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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겨울 꽃밭

연꽃 Nelumbo nucifera
겨울 꽃밭 - 이안(1967~ )


꽃 진 꽃밭에 가서 꽃을 보았네

꽃 없는 열매가 메마른 향기를 감추고 있었네

부서지는 껍데기 속에서 부서진 알맹이가 흘러내렸네

나는 부서진 꽃 안으려다 말고

그 꽃의 껍데기와 알맹이 거두려다 말고

산산이 흩어놓았네

처음을 묻자 모든 길이 끊어지자

대답 없이 눈이 내렸네


꽃의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바람도 빛깔도 소리도 향기도 모두 얼어붙은 부동의 겨울이다. 꽃 진 자리에 메마른 줄기만 남았다. 껍질을 부수고 흘러내린 씨앗이 줄기 곁에 흩어졌다. 칠흑처럼 어두운 땅 밑에서 한해살이를 마친 그의 뿌리가 새해를 준비하느라 차가워진 몸을 추스른다. 뺨을 스치는 하얀 눈이 소리 없이 대지의 이불 되어 내려앉는다. 눈 이불 덮은 세상의 모든 식물이 부르는 생명 노래가 아득히 울려 퍼진다. 언 땅 밑에서 새 생명을 잉태한 작은 풀꽃의 질긴 뿌리가 하냥 신비롭다. 겨울 바람 하얀 눈 뚫고 흙 속에 스미는 한 줌의 햇살이 고맙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겨울 꽃밭이 찬란하게 밝아온다. <고규홍·나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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