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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대첩

임진년 새해다. 임진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임진왜란(1592~1598)이다. 7년간에 걸친 민족 수난이다. 이 전쟁은 한·중·일 동양 삼국을 뒤흔들었다. 조선에선 왕조가 유지됐지만 민심은 이전과 달라졌다. 한족 국가인 명나라는 국력이 쇠퇴하면서 여진족의 청나라에 정복됐다. 임진왜란 참전에 따른 국고 부담이 상당한 원인을 제공했다.
일본은 전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7~1598)의 죽음으로 아들 히데요리에게 권력이 넘어갔으나 결국 야심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1543~1616)가 집권했다. 그 분수령이 세키가하라 전투(1600년)다. 도요토미 가문의 편에 선 서군이 도쿠가와 편에 선 동군에 지면서 도쿠가와 시대가 열렸다.

재미난 것은 서군 핵심부가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의 최대 육전 승리로 꼽히는 행주대첩(1593)에서 권율 장군에게 철저히 유린당한 장수들이란 점이다. 히데요시의 오른팔로 서군을 실질적으로 움직였던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1560~1600)를 비롯해 히데요시의 양자 격이던 우키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1572~1655), 조선 침공의 선봉장이던 가톨릭 신자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1555~1600), 한산대첩에서도 패전한 와키사카 야스하루(脇坂安治·1554~1626)가 모두 행주대첩의 패장들이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명목상 서군 총대장이던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1553~1625)와 도요토미의 6촌 조카인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1562~1611)도 참전했다. 행주대첩에서 우키다는 중상을 입고 위기에 처했지만 부하들이 등에 업어 피신시킨 덕에 겨우 목숨을 건졌다. 와키사카는 온몸에 여러 대의 화살을 맞고 죽음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간신히 살아났고, 이시다도 부상을 입었다. 일본군 핵심 지휘관들이 이렇게 부상을 입은 전투는 드물었다.

도요토미의 오른팔이던 이시다는 이 전투에서 조선군보다 10배나 많은 3만 군대를 지휘하면서도 미숙함을 보였다. 병력 가운데 거의 절반을 잃어버리는 참패를 당했다. 당시 이를 눈여겨봤던 가토는 이시다의 능력을 의심했다. 그래서 이시다가 주도하는 서군에 서지 않고 승산이 엿보이는 동군 편을 들었다. 능력과 비전을 바탕으로 자기 편을 선택한 셈이다. 모리도 서군에서 동군으로 말을 갈아탔다.

행주산성에서 군 지휘관으로서 무능함을 보였던 이시다의 편에 섰던 장수들은 오랜 친분과 도요토미 유지 계승이라는 명분으로 서로 엮인 구시대적 의리의 인물들이었다. 반면 도쿠가와 편에 선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시대 흐름과 대세를 읽은 사람으로 판단할 수 있다. 실력과 능력이 세상을 좌우한다고 믿은 것이다. 이러한 가치 판단과 선택이 그들의 운명을 갈랐다.

또 다른 임진년인 올해, 한반도에서 많은 선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남북관계부터 주변 국가들과의 외교관계, 그리고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이 그것이다. 하나같이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한 결정들이다. 2012년은 좋은 선택을 하는 한 해가 되기를 새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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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