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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지식재산권 남용한 신종 보호주의

정하용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한·미 양국 의회의 비준 절차를 마치고 내년부터 발효된다. 한국 기업은 ‘자유무역의 공정한 경쟁의 토대’ 위에서 세계 거대기업과 경쟁해야 한다. 그러나 ‘자유무역의 공정한 경쟁의 토대’는 국가 간 합의에 따른 것이지 기업이 말 그대로 공정하게 경쟁하기로 합의한 것은 아니다.

 요즘 거대기업의 행태를 보면 공정하게 경쟁할 생각은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인다. 세계 거대기업을 중심으로 자신의 이익 보호를 위해 ‘기업 보호주의’의 깃발을 내걸고 있는 형국이다. 깃발에는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겠다’는 구호가 새겨져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지식재산권 보호라는 그럴듯한 명분보다 세계 거대기업이 시장을 계속 장악하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새로운 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겠다는 횡포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미국을 휩쓸었던 혁신주의 운동은 철도회사를 비롯한 거대기업 조직의 독점과 횡포에 대한 폭로에서 비롯됐다. 혁신주의 운동은 정치 개혁과 독점기업 조직 해체를 넘어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이 운동이 공통의 지향성이 있었다면 미국의 근본가치인 자유와 경쟁을 가로막는 제반요인을 분쇄하거나 개선하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혁신주의 운동은 미국 경제를 장악하고 있던 상당수 거대 독점기업의 해체라는 성과를 낳았다.

  경제 개혁 분야에서 혁신주의자가 추구했던 자유로운 기업 활동과 공정한 경쟁의 보장은 미국적 가치의 보전이라는 측면을 넘어 이제는 시장경제체제를 거론할 때마다 항상 거론되는 게임의 규칙이다.

그렇지만 기업 활동의 자유가 반드시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이윤을 창출하는 보다 손쉬운 방법은 공급자 입장에서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다.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점유하거나 소수의 공급자가 담합을 통해 지배적 공급자의 지위를 확보하면 시장 경쟁에 의한 가격 결정의 법칙을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기업은 공정한 경쟁을 되도록 회피하고 어떻게 해서든 독과점적 위치를 확보하려는 경향이 있다. 독점이나 담합에 의한 경쟁의 봉쇄가 고전적인 수법이었다면 최근에는 특허나 영업비밀 등 지식재산권 관련 법제도를 이용한 경쟁 기업의 퇴출전략이 횡행하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제반 지식재산권과 관련된 소송을 이용해 타국의 경쟁 기업을 압박하는 미국의 거대기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국제경쟁이 치열한 신소재·의약품·정보통신산업 분야에서 특허나 지식재산권, 영업비밀 침해 등을 둘러싼 국제적인 기업 간의 소송사례는 열거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기업의 창의적 연구개발을 장려하고 기술 혁신 활동에 수반되는 위험비용을 보전해 주기 위한 지식재산권은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여러 지식재산권 관련 소송 사례에서는 지식재산권 관련 침해나 도용을 명백히 가려내기보다는 배심원 심리 등 소송 절차로 인해 자국의 기업에 유리한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식재산권의 남용은 자유무역체제라는 제도적 근간을 훼손할 수 있는 보호주의이며 경쟁 기업들의 기술 혁신 노력을 원천 봉쇄하는 불공정행위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나라 기업들은 글로벌시장 진출전략을 세울 때 글로벌기업들의 신종 보호주의 횡포에 희생되지 않도록 대비책을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다.

정하용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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