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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 전성시대 … 팬클럽, 원하는 스타 직접 만든다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여중생 A는 32인조 남자 아이돌 그룹 ‘ATOZ32’의 열성 팬이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ATOZ32가 매일같이 공연하는 서울 청담동 소극장에 출근도장을 찍는다. 이렇게 한 지 벌써 1년이 돼간다. A처럼 소극장에 와서 ATOZ32를 지켜보는 팬클럽 회원만 500명 가까이 된다.

멤버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초기 모습부터 시작해 마치 자신의 아바타(분신)를 만들듯 성장과정을 쭉 같이했다. 헤어스타일과 옷차림, 메이크업도 회원들이 정한다. 500명은 스스로를 ‘ATOZ32의 엄마’라고 부른다. 처음엔 32명 멤버를 구별하는 일조차 힘들었지만 이젠 누가 춤을 잘 추고 누가 랩을 잘하는지 훤하게 신상명세를 꿰고 있다.



ATOZ32는 32명이나 돼 항상 전원이 무대에 서진 않는다. 공연 종류에 따라 어느 멤버가 출연할지는 팬클럽 회원들이 투표로 정한다. 몇 달 전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킨 멤버에 대해선 팬클럽 회원들이 기획사에 “그룹 이미지를 훼손시켰다”고 항의해 멤버를 교체시켰다. A는 아이돌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짜릿한 만족감을 느낀다. 회원들이 정한 ATOZ32의 활동기한은 2년. 미리 정한 기한이 지나면 새 아이돌 그룹으로 바뀐다.

팬덤 문화는 1990년대 후반부터 대중문화의 폭발적 성장을 주도했다. 10년 후 세상에서 팬덤의 위력은 더 강력해질 전망이다. 팬들이 대중문화 콘텐트를 소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스타를 직접 만드는 데 참여한다. 스스로 콘텐트를 만들고 즐기는 이른바 ‘생산자적 소비자’ 개념이다. 미디어와 대중이 문화권력을 나눠 갖는 시대다.

요즘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걸그룹 AKB48을 보면 이런 상상이 전혀 엉뚱한 게 아니다. AKB48은 아키하바라의 전용소극장 공연을 거의 매일 하다시피 하며 육성됐다. 이들은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을 표방한다. 공연엔 팬클럽이 참여한다. 팬들은 인기투표를 거쳐 멤버 48명 중 그때그때 활동할 멤버를 정한다. TV나 공연에서만 볼 수 있던 아이돌 스타의 성장 과정을 팬에게 보여주고 같이 성장해나간다는 프로젝트다. 동방신기를 키운 김경욱 전 SM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이를 모델 삼아 지난해 도쿄 소극장 공연을 통해 21인조 남성 아이돌 그룹을 일본에서 데뷔시켰다.

아이돌 그룹의 연령은 10대 초반까지로 내려간다. 고령화 사회로 갈수록 젊음을 추구하는 풍조가 강해지는 탓이다. 멤버 수는 30∼40명이 보통이다. 연예인 지망생 숫자가 급증하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이들은 몇 명씩 짝을 지어 ‘따로 또 같이’ 활동한다. 핑클처럼 멤버가 네댓 명에 불과했던 초기 아이돌 그룹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손 위의 TV에서 발굴되는 스타들
“스타는 인간과 신의 중간 영역에 있는 사람이다. 현대사회에서 스타는 반신(半神)이 됐다.” 스타와 이미지산업을 설명한『스타』(1969)에서 프랑스 사회학자 에드거 모랭이 한 말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위력이 더욱 커질 10년 후 세상, 10년 후 미디어 환경에서도 이 명제는 유효할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할리우드에서 건너온 스타시스템은 여전히 유지되겠지만, 지금보다 스타는 훨씬 빠르게, 훨씬 자주 탄생할 것이다. 보통사람들의 연예계 진입 장벽이 낮아지는 반면 그들의 수명도 짧아진다.
스타의 개념도 확장된다. ‘스타=연예인’이라는 단순 공식에서 벗어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흐름을 반영하는 ‘셀레브리티(celebrity)’ 개념으로 이동한다. 디지털 콘텐트, 디지털 매체의 비중이 높아짐에 따른 현상이다. 하윤금 한국콘텐츠진흥원 연구원은 “매체 변화에 따라 해당 매체를 주도하는 플레이어도 바뀌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트위터가 파급력을 가지면서 인터넷 1인방송 ‘나꼼수(나는 꼼수다)’ 출연자들이 유명세를 치르는 데서 그 단서를 엿볼 수 있다.

