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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멀티 아티스트 한젬마

대웅제약 별관 입구에서 만난 한젬마. 키 큰 못사람이 벽에 기대 서있다. 뒤편 벽에 보이는 못사람 문양은 원래 계획에 없었던 것을 한젬마가 제안해 넣은 것이다.


강남구 삼성동. 올림픽대로 옆으로 한 건물이 눈에 띈다. 건물에는 철골로 만든 거대한 사람들이 벽을 타고 오르기도,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기도 하다. 머리, 몸통, 팔, 다리를 다갖췄지만 그 모습은 못을 닮았다. 멀티아티스트 한젬마의 ‘못사람’들이다. 못사람들은 건물 구석구석에 여러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벽에 기대 다리를 꼬고 서있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 쉬고 있기도 하다. 못사람들이 계단 난간을 줄지어 올라가고 있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못사람과 함께 있는 건물은 건물 자체가 갤러리고, 작품이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과 인근 주민들은 못사람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다. 그간 많은 기업들이 조각 공원을 조성하거나 조각품을 전시해 왔지만 그 앞에는 언제나‘손 대지 마시오’ ‘사진 촬영 금지’ 같은 팻말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사람들은 자유롭게 못사람과 어울린다. 작품에 대한 어떤 설명도, 주의사항도 없다. 거리에, 대중 속에 예술이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길 바랬던 작가와 건물주 간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한젬마가 지금까지 자신의 키워드로 삼아온 ‘관계’ ‘소통’과도 일맥상통한다. 새로운 거리 문화를 만들어낸 한젬마를 만났다.

-건물이 하나의 작품이다.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이 건물은 대웅제약 별관 사옥이다. 올해 초 신축하면서 회사측에서 아트디렉팅 제의를 해왔다. ‘예술을 직원들 생활 속에 스며들게 하고 싶다’는 취지였다. 공공미술을 통해 새로운 거리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도 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원하던 ‘예술과 대중과의 관계, 소통’을 이뤄낼 수 있는 기회아닌가.”

-대단위의 아트워크다. 얼마나 공을 들인 건지.

“처음부터 이 규모로 할 계획은 아니었다. 한 두 가지 작품을 설치하는, 작은 규모를 생각했다. 하지만 아트디렉팅이 건물 공사 단계에서부터 시작됐고, 또 회사가 나를 전적으로 신뢰하니 애정이 생겨 이것저것 제안하게 됐다. 수정을 반복하면서 작업이 조금씩 늘어나 결국 지금의 건물이 됐다.”

(위)거리에서 보이는 대웅제약 별관 외관. 못사람들이 벽을 오르기도 하고 모여 앉아 있기도 한 모습이 유쾌하다. (아래) 별관 옆 작은 공원에 자리잡은 대형 못사람 가로등과 아트벤치. 쉼터, 빛, 놀이 장소가 되어 사람들에게 봉사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번 작품의 의미는.

“예술이 대중의 생활 속으로 그대로 파고 들었다는 것이다. 예술 작품은 이를 ‘소화’할 시간이 있어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때문에 작품은 사람들이 사는 곳, 사람들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 자연스럽게 자주 접해야 사람들의 예술적 감수성이 높아지게 되는 거다. 이를 알면서도 많은 예술가들이 예술을 위한 예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작품은 건물 그 자체로, 사람들의 생활 속에 살아있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싶다.”

-많은 작가들이 기업과 작업하는 게 쉽지 않다고 하는데, 어렵지 않았나.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서로 소통할 수 있으면 문제는 해결된다. 내가 아무리 좋은 제안을 해도 기업이 바로 OK사인을 보내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면 안 된다. 설명하고 토론하며 해결해야 한다. 이번 작품도 수많은 미팅과 조율 과정이 있었다. 물론 기업이 원하는 바도 반영시켰다. 작가들이 기업과 일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이유는 대부분 작업 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기업 담당자들은 이미 결정 난 부분에 대해선 그대로 문제없이 진행되길 바란다. 이에 반해 작가들은 중간중간 느낌을 나누며 작업을 수정하고 진화시키길 원한다. 이 때문에 양측 모두 ‘소통이 안 된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입장을 이해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좋은 해결점을 찾아낼 수 있다.”

-소통 전문가답다. 소통이 중요한 이유는.

“처음부터 소통을 키워드로 삼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작품활동을 하면서 소통 방법을 배워가며 그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거다. 20대부터 미디어와의 작업을 시작하면서 제대로 된 소통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동양철학과 연기설(緣起說)에 심취하면서 관계와 소통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고, 작품세계의 주제로 삼았다.”

-방송 진출로 주목을 받았는데, 정통미술을 해온 예술가로서 주변의 반대는 없었는지.

“물론 있었다. 하지만 나를 더욱 미디어를 향해 움직이게 만든 것은 오히려 그 수많은 비난과 주변의 걱정이었다. 오기가 발동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내가 미디어를 통해 이야기하려는 미술이란 것이 무엇인지 증명하려 더 열심히 뛰었다. 처음엔 물론 어려웠다. 당시엔 방송에서 미술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방송에 나와 미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자 날 큐레이터나 미술평론가라 부르더라. 오해도 많이 받았다. 좀더 쉽게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미술’보다는 ‘문화’ 코드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목표는 ‘미술방송인’이 되는 것이었다. 몇 년 후엔 ‘1호 미술전문MC’라 불렸고, 다음엔 미술가, 다음엔 설치미술가로 불렸다.”

-가장 마음에 드는 타이틀은.

“어느 방송 매체의 작가가 날 소개하면서‘멀티 아티스트’란 표현을 쓰더라. 마음에 들었다. 다양한 예술 장르의 접목을 즐기고,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나에게 딱이지 않나.”

-다음 작품 계획은.

“내년 봄 대웅제약 별관의 2차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한젬마의 못사람= 못사람을 처음 선보인 것은 1995년이다. 연결 속성이 있는 지퍼, 똑딱단추와 함께 작업한 것인데, 그 중 못사람이 가장 사랑을 받았고 이후 계속 발전시키게 됐다. 한젬마는 이에 대해 “못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크다”고 한다. 못은 자기 희생적 연결 도구로, 관계?소통·희생·부활의 의미를 지닌다. 특히 단순한 모양새로 대중에게 다가가기도 쉽다. 못사람 작업을 통해 점점 많은 걸 깨닫는다는 그는 “못이 가슴에 박히는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못은 한젬마, 자신이다. “내가 죽으면 좋은 나무를 하나 구해 그것으로 비석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 무덤을 찾은 이들이 못을 하나씩 비석에 박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오래 지나면 나무는 썩고 못은 땅으로 묻혀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겠지요. 그렇게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사진=황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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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