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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쌓인 자신감 … 조문 바라보는 눈 너그러워졌다

1994년 7월, 한국 사회는 여름 무더위만큼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해 7월 8일 김일성 북한 주석이 사망하면서 비롯된 이른바 ‘조문(弔問) 파동’이었다.



 갈등은 당시 이부영 민주당 의원이 국회 에서 정부 차원의 조문 여부를 물으면서 시작됐다. 그의 발언을 접한 일부 국민들은 이 의원의 차와 지구당 사무실을 부수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좌파성향의 단체들은 자체적으로 조문단을 구성했고,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도 방북 허가를 요구하며 맞섰다. 북한은 “뜨거운 동포애로 정중히 맞겠다”며 남남갈등을 부추겼다.



 17년이 흐른 2011년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에도 한국 사회는 놀랄 만큼 침착하게 대응했다.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홍준표 의원은 “조문 특사라도 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고, 민주통합당은 “(정부가) 조의를 표명한 건 참 잘한 일”이라고 했다. 국민들 사이에선 조의 표명 정도는 무방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지난 20일 중앙일보가 실시한 긴급 여론조사에서 ‘정부가 북한 당국에게 조의를 표하는 것’에 대해 찬성 65.4%, 반대 34.0%가 나왔다. 정부가 북한 주민에게 애도를 표하는 것에 대해서도 53.8%가 찬성했다.



 1994년 여름과 2011년 겨울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북한 최고 지도자의 사망이 곧 정세 불안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학습 효과’와 “한국이 북한보다 정치적·경제적 측면에서 우월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94년엔 조문 찬성·반대 진영 모두 굉장히 격렬하게 의사를 표시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종북좌파나 극우세력을 제외하면 대다수 국민들이 김정일과 북한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됐고, 그런 분위기가 조문에 대해서도 이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호기 연세대(사회학) 교수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 등으로 국민들이 다양한 루트를 통해 북한에 대한 정보를 접하면서 남남갈등이 생길 여지를 줄였다”고 봤다.



 김일성 사망은 한국전쟁 이래 처음 북한 최고지도자가 사망한 것이어서 한반도 정세가 어떻게 전개될지 불확실성이 컸다. 하지만 이번엔 최고지도자 사망이 곧 급격한 변화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는 국민의 인식이 비교적 확고하다는 것이다.



 이부영 전 의원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때의 충돌 상황과 비교하면 우리 사회가 북한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박성우·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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