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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사후 궤도 이탈한 남북관계, 정상화 기회 왔다

이홍구 고문
김정일에게 예고된 죽음이 찾아왔다. 역사가 지도자를 만들어내는지, 지도자가 역사를 바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도자가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국가일수록 그의 생사로 체제의 운명이 바뀌는 무수한 사례를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김정일 사후의 북한은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이럴 때일수록 역사의 흐름을 차분히 되짚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1945년은 제국주의시대가, 80년대 말은 동서냉전의 시대가 폐막하는 세계사의 획기적 고비였다. 모든 국가가 역사의 새 흐름과 방향에 적응하려는 경쟁에 몰입한 가운데 민주화의 물꼬를 튼 한국은 냉전시대에 내세웠던 반공통일의 구호를 거둬들이고 국민적 토론에 근거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89년 여야 합의로 선포했다. 90년 독일 통일로 상징되는 국제정세의 변화에 힘입어 91년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함으로써 남북협력·남북연합의 시대가 열리는 듯 보였다.

 김일성이 이끄는 북한도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인식한 듯 남북회담에 적극 참여하여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이란 역사적 합의를 92년 내외에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한 가운데도 북한은 시대변화에 대한 불안을 이겨내지 못하고 핵무기 개발사업을 비밀리에 유지하려는 이중전략에 매달림으로써 1차 핵위기를 조성하였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 압력에 봉착한 김일성은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한 듯 94년 6월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해 사태해결의 의지를 표명하고 남북 정상회담에 동의하는 긍정적 결정을 내렸다. 덩샤오핑의 개방정책과 시장경제로의 과감한 방향전환이 실천으로 옮겨지는 중국의 상황과 소련의 해체, 동유럽의 해방을 지켜본 김일성이 스스로 역사적 결단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인정하였다면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94년 7월 8일, 남북 정상회담을 2주일여 남겨놓은 시점에서 김일성의 돌연한 죽음은 한국사에서 아쉬운 대목으로 남게 된다. 그가 몇 해를 더 살았다면 남북관계가 어떻게 진전되었을까 하는 역사의 가정은 부질없는 시간의 낭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시작되어 17년 반 만에 끝난 김정일 시대는 완전한 실패라고 판정될 수밖에 없기에 김 부자(父子) 둘의 대조적인 죽음은 역사의 딱한 아이러니로 보여지기도 한다. 세계사의 본궤도로부터 완전히 이탈하여 예외 지대로서 극단적 고립을 자초한 김정일의 아집은 무엇보다 철저한 경제파탄을 가져왔고 백만(百萬)이 넘는 무고한 동포가 굶어 죽는 비극을 초래하지 않았는가. 유일독재자가 역사의 흐름에 정면으로 역행할 때 치러야 될 대가(代價)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증명한 역사의 장(章)이었다.

 김정일의 죽음은 상당 기간 예고돼 왔던지라 북한체제는 나름대로 후계구도와 대책을 준비했으리라 짐작된다. 그러기에 북한에선 당장 큰 흔들림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고립에 의한 추락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역사의 본궤도로 돌아가서 정상적 국가체제를 운영할 것인지의 선택을 무작정 늦출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김정일의 죽음은 북한에 그러한 선택과 방향전환의 기회와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 마침 내년 2012년은 김일성 출생 100주년이란 역사적인 해로 북한이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도중이다. 김일성의 마지막 유훈이 무엇인가를, 그가 죽기 직전에 모색한 돌파구가 무엇이었는가를 되새겨 북한의 진로를, 나아가서 민족의 앞길을 새롭게 설정하는 데 더없이 적절한 시점이 아닐 수 없다. 김정일 스스로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김일성의 유훈이라고 강조하지 않았던가.

 미래에 대한 전망이 어두운 북한에는 자폭과 자멸로 향한 맹목적 돌진의 충동이 작동할 여지도 있고, 체제의 특수성격이 비상사태를 벼랑 끝으로 끌고 갈 위험도 없지 않다. 그러기에 우리는 공존공영을 통하여 민족공동체를 복원 발전시키겠다는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다섯 대통령이 예외 없이 한국의 기본입장으로 확인하였음을 상기시키면서 북한의 궤도수정에 협조할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아시아·태평양시대의 평화와 번영은 한반도의 분단 극복이 진전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그리고 이를 위한 북한의 긍정적 변화를 모두가 지원할 수 있다는 공동의 입장을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관계국들이 함께 취할 수 있도록 적극 유도해야 될 것이다. 그리하여 김정일의 죽음을 통일로 향한 전진의 계기로 만들어 가야겠다.


◆이홍구=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출신. 노태우·김영삼 정부 시절 통일원 장관이었다. 이어 94년 12월부터 1년간 국무총리를 역임했 다. 91년 남북기본합의서 작성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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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