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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김정일 사망·북한체제·남북관계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2011년 우리는 세계사와 민족사의 방향 축이 크게 선회하고 있음을 목도했다. 동일본 대지진은 전 세계를 전율케 하며 자연재해와 환경과 문명에 대해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게 하였다. 중동과 아랍을 휩쓴 민주화 열풍은 어떤 교의와 권력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인간의 의지를 영원히 억압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해 줬다. 거의 모든 선진국을 휩쓴 경제위기와 부자증세운동은 자본주의의 한계와 생명력을 동시에 보여 주었다.

 2011년의 일들 중 우리의 과거·현재·미래를 함께 사유하게 하는 압권은 북한에서의 사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작스러운 사망과 관련해 가장 깊이 숙고하게 되는 것은 그가 남겨 놓은 유산이 너무도 크고 무겁다는 점이다. 생명·인권·자유·평등·민주주의·복지·개방·반핵·평화·통일 같은 보편가치와 관련해 그가 통치한 시기의 최종 결산은 무엇인가? 이 문제들에 대한 부정적 결과들에 대해 역사 속의 그는 어떤 답변을 준비했는가?

 더욱 큰 문제는 현재와 미래의 가능성의 차원이다. 세습의 가장 큰 문제는, 그리고 근대 공화주의가 세습왕조체제를 반드시 타도하려 했던 이유는 사상·이념·체제·정치·정책에서 ‘부친(父親) 부정’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오늘의 북한 현실을 있게 한 김일성·김정일 시대의 요인들을 ‘가치중립적으로’ 고려할 때 김정은 체제가 발전하려면 부친시대를 넘어 조부시대마저 부정·극복·수정해야 한다. 그러한 필수적인 이중부정을 과연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혈통·유훈·세습은 그때까지의 결과들을 더욱 가속화할 뿐이다. 남한의 반복되는 자기부정이 초래한 자기긍정·자기발전에서 북한은 무엇을 배울 것인가?

 게다가 20년에 걸친 부친의 권력승계·구축 과정과는 달리 2년에 불과한 그것으로는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하다. 권력이론에 비춰 지나치게 급속한 권력집중과 우상화는, 역설적으로 ‘권력담론’과 ‘권력현실’의 괴리로 인한 불안정성을 방증하는 ‘이상현상’일 수 있다. 20년이 걸린 김정일 승계시점의 허황한 ‘붕괴론’과 비교할 때 2년에 불과한 김정은 승계체제의 과도한 ‘안정론’은 또 다른 편향인 것이다. 김정일 승계 때는 없었던 중국의 신속하고 반복적인 지지 표명 역시 사실상의 ‘승인’ 표시로써 외부는 물론 내부의 도전세력에 대한 엄중경고의 의미를 갖는다. 북한체제 불안정화의 사전차단 의지임이 분명하나, 그러한 안정화는 대중 예속의 강화를 의미할 뿐이다. 특별히 오늘날 ‘한반도 안정화’의 의미는, 곧 북한의 안정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점은 남한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다. 2008년 김정일 ‘건강이상’ 시점과 비교해 ‘사망’이라는 결정적 사태를 상당 기간 몰랐다는 점은, 향후 북한 문제와 관련해 중대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만약 추후 ‘통일 문제’의 급박한 대두시점에 금번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중국·북한이 먼저 사태의 향방을 결정해 버린 이후 인지하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분리 불가능한 상대와 이념적으로 다르고 증오하더라도 반드시 관여하고 포용해야 하는 ‘실용적’ 이유다.

 ‘비핵·개방·3000’ 정책의 완전 실패를 보면서 우리는 남한과 북한 사이의 정치적·역사적 불일치를 확인하게 된다. 만약 노무현과 김정일의 10·4 정상합의가 국민적 합의를 통해, 보수정부 등장을 계기로 부분적 수정을 거쳐 남북 사이에 원칙적으로 준수되는 가운데 현금의 사태를 맞았다면 남북 관계는 어떠했을 것인가? 또 남한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 것인가? 지금처럼 손을 놓고 있었을 것인가? 동방정책의 원칙적 승계와 부분적 수정을 통해 냉전 해체의 순간이 도래했을 때 통일을 달성한 독일 ‘보수’세력의 지혜에 비춰 이명박의 실패는 더욱 자기모순적 반실용적이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 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 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 이용’ ‘개성공업지구 1단계 완공 및 2단계 개발 착수’ ‘문산~봉동 간 철도화물 수송 시작’ ‘개성~신의주 철도와 개성~평양 고속도로 공동 이용’ ‘안변과 남포에 조선협력단지 건설’…. 10·4 남북 정상 합의에 나와 있는 이들 지역에 남북 주민들이 ‘함께’ 활동하며 거주하는 상황에서 오늘을 맞았다면 북한은 누구의 도움 속에 어떤 미래를 구상할 것인가? 민족의 미래를 생각할 때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진보·보수 ‘정부’ 사이의 극단적 단절을 넘어 대한민국 ‘국가’로서의 원칙적 일관성을 통해 민족 문제에 접근하는 원숙한 지혜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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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