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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신년 연설의 미시정치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
신년사의 계절이 돌아왔다. 발 빠른 단체는 언론의 병목현상을 피해 일찌감치 신년사를 내놓았다. 이명박 대통령도 내년 1월 2일 신년 연설을 한다. 1949년 첫 대통령 신년사를 한 이승만 전 대통령은 ‘잃었던 나라를 찾았으며 민족이 살아났으니, 새해부터 우리 모두가 새 백성이 되어 새 나라를 만들어 새로운 복을 누리도록 합시다’로 말문을 열었다. 이후 대통령들은 신년사나 연설에서 으레 희망을 얘기했다.



 그러다 낯뜨거운 신년사를 남기기도 했다. 97년 1월 김영삼 전 대통령은 “새로운 도약을 이룩한 영광의 한 해로 민족사에 길이 기록되게 합시다”고 말했다. 그해 우리는 외환위기를 맞았다. 이 대통령의 올해 초 신년 연설도 머쓱하긴 마찬가지다. 그는 “국운이 융성하는 좋은 흐름을 타고 있습니다. 선진국의 문턱을 단숨에 넘어야 합니다”고 말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수출 세계 7위 달성 등을 언급하면서다. 그러나 지난 한 해는 위기를 방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과거의 성과를 앞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희망을 말하는 전형적인 신년 연설의 구조를 따라가다 빚은 결과다.



 내년 신년 연설에선 이런 섣부른 전망은 없을 듯해 다행이다. 정부는 내년 성장률 전망을 확 낮췄고, 위기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이참에 내년 신년 연설은 기존 방식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무역 1조 달러 돌파나 각종 성과 지표는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 수출이 늘었다고 내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체감한 서민에겐 남의 얘기로 들릴 뿐이다. 이 점에서 조대엽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의 지적은 귀 기울일 만하다. 그는 “수치나 제도·법이 아니라 감수성을 어루만지고, 공감의 정서를 보여주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개인의 마음과 욕구를 살피는 ‘미시(微視) 정치’다.



 신년 연설의 미시 정치를 위해선 연설문의 통념을 깨야 한다. 첫째가 사자성어다. 이 대통령은 2009년 연설 때 일로영일(一勞永逸)을 언급했다. 올해 청와대 화두는 일기가성(一氣呵成)이었다.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청년 세대 중 이 뜻을 알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일로영일은 ‘지금의 노고를 통해 오랫동안 안락을 누린다’는 뜻이고, 일기가성은 ‘좋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단숨에 해낸다’는 의미다. 사자성어는 유혹적이다. 축약해 의미를 전달하는 데 이만한 게 없다.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건 말하는 사람의 시각이다. 상대가 한번에 알아듣지 못할 말은, 공감의 기본에서 벗어난다. 둘째는 네 글자로 조합된 한글 단어다. 국운 융성, 경제 활력 같은 표현이다. 관 냄새는 둘째 치더라도 구호성 표현은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차 떼고, 포 떼고,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여러 사람이 하고 있다. 트위터의 기본 글자 수는 140자다. 140자로 상처를 달래고 어른다. 때로는 행동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우리도 이제 마음을 움직이는 연설 하나쯤은 가질 때가 됐다.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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