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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악기통 제조특허 1호 곽상용 ‘민족굿패 얼’ 단장

숯을 칠해 고유의 장구 소리를 유지하는 기술로 ‘타악기통 제조특허 1호’가 된 곽상용 단장은 명품 국악기를 만드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조영회 기자]


소리의 완성을 위해 특허를 내다

천안 지역을 대표하는 풍물패를 꼽으라면 대부분 ‘민족굿패 얼’을 꼽는다. 이 풍물패를 이끌고 있는 사람이 곽상용(48) 단장이다. 곽 단장은 최근 기후나 온도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장구 소리를 잡는 기술을 개발해 타악기통 제조방법 특허 1호가 됐다. 전남 고흥 출신인 곽 단장은 14년 전 천안으로 이사와 민족굿패 얼을 만들고 활발한 공연 활동을 펼쳐왔다.

그러나 1년 내내 공연을 하다 보니 계절마다 장구소리가 변해 제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웠다. ‘어떻게 하면 날씨나 온도 변화와 무관하게 항상 제 소리를 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장구통에 들기름을 칠해 보고 황토를 발라서 소리를 내보기도 했다. 하지만 원하는 답은 아니었다. 그러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숯을 사용했던 것을 기억해내고 숯에 대해 연구를 했다.

하지만 또 다른 난관에 부딪혔다. 숯을 부착시키는 방법이 문제였다. 공업용 풀을 사용하면 소리가 변하고 문구용 풀도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다 찾아낸 것이 밀가루 풀이었다. 단순한 밀가루 풀이 아니라 밀가루 풀을 물과 혼합 후 침전과 발효과정을 거쳐 만든 발효 풀을 숯과 혼합해 사용해보니 장구소리에 변화가 없었다.

 타악기 통 내부에 습기가 차는 것을 방지하고 나무로 만든 타악기통의 뒤틀림 현상을 방지하는 등 내구성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마침내 타악기 통 본연의 맑은 소리를 구현할 수 있게 됐다. 소리의 완성을 위해 열정을 갖고 많은 시간과 실험을 거쳐 찾아낸 결과였다. 많은 국악인들이 염원하던 소리를 실현시킨 것이다. 이를 정리해 특허출원한 그는 최근 ‘타악기통의 제조방법 특허 1호’가 됐다.

14남매 중 막내에게만 소리 가르쳐

곽 단장이 국악과 인연을 맺은 것은 아버지 때문이다. 곽 단장의 아버지는 전남 고흥에서 한평생 판소리를 하셨던 국악인으로 장날이면 집으로 아버지의 친구 분들이 모여 소리와 춤사위를 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자란 곽 단장은 14남매 중 막내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유일하게 국악을 전수받았다. 곽 단장에게 국악은 어릴 적부터 친근한 생활이었다. 그는 중학교 2학년을 다니다 말고 전국을 떠돌며 소리 스승들을 찾아 다녔다. 곽 단장은 “살기 위해서 나의 소리를 찾아 다녔다. 너무나 힘들고 배고팠지만 소리에 대한 집념으로 버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28살이 돼서야 진도의 소리꾼 박진섭 선생을 만났다. 3년 동안 쫓아 다닌 끝에 경우 선생의 제가가 되면서 곽 단장은 제대로 된 남도소리를 본격적으로 익히게 된다. 이 후 남도소리는 곽 단장의 모든 것이 됐다.

풍물과 나눔의 민족굿패 얼

곽 단장은 14년 전 천안으로 이사를 왔고 1998년 4월 불광사에서 ‘민족굿패 얼’이란 풍물패를 만들어 풍물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곽 단장은 풍물단체를 결성한 후 교도소, 꽃동네, 사회복지시설 등을 찾아 다니며 위문공연을 쉬지 않고 있다. “민족굿패 얼은 나눔을 먼저 생각합니다. 나눔이라는 건 특별한 노력이 필요 없습니다. 남을 위한 아주 작은 배려에서 출발합니다.” 곽 단장은 민족굿패 얼을 ‘풍물과 나눔’으로 표현한다.

 풍물가락의 초급과정을 배우러 오는 이들이 수업료를 봉사로 대신하는 것도 이 같은 생각 때문이다. 회원들은 한 달에 한 번 복지시설을 찾아 자장면 봉사를 하고, 쌀 나누기 행사도 펼치고 있다.

 곽 단장은 매월 둘째 주 일요일에 가는 경남 산청의 복지시설인 성심원이 가장 정이 많이 간다고 했다. 어려웠던 청소년시절이 떠올라서 더욱 그렇다고 한다.

 곽 단장은 ‘풍물패의 활성을 위해 풍물꾼들이 연대한다면 좋지 않을까’ 고민 중이다. 그는 “체계적인 틀 속에 각자의 자유를 만끽하는 방식으로 연대한다면 좋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풍물연합회 결성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도전

곽 단장의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남도소리를 배우기 위해 어린 나이에 배고픔과 외로움을 이겨야 했고 소리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이 ‘타악기통 제조특허 1호’를 만들었다. 그런 그가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우리고유의 자재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명품국악기를 만들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는 충북 옥천에서 악기를 만드는 장인을 만나 함께 명품 국악기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곽 단장은 소리와 풍물패가 전부인 우리 문화의 전승자다. 그러나 자신의 꿈만 좇기 보다는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봉사활동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곽씨는 “갈수록 각박해지는 현실에서 우리 민족의 얼이 있는 국악으로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다. 따뜻한 정을 나누고 싶다. 더불어 함께하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복지시설 위문공연 등 사회봉사활동을 지속적으로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명옥 객원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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