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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밤이면 밤마다 붉은 십자가 불야성 이루는 지구상 유일한 나라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한 해가 끝자락에 걸렸지만 별로 실감이 안 난다. 나만 그런가 해서 물어보니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고 한다. 사는 게 팍팍해진 탓이 클 것이다. 경기가 안 좋다 보니 연말이라고 들떠 흥청망청할 분위기가 아니다. 매년 이맘때면 인파로 북적이던 서울 도심의 퇴근길도 요새는 한산해 보인다. 서울 광장의 구세군 종소리와 성탄 트리가 그나마 송년을 일깨워 주고 있다.

 우리 동네 아파트 단지도 이번 연말에는 아무런 장식을 안 했다. 전에는 알록달록한 전구로 하트 모양도 그리고, 꽃 장식도 하고 그랬지만 에너지 절감 차원인지 그냥 ‘패스’하고 넘어갔다. 그러고 보니 우리 단지만 그런 게 아니다. 이웃 단지에서도 못 본 것 같다. 구청의 행정 지도 탓일 수 있겠다.

 그래도 교회는 예외인 것 같다. 단지 내 상가 옥상에 설치된 교회 첨탑은 울긋불긋한 전등줄을 휘감고 있다. 밤이면 빨갛고 파랗게 바뀌며 번쩍거린다.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니 마치 나이트클럽 네온사인 같다. 바로 옆 동 주민들은 밤잠을 설칠지 모르겠다. 이마저 없으면 연말이 더욱 삭막하지 않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시각 공해와 도시 미관도 생각해야 한다.

 한국에서 십자가는 으레 빨간색으로 굳어졌다. 밤마다 교회들이 십자가에 빨간 조명을 해놓기 때문이다. 한국 개신교의 뿌리인 미국에는 빨간 십자가가 없다. 흰색으로 된 소박한 십자가가 대부분이다. 워낙 교회가 많다 보니 사람들 눈길을 끌기 위해 그랬겠지만 아까운 전기 써가며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건지 의문이다. 붉은 십자가가 불야성을 이루는 나라는 지구상에 우리나라밖에 없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최전방에 성탄절 등탑이 설치된다. 정부가 개신교 단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애기봉과 평화전망대, 통일전망대 등 세 곳에 성탄 트리 모양의 대형 등탑 설치를 허용했다. 오색 전구로 장식된 높이 30m의 철탑은 수십㎞ 떨어진 북한 지역에서도 맨눈으로 훤히 볼 수 있다. 애기봉 등탑은 2004년 남북 간 합의에 따라 철거됐지만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이 있었던 지난해 다시 불을 밝혔다.

 북한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북한을 자극하기 위한 심리모략전이라며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협박하고 있다. 우리 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등탑 주변에 방호벽을 설치 중이다. 불이 켜지는 23일 이후 북한이 혹시 무슨 짓이라도 벌일까 걱정이다.

 울진 1호기와 고리 3호기 등 원전 2기가 동시에 고장 나 겨울철 전력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사태)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등탑 몇 개 못 밝힐 건 아니다. 북한 주민에게 희망의 등불을 비추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래도 교회 십자가의 빨간 조명은 끄는 것이 어떨까. 교회 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니 말이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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