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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절대권력자 김정일의 빈자리

강영진
논설위원
북한의 절대 권력자 김정일이 세상을 떠남으로써 한반도 분단 역사에 한 장(章)이 마감됐다.

 김정일의 집권에서 사망에 이르는 과정은 북한의 흥망성쇠와 직결돼 있다. 6·25 전쟁의 참화로 피폐한 북한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던 1950~60년대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과 그 주변세력들에 의해 체계적인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절대 권력을 공고히 한 직후인 73년 노동당 조직비서와 선전비서가 되면서 후계자 지위를 확립했다. 이후 김정일은 서서히 김일성과 공동정권 운영자로 세력을 확대했다. 91년 군최고사령관에 오르면서부터는 사실상 북한의 최고 통치자가 됐고 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한 후로는 누구도 견제할 수 없는 절대 권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김일성 사망 당시 이미 북한 경제는 회생하기 어려운 나락에 빠진 상황이었다. 이어 닥친 대홍수와 한해(寒害), 가뭄으로 북한 주민들은 대기근에 빠졌고 수십만 명이 굶어 죽는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겪었다. 이런 난국 속에서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라면 적극적인 개혁을 추진함으로써 경제난 해소를 시도하는 것이 상식적이지만 김정일의 선택은 달랐다. 그보다는 선군(先軍)정치를 통해 체제 이반 세력의 출현을 견제했고 외부세계 압력에는 핵무기 개발로 맞서는 등 체제 보위에 전력을 다했다. 그 결과로 최악의 경제난이 20년 이상 이어지는데도 김정일과 소수 지배층의 절대 권력 체제는 온존될 수 있었다. 김정일은 2002년 ‘7·1조치’로 알려진 경제 개혁을 시도한 적이 있다. 부분적으로 시장경제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생산을 증대시키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틀과 이념을 오히려 더 완강하게 고수함으로써 근본적인 개혁을 좌절시켰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김정일은 ‘어쩔 수 없는’ 절대권력자로 받아들여졌다. 아버지 김일성에 대한 평가와는 또 달랐다. 인민들의 마음을 사기 위한 노력은 위선적(僞善的)이었다. 세계 역사상 유례가 드물 정도로 강압적이고 조밀한 주민감시체제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무한대의 권력을 휘둘렀다. 주민들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법과 도덕, 신앙을 뛰어넘는 절대적 교시로 받들어야 했다. 공포를 통치의 주 수단으로 활용했고 체념을 자신에 대한 추앙으로 변질시켰다.

 남북관계에서 김정일은 지극히 호전적인 태도를 시종일관 보였지만 동시에 두 차례의 정상회담에 나서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대규모의 남북 왕래를 성사시키는 과감한 정책도 폈다.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과 대한항공기 폭파, 전두환 전 대통령 암살 미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김정일이 지시한 대남 공격 사례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군사분계선 지역의 북한 군대를 후방으로 물리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특구를 설치함으로써 한반도 분단 역사에 전환점을 마련했다. 경제적 지원을 주로 겨냥한 것이었지만 과감한 결단이었다. 이를 계기로 한 해 수십만 명의 남한 사람들이 북한을 드나들 수 있었다.

 북한에서 김정일이 사라진 것은 신정일치(神政一致) 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사라진 것과 동일하다. 역사상 그런 국가는 존폐의 위기에 빠지는 것이 보통이다. 북한도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지정한 막내아들 김정은이 김정일과 마찬가지의 절대 권력을 휘두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난 2008년 뇌졸중으로 죽음의 문턱에 빠졌던 김정일이 자신의 사후를 대비해 설계한 체제가 제대로 작동할 것인가. 현재로선 미지수다. 일단은 나름의 준비가 있었던 만큼 당장 큰 혼란을 예상하는 것은 섣부를지 모른다.

 그러나 조금만 길게 보면 북한이 갈수록 더 심각한 위기에 빠질 것은 자명하다. 김정일이 한사코 거부해온 개혁·개방을 후계자가 마찬가지로 거부한다면 수십 년 지속돼온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은 아예 없어 보인다. 동시에 급격한 개혁·개방으로의 선회 역시 체제 붕괴를 초래할 큰 혼란을 부를 위험성이 있다. 그럼에도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의 지도부에게 다른 선택지(選擇肢)가 과연 있을 수 있을까. 북한은 지금 거대한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지금부터 우리는 시시각각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북한에 또 한 차례 대기근이 닥칠 수도 있다. 또 북한은 새로운 도발을 시도할 수 있으며 남북 사이 우발적인 충돌의 가능성도 있다. 거꾸로 북한은 갑작스럽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 수 있다. 북한을 휘감는 소용돌이의 에너지는 모든 기존 질서를 뒤흔들 것이다. 우리는 그 파괴적 에너지를 통일을 지향하는 생산적인 추동력으로 변화시킬 준비가 돼 있는가.

강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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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