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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정일 사망 … 차분하고 초당적으로 대처하자

북한을 철권통치해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한반도 정세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살얼음판 속으로 빠지게 됐다. 김 위원장의 사망 이전과 이후는 하루 차이지만 향후 한민족에겐 전혀 다른 역사가 전개될 여지가 생긴 것이다. 두 세대에 걸친 분단이란 시간과 4강에 둘러싸였다는 공간에서 파생돼온 역사적·군사적·경제적 갈등이 김 위원장의 극적 사망으로 어떤 식으로든지 새로운 가닥을 잡을 가능성이 매우 커졌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두 얼굴의 인간’이었다. 하나는 수많은 주민의 아사(餓死)를 방치하고 남측 동포들을 살상하며 핵·미사일이란 대량살상무기를 제조하는 전형적 독재자의 모습이다. 다른 하나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보여주었던 ‘대화파’로서의 이미지다.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나름대로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가 혁명적 수령관, 유일체제, 사회정치적 생명체 등 북한의 모든 국가운영 시스템을 창조한 설계사라는 점, 자주노선 등 북한 대외관계의 본질을 만든 규정자라는 점이다. 따라서 김 위원장의 사망은 한반도를 둘러싼 모든 이슈에 대한 변화를 초래할 것이 틀림없다.

 문제는 그 폭과 방향을 남북한이, 4강이 각국의 국익에 맞게 조정, 통제할 수 있느냐의 여부다. 물론 이 길에는 불확실성의 지뢰가 도처에 깔려 있다. 남북한이 김 위원장의 죽음이라는 충격과 도전을 이겨내고 한반도 안정을 찾을 수 있을지, 한반도에서 전략적 이익을 확보하려고 눈에 불을 켤 4강은 어떤 촉수를 내밀지 등에 관해서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과 북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민족의 명운이 갈리게 된다는 점이다. 남북이, 특히 남측 내부가 각각 절제와 지혜를 발휘해 힘을 모으면 평화와 환희의 신세계가 열릴 것이다. 그러나 옹졸한 분파주의와 수구적 대결의식에 사로잡힌다면 혼란과 재앙이 민족을 삼킬 수도 있다.

 무엇보다 남북한은 김 위원장의 사망을 진정한 의미에서의 새로운 공존의 계기로 붙들어 매어야 한다. 남북은 현재 신뢰 있는 대화 창구 하나 없이 군사적 대치전선만 가팔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판국에선 한발 잘못 디디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남북 당국은 유념해야 한다. 상대방을 자극할 수 있는 언행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북한, 특히 북한 군부는 마음에 맞지 않는 남측 일부의 동향에 과민반응을 보여선 결코 안 된다. 남측은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다원적 사회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김 위원장에 대한 조문(弔問) 문제도 전향적으로 검토하길 정부와 국민에게 당부한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처럼 제지 일변도로 나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북한이 외국 조문단은 받지 않는다고 했으니 남측 좌파 등 일부 진영이 국내에서 조문해봐야 얼마나 큰 충격을 주겠는가. 또 최전방의 점등 문제도 취소 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김일성이 1994년 7월 갑자기 사망하자 북한체제 붕괴론이 대두됐으나 북한은 20년 가까이 체제를 유지해 이런 붕괴론을 머쓱하게 했다. 이는 권력 2인자로서 사실상 아버지와 함께 공동정권을 구성했던 후계자 김정일이 건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 정세의 안정 여부도 현 후계자인 김정은의 통치 역량에 달려 있다. 김정은이 장성택 등 후견 세력들로부터 완벽한 충성을 얻어내고, 핵문제를 해결하면서 국제무대에 편입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한반도 안정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우리 정부를 비롯한 국제사회도 북한이 이렇게 나올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어쨌든 북한이 김정은 체제를 선포했는데 우리가 급변사태나 흡수통일에 골몰하는 인상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가 만약 권력장악에 실패할 경우에 대한 대비책도 미리 준비해나가야 한다. 무장한 북한군의 일부가 세계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남측을 향해 도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런 불상사가 벌어지는 것을 방지해야 하지만 실제 상황이 벌어진다면 이를 격퇴할 수 있는 만반의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김 위원장의 사망은 우리에게 심각한 도전으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국민이 보수와 진보를 초월해 난국을 이겨내겠다는 일치단결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를 기회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여야 정치인의 초당적 협조가 요망된다. 난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주체는 정부와 국회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인의 차분하고 성숙한 대처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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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