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핵 게임, 2년 새 3회 방중 … 어린 김정은 후계 서둘러

2009년 8월 4일 평양을 방문한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아래 왼쪽)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아래 오른쪽)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김정일 국방위원장(왼쪽)이 2011년 10월 김정은과 함흥시 2·8비날론연합기업소를 시찰하고 있다. [중앙포토]
◆뇌졸중과 후계체제 가속화=2008년 8월 김정일은 쓰러졌다. 당뇨, 간질환, 심장질환을 앓던 그에게 뇌졸중이 닥친 것이다. 대대적으로 준비했던 정부 수립 60주년 기념식(9월 9일)에 불참함으로써 그가 ‘와병 중’임이 확인됐다. 그는 권좌에 오른 1998년 ‘강성대국(사상·군사·경제강국)’ 건설이라는 장밋빛을 제시했고, 김일성 100회 생일을 맞는 내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겠다”고 다짐했었다. 2001년 1월 ‘21세기의 새로운 사고’를 표방하면서 개방노선을 내세우기도 했다.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도 바라지 말라”며 ‘변화’를 거부했던 김 위원장이 “모든 문제를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높이에서 보고 풀어나가야 한다”고 오히려 앞장서 변화를 주문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21세기라는 시대적 의미를 강조하고, 과학기술 개발의 절박함을 주장하는 것에서 ‘그럭저럭 사는’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 시대 변화에 순응하려는 의지”라고 추정했다.

 2002년 7월 1일, 북한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오던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하는 ‘사회주의 경제관리 개선조치’도 전격적으로 단행했다. 임금·물가 등 가격체계의 현실화, 배급제의 단계적 축소 등 시장경제적 요소가 가미된 경제개혁이다. 겉으론 ‘전격’이지만 실제론 시대 변화에 순응하기 위해 1년 이상 준비한 조치였다. ‘실리주의’를 표방하며 금강산과 나선지구, 개성·신의주 등을 특구로 지정하고, 2003년 3월엔 농민시장을 종합시장으로 바꿔 시장 기능을 대폭 수용하는 조치도 취했다.

 그런데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핵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북한은 미국 등 외부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는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경제난으로 인한 재래식 군사력 확충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탈출구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확대 강화됐고 산소호흡기 역할을 했던 한국의 대북 지원도 끊겼다. 엄청난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90년대 말 건강을 챙기기 위해 끊었던 담배와 술을 2009년 다시 시작했다. 뇌졸중엔 독약이라는 담배와 술을 가까이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건강상태가 호전돼 음주·흡연을 시작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다.

 그는 중국을 의지처로 찾았다. 지난해 5월과 8월, 지난 5월 병든 몸을 끌고 압록강을 건넜다. 자존심을 가장 큰 덕목으로 여긴다는 그가 다리를 저는 초췌한 모습이 공개되는 것도 무릅쓴 것은 ‘중국만이 믿을 유일한 곳’이란 점을 드러낸 것이다. 이후 중국의 대북 지원은 대폭 확대되고 든든한 지원자 역할을 해왔다. 러시아도 찾았다. 병자의 몸으로 2년 동안 네 차례나 해외여행을 한 것이다. 김정일의 특별열차는 무진동에 온갖 휴식시설을 설치했지만 갑갑한 열차생활은 일흔을 앞둔 나이에 벅찼음이 분명하다.

중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김정일은 후계체제 구축에도 박차를 가했다. 우선 친정체제를 강화했다. 당 경공업 부장인 여동생 김경희를 현지지도에 동행시켰고 지난해 9월엔 그에게 대장 계급을 부여했다. 김경희의 남편인 장성택도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등에 임용했다. ‘가족정치’를 시도한 것이다.

여기에 뇌졸중 직후 3남인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명하고 후계 수업을 가속화했다. 지난해 9월엔 34년 만에 당 대표자회를 열어 그를 후계자로 공식화했다. 간부들의 세대교체도 단행했다. 이런 와중에 김 부자는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공격으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남북관계가 단절됐다. 김 위원장은 후계작업을 서둘렀다. 김정일이 당 지도원에서 시작해 과장과 부부장·부장·비서를 거쳐 후계자의 자리에 오른 것과 달리 아직 검증되지 않은 20대 후반의 셋째 아들을 후계자로 공식 지명한 것이다. 사망 직전 김정일이 얼마나 다급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통일문화연구소, 정용수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