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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13도 … 혈전이 심장혈관 막아 심근경색

사망 이틀 전 평양 ‘슈퍼마켓’ 현지지도조선중앙통신을 통해 17일 보도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 사진. 통신은 이날 사진을 전송하며 지난 15일 김정일 위원장이 김정은과 함께 ‘슈퍼마켓’이라고 칭한 광복지구상업중심(대형마트)을 방문해 시찰했다고 보도했다. 이 사진은 17일 전송됐고 이후 사망 소식이 알려진 19일까지 더 이상의 김정일 위원장 동영상과 사진은 전송되지 않았다. [연합뉴스]

북한 발표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원인은 급성심근경색이다. 북한이 병리해부검사, 즉 부검을 통해 발표한 내용이다. 신격화한 지도자가 사망할 경우 사인(死因)에 대한 의혹이나 풍문이 퍼져 권력 암투의 소재가 되는 걸 피하기 위해 의학적 소견을 확정 짓는 절차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발표 내용은 김일성 주석의 사인과 같다. 심장질환의 가족력을 앓아온 김 위원장은 그동안 과체중에 당뇨, 신장 이상, 고혈압 등 ‘걸어다니는 종합병동’으로 불렸다. 자신의 집무실에 진료실을 갖춘 것은 물론이고, 현지지도 때 최고의 의료팀과 장비를 거느리고 다녔다. 현지지도 때 타고 다니는 열차에도 의무실과 의료장비가 설치돼 있고, 의사가 동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8년 8월 뇌 혈관이 막히는 뇌졸중을 겪은 이후엔 프랑스와 중국 의료진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평양에서 촬영한 자기공명장치(MRI) 사진을 장남인 김정남이 들고 프랑스 병원을 찾은 적도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 심혈관센터 홍순준 교수는 “김정일은 고혈압·당뇨, 육식을 즐기는 식습관, 경쟁적 성격에서 오는 스트레스, 흡연·음주 등의 문제가 있는 데다 가족력 탓에 급성심근경색 발병의 최악의 조건을 갖췄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요인 때문에 갑자기 피떡(혈전·血栓)이 혈관을 막아 심근경색이 왔고 ‘심부전(심장 기능이 급격히 떨어짐)-심장 쇼크-심장 정지’로 연결돼 사망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급성심근경색은 돌연사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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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심근경색이 발생하면 3시간 내에 혈전 용해제(피떡을 녹이는 약) 투여, 혈관 확장술(스텐트 삽입) 등의 응급조치를 하면 목숨을 건질 수 있다. 국내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증세가 손을 쓰기 힘들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김효수 교수는 “심근에 피가 통하지 않으면 심장을 뛰게 하는 자극 전달체계가 붕괴돼 치명적인 악성 부정맥(不整脈)이 올 수 있다”며 “이때 심장제세동기(전기 충격기)를 쓰는데 심장근육이 너무 나쁠 경우 심장성 쇼크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의 열차 내에 대기 중인 의료진과 심장제세동기가 있었다 하더라도 손쓸 수 없는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북한은 급성심근경색이라는 병명 앞에 ‘중증’이라는 표현을 더한 듯하다. 부정맥은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병이다.

 심혈관 계통의 질환 발병엔 북한의 추운 날씨 탓도 적지 않다. 기상청에 따르면 17일 평양의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12.9도로 올겨울 들어 가장 낮았다. 성균관대의대 삼성서울병원 권현철 순환기내과 교수는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면 혈관을 수축시켜 심장에 부담을 가중시키고 혈류의 흐름이 늦어져 혈전이 많이 생긴다”고 말했다. 급성심근경색은 오전 4~8시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

 김 위원장의 왕성한 활동을 근거로 그의 건강이 호전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으나 우리 정보당국은 건강 이상에 초점을 맞춰왔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최근 한나라당 관계자와 만나 “김 위원장의 건강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지난 8월 러시아 울란우데를 방문했을 때 편집 안 된 전체 동영상을 보면 손떨림이 계속되는 등 불편한 기색이 완연했다는 것이다.

 지난주 초 북한을 방문했다 17일 오전 평양에서 귀국한 한 재일동포 사업가는 이날 “전날(16일) 밤 10시까지 노동당 간부 등과의 저녁식사 자리가 이어지는 동안 아무런 변화의 조짐이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평양에선 비상이라거나 김 위원장의 동태에 문제가 있는 것을 시사하는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고 말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정용수·배지영 기자


◆급성심근경색증·심장성 쇼크=심장 근육(심근)에 피가 공급되지 않아 심근 세포가 죽는 병. 당뇨병·고혈압·비만·대사증후군(복부비만 등) 등으로 동맥경화증이 생겨 혈관이 막히면 심근경색이 오고 심장이 기능을 못해 쇼크를 받는다. 앞가슴을 꽉 누르는 둔한 통증이 30분 이상 계속되면 응급실을 찾아 3시간 내에 혈관을 뚫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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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