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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낙제로 `멍청한 정은` 별명…스위스 유학시절 호화롭게 살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셋째 아들이자 유훈통치를 이어갈 후계자 김정은(동그라미 안)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스위스 재학시절 친구들과 찍은 사진 [사진출처=데일리메일]




"영어 벙어리에 시험엔 낙제, 농구와 컴퓨터 게임에만 빠져 있었던 아이"



김정은(27) 북한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스위스 유학시절에 대한 친구들의 증언이다. 1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이 공식 발표된 후 `유훈통치`를 할 후계자 김정은이 중·고등학교 시절 `낙제자`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영국 데일리메일이 23일 보도했다.



김정은은 스위스에서 공부를 하면서 서양의 민주주의 가치에 꽤 노출돼 있었음에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어떻게 노쇠하고 굶주린 북한을 구할 것인가 따위에 대해선 전혀 생각한 적이 없는 것 같다고 친구들은 밝혔다.



[사진출처=데일리메일]
김정은은 1993년 경(15세) 스위스 베른국제학교에 들어갔다. 학기당 2900만원에 달하는 비싼 등록금을 냈지만 결국 중등교육검정시험에 준하는 어떤 졸업자격증도 얻지 못했다. 그 이후 인근 공립인 리버펠트 학교로 전학갔지만 학력은 향상되지 않았다.



김정은은 거기서 프로투갈 외교관의 아들 호앙 미카엘루와 짝이 됐고 둘은 곧 친해졌다. 요리사가 된 호앙은 "우리는 완전 멍청이도 아니었지만 똑똑하지도 않았다. 늘 이류였다"고 말했다.



시험은 항상 낙제였고, 축구·농구가 주 관심사였다. 마이클 조단의 빅 팬이던 김정은은 한번은 책가방 안에 포르노 잡지를 다발로 갖고 왔다가 걸린 적도 있다. 수학은 곧잘 했지만 대부분의 과목에서는 부진해 보충수업을 받아야 했다고 친구들은 기억했다. 국제학교를 같이 다녔던 한 친구는 "1993년 입학 당시 영어도 못하고 아주 강한 엑센트를 갖고 있었다"며 "김정은은 자기를 표현하려고 애를 많이 썼는데 (스위스 공용어인) 독일어를 못했고, 수업시간에 질문받으면 많이 당황스러워 해서 선생님들도 가만 놔두는 편이었다"고 전했다. 또 "아마 우리가 `딤(Dim·멍청한) 정은`이라고 놀린 것 같다. 어느 날부터 안 보이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표면적인 이유는 등록금이 너무 부담스러워서지만, 사실 다른 이유가 있는 듯 했다. 아들이 북한에서 터부시되는 미국 문화에 너무 빠졌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스위스 주재 북한 대사관은 김정은의 교우관계, 취미생활에 대해 정기적인 보고를 했고 김정일과 수뇌부가 이를 염려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김정은은 유학 시절 잘 사는 주변 친구들에 비해서도 최고의 사치를 누렸다. 호앙은 "우리는 매일 방과 후를 거의 같이 보내다시피했다. 가끔 나를 식사에 초대하기도 했다. 뭐든지 원하는 건 만들어주는 요리사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은 입맛에 안 맞았지만 치킨을 이상한 양념에 찍어먹는 것은 맛있었다. 정은이는 북한 대사관에서 살지 않고 학교 근처에 크고 멋진 아파트에 살았다"고 회고했다. 실제 김정은은 스위스 베른 키르히스트라세 10번지에 있는 아파트에 살았다. 주변에는 피자 카페와 은행 그리고 수퍼마켓이 있었다.



그는 "우리 같은 애들은 절대 가질 수 없는 TV, 비디오 리코더,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제품부터 요리사, 운전수, 개인교사까지 없는 게 없었다.이상하게도 방은 가본 적이 없다. 늘 거실에서 놀면서 성룡의 무술 영화를 많이 봤다. 그걸 엄청 좋아했다"고 말했다. 또 "북한 얘기는 거의 안했지만 어떤 향수병을 앓고 있는 듯했다. 스테레오에서는 항상 북한 가요가 흘러 나왔다"고 기억했다.



그는 "농구 코트에서 우리는 마이클 조단을 흉내내기도 했다. 우리는 진짜 미 프로농구(NBA)의 광팬이었다. 여자애들에 대해서도 많이 얘기했고, 주말에는 술마시는 파티에도 참석했는데, 김정은은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고, 여자들에게도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어 "그가 2000년 북한으로 돌아가기 직전 일요일 오후에 본 게 마지막이었다"고 했다.



그는 김정일과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나는 대사의 아들이 아니라 북한 대통령의 아들이다"고도 했다. 학교에서 간부였던 호에르그라는 학생은 "우리는 방과 후 토론 그룹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검정 메르세데스가 와서 난쟁이 닌자들이 나오더니 그를 데려가버렸다"고 말했다.

호에르그는 "그 때 우리는 민주주의의 책임에 대해 얘기했다. 투표권, 참정권, 표현의 자유 그런 것들이었다. 김정은은 참여하는 법이 없었는데, 항상 신발만 쳐다보고 발을 꼼지락거리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불편한 듯 보였다. 그는 베른에서 가장 비싼 빵집(샐러드 몇 개만 먹어도 100유로가 거뜬이 나가는) `로에브` 빵 봉지에 손을 넣다 뺐다 했다. 그럴 때는 나는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 농장』에 나오는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과 결코 같지 않다`는 구절을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이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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