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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한 김근태 누구인가

30일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별세했다. 이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 영정사진이 놓여있다. [서울=연합뉴스]
  체포 26회, 10년 간의 수배생활, 구류 7회, 5년 6개월에 걸친 두 차례 투옥과 숱한 가택연금….



29일 뇌정맥 혈전증에 따른 합병증으로 타계한 민주통합당 김근태 상임고문의 굴곡진 삶을 보여주는 기록들이다. 김근태는 곧 민주화운동이었다. 이름 앞에 항상 ‘재야 민주화 운동의 대부’란 수식어가 붙었다.



김 고문은 1947년 경기 부천의 교육자 집안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중학교 3학년 때 5ㆍ16으로 교장이던 부친이 강제해직 당하고 그 충격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가세는 기울었다. 모친이 동대문시장에서 받아온 스타킹과 양말을 팔아 생계를 꾸렸다.

어려운 형편에도 김 고문은 경기고를 거쳐 65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안정된 미래가 보장된 길이었지만, 대학 3학년 때인 67년 시위에 나섰다가 학교에서 쫓겨난다. 가까스로 복학했지만 반독재 투쟁을 멈추지 않았고 71년 ‘서울대생 국가내란음모’에 휘말려 유신정권이 막을 내릴 때까지 도피생활을 해야 했다.



80년 ‘서울의 봄’을 밟고 들어선 전두환 정권은 더 가혹했다. 83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초대 의장이 된 그는 2년 뒤인 85년 8월 서울대 민주화추진위 배후조종 혐의로 체포됐다. 22일 동안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전기고문 등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고문기술자’ 이근안과의 만남도 이때였다. 김 고문은 당시의 공포를 이렇게 술회했다.



“전기가 발을 통해서 머리 끝까지 쑤셔 댈 때마다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핏줄을 뒤틀어 놓고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마침내 마디마디 끊어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소리를 지른다고 강하게 전류를 통하게 하고 신음 소리가 나지 않도록 혀를 이빨로 꽉 물면 혀를 빼라고 강한 전류를 또 흘려 보내고…”



그를 버티게 해준 건 부인 인재근 여사였다. “수도 없이 투옥되고 수배 당하던 시절 내 빈자리를 든든히 지켜줘 그 분께 빚이 많다”는 헌사를 남긴 적도 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남영동에서 서울구치소로 이송된 김 고문은 생일을 맞아 찾아온 인씨에게 선물로 ‘사랑의 미로’를 불러줬다. 고문으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됐던 터라 노래는 엉망진창이었다. 인씨는 깔깔대고 웃었다. 하지만 20여분 뒤 면회실을 나온 인씨는 하염없이 울었다고 한다. 이들 부부의 애창곡은 이때부터 `사랑의 미로`가 됐다.



고문 후유증은 김 고문을 평생 괴롭혔다. 어눌한 말투와 부자연스러운 몸짓이 증거였다. 2007년엔 손발을 떨고 몸이 굳어지는 파킨슨병을 얻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도 시달렸다. 그는 치과에 가는 걸 유독 싫어했다고 한다. 한번은 치과 치료의자에 누웠다가 얼굴 위로 환하게 켜진 불빛을 보고 서둘러 자리를 박차고 나온 적도 있었다. 순간 칠성판(고문대)에 누웠던 악몽이 되살아났던 탓이다.

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하면서 그는 제2의 정치인생을 살게 된다. 15대 총선부터 서울 도봉갑 지역구에서 내리 세 차례 당선됐고, 2000년 8월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이 되면서 당 지도부에도 올랐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김 고문은 열린우리당과 운명을 함께 했다. 17대 총선에서 재야 및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국회에 들어오면서 정동영 상임고문과 함께 양대 계파를 형성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며 ‘대권 수업’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은 그에게 끝내 마음을 열지 않았다. 대선 지지율은 좀처럼 바닥을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2007년 6월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어 2008년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에게 패하면서 심신은 더욱 지쳐갔다. 최근까지도 김 고문은 지역구 구석구석을 돌며 내년 총선 출마의지를 불태웠다고 한다. 그러다 지난달 29일 갑자기 병세가 악화돼 서울대병원에 입원하면서 지난 10일 딸 병민씨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지난 10월 18일 블로그에 마지막으로 올린 ‘2012년을 점령하라’는 글은 그의 유언이 됐다.



김 고문의 ‘정치적 아들’로 통하는 민주통합당 이인영 전 의원은 이날 부산에서 열린 당권 후보 합동연설회 직전 김 고문의 소식을 듣고 “도저히 연설을 할 수 있는 심정이 아니다”며 모든 일정을 포기한 채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양원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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