이른바 ‘GIFT(구글·아이폰·페이스북·트위터)’ 시대에 스타 탄생의 경로는 더욱 다양해진다. 유튜브가 한국의 걸그룹 소녀시대를 바다 건너 유럽으로 데려갔듯, 소셜네트워크가 자체적으로 스타를 만들고 키워내 전 세계에 데뷔시킨다. ‘인터넷 얼짱’으로 출발한 일반인들의 스타 데뷔 사례는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 등 방송사 오디션 프로그램의 기폭제가 됐다. 지난해 구글 검색순위 상승 1위는 유튜브에 ‘프라이데이’라는 뮤직비디오를 올려 조회수 2억 회 이상을 기록한 미국의 레베카 블랙이었다. 그는 평범한 10대 소녀에서 유튜브 덕분에 하루아침에 글로벌 스타로 떠올랐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지금까지는 기획사가 스타가 될 만한 재목을 발굴해 상품으로 내놓았지만, 점점 더 스타가 돌발적으로 출현하는 사례가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가 발전함에 따라 동영상을 SNS에 올려 공유하는 빈도는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다. 각자의 손 위에 놓인 TV를 통해 발굴되는 스타의 숫자는 그만큼 늘어난다. 반면 강변가요제, 대학가요제,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등을 통해 스타를 발굴·양성했던 올드 미디어의 영향력은 쇠퇴한다.

10년 후 세상에선 대중문화의 여러 분야를 아우를 ‘멀티플레이어’가 각광받는다. 연기나 노래 등 특정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보다 자신의 개성을 전방위로 부각시키는 사람이 환호를 받는다. 대중의 취향이 복잡해지고 세분화되기 때문이다. 마이마이와 워크맨 등 대중이 접할 수 있는 미디어가 한정적이었던 80∼90년대엔 스타 가수의 앨범이 100만 장씩 팔리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인터넷과 SNS가 지배하는 사회에선 소비자들도 다양한 지식·정보 못지않게 다양한 취향을 갖게 된다.

일본에서 ‘근짱’ 열풍을 일으킨 장근석에게서 미래형 멀티플레이어의 조짐을 읽을 수 있다. 아레나 콘서트와 도쿄돔 공연을 통해 6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한 그는 공연에서 배우와 가수의 영역을 넘나든다.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 ‘미남이시네요’의 캐릭터를 무대에서 재연하고, 함께 출연했던 배우 박신혜를 초대해 토크쇼를 벌이기도 한다. 드라마와 영화, 노래와 예능프로 등 다양한 종류의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려는 대중의 욕구와 맞아떨어져 큰 호응을 얻었다. 능숙하진 않지만 3시간 넘게 일본어를 구사하며 국경과 문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에겐 ‘신인류 연예인’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멀티플레이어가 각광받음에 따라 대중과의 소통 능력이 한층 중요해진다. 이른바 ‘소셜테이너(social+entertainer)’라 불리는 사회참여 연예인들의 숫자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사회학과)는 “소셜테이너라 불리는 이들은 소셜네트워크를 이용한 소통 활동을 통해 사회적 위상과 엔터테이너로서의 가치를 끌어올린다”고 평가한다. 일반인과 교류하고 이것이 입소문을 타고 퍼지면서 다시 존재가치를 높였다는 얘기다. 10년 후 스타들이 갖춰야 할 필수자질 항목에는 외모·끼 다음으로 소통능력이 들어갈지도 모른다.

외모·끼와 더불어 대중소통능력 중요
연예산업의 10년 후 지형도는 어떻게 될까. 배우·가수를 키워내는 기획사들의 경우 대형화와 함께 세계화의 물결을 타게 된다. 장규수 연예산업연구소장은 “2000년대 초 정보기술(IT) 거품이 붕괴된 것과 달리 연예산업에는 계속 자본이 들어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놀이·여가가 중요시될 미래사회의 흐름에서 컬처 파워는 커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양극화가 심화되고 계층이동이 원활하지 못할수록 스포츠·연예 스타에 대한 선망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 연예계에서 최고 개런티를 받는 ‘특A급 스타’의 숫자는 요즘 10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할리우드에서도 이른바 ‘3000만 달러 클럽’에 들어가는 배우 숫자는 10여 명밖에 안 된다. 10년 후 연예계 역시 양극화 현상은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고액 개런티를 소수가 독점하는 식이다. 대형 기획사에 소속되지 않은 배우들의 활동 폭은 더욱 좁아진다.

특A급들의 영향력은 훨씬 커질 전망이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60~70년대 후라이보이 곽규석과 지금의 국민MC 유재석의 위상을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 연예인이 ‘딴따라’로 불렸다면 지금은 초등학생들이 첫손가락으로 꼽는 장래 희망 직업이다. 유재석은 지상파 방송사 한 곳에서만 연 10억원 가까운 수입을 올린다.

‘글로컬(세계화+지방화)’ 추세에 발맞춰 지역에서 성공한 연예인들의 해외 진출 사례는 급증한다. 특히 자본과 기획·조직력을 갖춘 대형 기획사들에 국경은 더 이상 장벽이 아니다. 보아의 일본 진출을 성공시킨 아시아 최대 음악기획사 에이벡스는 한류스타에게도 손을 뻗치고 있다.

SS501·빅뱅·2NE1 등을 데려갔다. 이들이 일본에서 번 돈의 상당 부분은 에이벡스에 돌아간다. K팝 열풍의 이면이다. 장규수 소장은 “우리는 그동안 스타 발굴과 육성에만 관심을 가졌는데, 글로벌 시대에는 유통에 눈을 돌려야 한다. 매니저·프로듀서보다 유통을 맡은 에이전트의 역할이 더 중요한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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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