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이례적 TV 생방송 … 영구차 지나가자 주민들 바로 흩어지기도

후계자 등극 후 37년간 북한을 통치해온 김정일의 마지막 가는 길은 3시간 만에 끝났다. 영하 1도, 눈이 흩날리는 날, 사망(17일)한 지 11일 만이다. 북한매체는 "78년 만의 폭설”이라고 보도했다. 영구 행렬의 동선은 아버지 김일성 때와 비슷했지만, 주민의 표정은 달랐다. 북한 방송은 영결식이 28일 오후 2시부터 평양 금수산기념궁전 광장에서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광장엔 수십만 명의 인파가 오와 열을 맞춰 도열했다. 1994년 김일성 사망 때는 오전 10시에 시작됐다. 그때보다 늦은 건 평양에 많은 눈이 내려 제설작업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영결식은 차민환 육해공 노동적위대 명예위병대장(소장·별 하나)의 개시 선언으로 시작됐다. 차민환은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의 정상회담 때 제병 지휘를 맡았던 인물이다. 운구차의 우측 앞에 선 김정은은 침통한 표정으로 거수경례를 하며 이영호·장성택·김영춘·김정각 등으로 구성된 영구 일행을 이끌었다. 영구차는 미국 포드의 최고급 리무진인 링컨 콘티넨털. 김일성의 시신 운구에 사용된 것과 같은 차종이다. 2010년 중국 방문 때 북한에서 가져간 벤츠를 타고 다니는 등 김정일의 벤츠 사랑은 유별났지만 마지막 길엔 아버지와 같은 차를 탔다. 복장은 양복 차림인 김일성과 달리 ‘인민복’ 차림이었다. 김정일은 현지지도를 나갈 때 이 차림새를 애용했다.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때도 이 복장이었다.

영구차는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의 시신 운구에 사용됐던 것.[조선중앙통신 AFP=연합뉴스]
 김정일의 대형 초상화를 실은 차량을 선두로 김정은의 조화, 영구차, 주석단 차량 순으로 이어진 운구 행렬의 평양 순회 동선도 김일성 때와 비슷했다. 눈이 와 경로가 단축될 거란 분석이 나왔지만 금성거리→영웅다리→전승광장→보통문→인민문화궁전→충성다리 등을 지나 금수산기념궁전에서 출발한 지 1시간40분 만에 김일성광장에 도착했다. 김일성광장을 가득 채운 주민들 속에 멈춰 섰던 차량은 오후 4시45분쯤 다시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돌아갔다. 조총(弔銃)과 조포(弔砲) 각각 21발 발사 등을 거쳐 오후 5시쯤 영결식은 끝났다. 군악대는 거리행진 도중 ‘빨치산 추도가’를 편곡한 장송곡과 ‘김정일 장군의 노래’를 반복적으로 연주했다.

 노상엔 수많은 인파가 김정일의 운구 행렬을 지켜봤다. 정복을 입은 남녀 군인이 오열하는 모습부터 어린아이의 울부짖는 모습까지 울음소리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행렬 뒤편에선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는 사람도 많았다. 눈물 없는 울부짖음도 많았다. 2003년 탈북한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사람도 있고, 뒤쪽 사람들은 행사 차량이 지나간 뒤 곧바로 흩어지는 등 주민들 표정이 1994년과 확연히 다르다”며 “김일성 때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로, 두 부자를 보는 북한 주민들의 온도 차가 드러난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날 행사 방송이 생중계라고 밝혔다. 김일성 사망 때는 영결식 시작 두 시간 후에야 라디오방송을 통해 보도했다. 생중계를 한 것은 전 세계의 이목을 의식한 동시에, 내부 체제 결속을 위한 조치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평양에 주재하고 있는 외신들은 이날 오전 11시쯤 행사가 시작됐다고 타전하는 등 혼선을 빚었다. 북한 당국이 행사 시간도 알려주지 않자 외신들은 “김정일이 마지막까지 신비주의를 보였다”고 전했다.

권호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