇤베르크의 뇌리를 단단히 사로잡았던 것이 아닐까. 쿵짝짝 쿵짝짝 왈츠풍의 레하르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류가 환호를 받던 바로 그 시기에 쇤베르크는 듣기에 짜증스러운 음악을 추구했다. 젊은 시절부터 반음계적인 불협화음의 음악을 추구했지만 점차 극단적인 무조음악으로 음렬주의로 나아갔다. 통상 표현주의라고 부르는 다른 좌표를 꽂고자 했던 쇤베르크다. 그런데 과연 그의 음악은 짜증스러운가?

피에르 불레즈가 지휘한 ‘정화된 밤’.
‘…스러운가?’는 설의법이므로 그 답변은 물론 그렇지 않다가 되어야 한다. 정확히 내 의견을 말하자면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쇤베르크의 선율은 일면 기괴하기도 하지만 귀 기울여 들으면 무척 로맨틱한 악상이 느껴진다. 일종의 갱신된 아름다움이랄까. 나는 이런 종류의 예술적 표현을 세련됨으로 이해한다. 우리들의 삶이 복잡하므로 예술 표현도 복잡할 수밖에 없다는 것. 우리 문명이 자연의 조화와 질서를 벗어나 있음으로 예술적 표현도 인간의 생체적 리듬에 반하는 새롭고 도발적인 질서가 필요하다는 것. 그런데 그런 복잡함과 도발성과 반질서가 편안하고 즐겁게 느껴지는 상태는 어떤 것일까.

하나무라 만게쓰라는 일본 작가가 있다. 중노릇하다가 환속한 인물인데 가령 <게르마늄의 밤> 같은 작품은 19금(禁) 딱지가 붙어 있고 그의 소설 대부분이 국내 판매율이 형편없다. 소위 변태적이고 반윤리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은 감각적 아름다움이 담긴 꽤 괜찮은 소설이다. 기괴한 하나무라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죄의식일 것 같다. 이런 내용을 접하면 안 된다는 강요된 자기 검열.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혼나면서 자라난 탓이다. 혹시 우리는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어도 영영 자식이고 학생인 것은 아닐까. 자율적인 성인의 상태에 도달하지 못한 채 일생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이 연사 소리 높여 외칩니다. 나는 변태입니다”라고 어느 왁자한 모임에서 주장하니 다들 크게 웃는다. 상투적 윤리, 상투적 아름다움, 상투적 관계를 벗어나고 싶다는, 정신의 성인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변태 커밍아웃으로 외치고 있는 이 마음을 쇤베르크는 알아주려나.

복잡, 도발, 반질서가 편안하기 위해서는 의식과 영혼의 자유로움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속박의 편안함을 추구한다. 속박을 취하면 게을러도 되지만 자유로움에는 고통이 따른다. 게으른 자들은 착하고 모범적이라는 평판이 따르지만 자유로운 자는 불편한 시선을 받는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자유로울 수 있는 때일까. 서정시를 써도 되는 때일까. 홀로코스트는 지나간 역사의 흔적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쇤베르크 음악은 표면상의 난해함이 있지만 집중해 들으면 무척 몽환적이고 서정적이다. 리얼리즘의 세계가 아닌 대신 새롭게 구축된 리얼리티라고나 할까. 현실의 직접적 반영을 벗어나서 새롭게 자각된 현실을 마주치게 한다. 그리고 그런 것이 예술이려니 한다. 그는 유대인 출신의 망명자로 생애를 마감했다. 사람들이 모차르트의 음악을 편안한 것으로 받아들이듯이 앞으로 100년 동안은 자기 음악이 그렇게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과연 텔레비전 CF에서 작열하는 불협화음을 대하면 그의 장담이 맞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가 원했던 것은 결코 아니니라. 쇤베르크 음악에서 나는 어떤 연대감을 느낀다. 한편에서는 레하르풍의 쿵짝쿵짝이 세상을 풍미하고 또 한편으로는 자식과 학생으로, 다시 미성숙의 상태로 퇴행하라고 강요하는 듯한 사회 분위기. 시장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나서 생겨난 현상이다. 또 해가 바뀌는데 날카롭게 현을 긋는 쇤베르크 바이올린 협주곡의 마찰음이 가슴을 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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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