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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차한 욕망의 시대, 무엇이 우릴 다시 살게 하는가

전작 『마네킹』 이후 8년 만의 장편 『오릭맨스티』를 펴낸 소설가 최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지친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회복할 수 있다. 『오릭맨스티』는 그런 언어를 갈망하면서 쓴 작품”이라고 했다. [이병률사진작가]




소설가 최윤 8년 만의 장편 『오릭맨스티』 펴내

 여자가 소설을 출간한다. 8년 만에 낸 장편소설이다. 제목이 요상하다. 『오릭맨스티』(자음과모음). 오릭맨스티라니? 대체 무슨 언어가 이 모양으로 생겼단 말인가.



  여자에게 인터뷰를 청한다. 여자와 남자가 마주 앉는다. 서울 서강대 정하상관 920호. 여자의 연구실이다. 소설『오릭맨스티』에 대해 남자는 묻고, 여자는 답한다.



 여자의 이름은 둘이다. 소설을 쓸 때, 그는 최윤(58)이란 필명을 쓴다. 소설가 최윤은 1992년 ‘회색 눈사람’으로 동인문학상을, 94년 ‘하나코는 없다’로 이상문학상을 탔다. 소설 밖에서는 최현무다. 서강대 프랑스문화학과에서 그는 최현무 교수로 불린다. 최현무 교수는, 아니 소설가 최윤은 남자에게 차를 따라준다. 에펠탑이 그려진 받침대 위에 찻잔이 놓인다.



 -『오릭맨스티』는 어떻게 구상된 소설입니까.



 “이런 신문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요. 어떤 부부가 계곡에서 캠핑을 하던 중에 차가 떠내려갔죠. 그런데 이 부부가 차를 건져내겠다고 물로 뛰어든 거에요. 남녀의 미련한 행동을 보면서 인간의 욕망이란 게 얼마나 구차한가 생각했어요. 그 모습이 이번 소설의 단초가 됐던 것 같습니다.”



 맞다.『오릭맨스티』에도 꼭 그런 남녀가 나온다. 소설의 전반부(7~186쪽)는 ‘남자’와 ‘여자’가 주인공이다. 그들은 이름조차 없다. 갑남을녀를 염두에 둔 설정이다. 그러니까 그렇고 그런 너와 나의 스토리로 읽어달라는 게다. 전반부는 현재 시제로만 서술됐는데, “인물들의 왜곡된 속성이 현재형임을 나타내는 장치”다.



 실제 소설 속 남녀는 지극히 전형적인 삶을 재현한다. 남자와 여자는 적당히 결혼하고, 쇼핑에 몰두하고, 내 집 마련계획을 세우는 따분한 삶을 살아간다. 첫 아이를 낙태하고 아슬아슬한 불륜의 선도 넘나들지만, 남녀는 끝내 한 아이의 평범한 부모가 된다.



 그러나 이런 평범함에 극적인 순간이 끼어들면서 두 남녀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남녀는 아이와 함께 캠핑을 떠난다. 아이를 홀로 텐트에 남겨두고 자동차 안에서 살을 섞던 남녀는 갑작스런 폭우에 추락해 숨진다. 반라(半裸)의 남녀가 시신으로 건져지고, 아이는 입양된다.



 - 끔찍한 파국이 매우 극적입니다.



 “소설 속 남녀는 물질과 쾌락을 좇는 매우 유물적인 인물이에요. 사실 현대인 대다수가 그렇잖아요. 평범해 보이지만 실은 비윤리적이며 병적인 요소를 갖고 있죠.”



 # 회복되는 언어



 소설은 후반부(187~224쪽)에 이르러 급격히 단절된다. 죽은 남녀가 남긴 아이가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벨기에로 입양된 아이는 자라면서 잦은 혼절을 겪는다. 그럴 때마다 “오릭맨스티”라는 알 수 없는 말을 읊조리고 의식을 회복한다. 죽은 부모와 엇비슷한 나이가 된 아이는 부모가 추락한 절벽을 찾아 한국으로 떠난다.



 -‘오릭맨스티’는 무슨 뜻인가요.



 “아무런 뜻이 없어요. 제가 그냥 만든 겁니다. 회복되는 언어의 상징으로 쓴 말입니다. 무너진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선 언어가 제 기능을 해야 해요. ‘오릭맨스티’란 말에서 그런 희망의 단초를 찾은 겁니다.”



 최윤은 이번 소설을 전북 무주에 있는 작업실에서 썼다. 자주 석양을 바라보며 “왜소해진 인간성과 엄연한 삶에 대해 생각했다”고 한다. 인간성의 탑이 무너질 때, 문학은 언어로 그 탑을 떠받쳐야 한다. ‘오릭맨스티’는 회복되는 언어, 재건되는 문학의 신호음이다.



글=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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